2021/01/04 01:42

서유기 - 선리기연, 1994 대여점 (구작)


<서유기 - 월광보합>과 한쌍의 페어를 이루는 작품. 서로 전편 + 속편 관계를 이룬다기 보다는 연작 구성에 더 가까운 관계라 2편 또는 2탄이라는 느낌보다 그냥 2부 느낌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느끼는 영화의 장단점은 <월광보합>의 그것과 거의 똑같다. 그래서 그 쪽 관련해서는 더 길게 할 말이 없고, 대신 이 영화의 가장 메인 테마가 되는 일종의 멜로 드라마 관련해 아주 조금만 언급하고 싶다.

그렇다, 여의봉 든 '손오공'이 깽판치며 '우마왕' 날려버리는 액션 무협 영화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멜로 드라마적 요소가 강하고 또 그게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애초 '지존보'가 월광보합을 통해 시간 여행을 시도한 이유 자체가 '백정정'을 구하기 위해서였잖나. 그럼 가장 잘 묘사했어야 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무엇인가. 당연하게도 그건 지존보와 백정정의 사랑이다.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를 필두로 이 둘 사이에 사랑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결국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이걸 묘사하는 게 멜로 드라마의 핵심 아닌가. 때문에 난 멜로 드라마 장르는 다른 장르들에 비해 런닝타임도 좀 길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물리적 시간도 난 필요하다고 생각 하거든. 첫눈에 반했다는 말 자체를 믿지 않기도 하거니와, 사랑 뿐만 아니라 인간사 모든 감정에는 다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그래서 멜로 드라마는 물리적인 런닝타임도 좀 길어야한다고 주장하는 거. 물론 일격필살의 연출 무공으로 짧은 시간 내에 다 때워보겠다면 할 말 없지만.

어쨌거나 바로 그 점에서 <서유기> 연작은 적어도 내게 있어서 실패했다고 본다. 각각 지존보&백정정, 지존보&'자하'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는 <월광보합>과 <선리기연>은 모두 런닝타임이 90분 내외다. 코미디도 하고 액션도 하고 모험도 해야하는 바쁘디 바쁜 영화의 상황에, 이미 짧은 그 런닝타임에서 멜로 드라마를 묘사해봤자 얼마나 되겠나. 심지어 그게 다 코미디 톤 때문에 진지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지존보랑 백정정이 사랑하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었는데? 서로 죽기 살기로 싸우고 도망치다가 거의 막판 다 되어서야 갑자기 사랑 느낀다고 지껄이는 거잖아. 그리고 그건 자하와의 이야기도 마찬가지. 그러니까 이 연작에서 사랑은 점점 물들어가는 시나브로의 그것이 아니라 그냥 딸깍 스위치 한 번에 ON 되는 또 OFF 되기도 하는 찰나의 그것이다. 

멜로 드라마를 이렇게 구겨놨으니 뒤에서 <중경삼림> 명대사를 인용하고 이 사랑 저 사랑 오가는 비극을 진지하게 그려봤자 별로 안 와닿는 것이다. 사실상 이 영화의 가장 백미가 그 포인트인데 내가 그걸 못 느끼고 있으니 이게 재밌었겠냐고. 물론 당대 홍콩 영화계의 기술+병맛 집약적인 화려한 액션과 그 특수효과에는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고로, 이 영화는 내게 화려한 볼거리를 전달하는 영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 굳이 플러스 알파를 논하자면 그건 주성치의 신들린 손오공 연기일 거고.

다들 좋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나만 별로로 느껴지거나 그저 그렇게만 여겨져서 좀 당황스럽기는 하다. 아, 나도 주성치의 맛을 안다면 아는 사람인데 대체 왜 이 영화엔 정이 별로 안 가는 것일까. 처음 봤던 어릴 때는 존나 재밌게 봤던 것 같은데.

뱀발 -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 결말은 100% 이 영화 결말 오마주 한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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