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05 16:34

다이 하드 3, 1995 대여점 (구작)


복수와 함께 돌아온 <다이 하드>. 더불어 버디 무비가 유행하던 당대의 트렌드를 <다이 하드>스럽게 잘 이식해낸 작품이기도 하다. 물론 그 전편들에서도 버디 무비의 기운은 항상 함께 했었지. 1편의 '존 맥클레인'에겐 '포웰'이라는 워키토키 친구가 있었고, 2편에선 비록 잠깐이긴 했지만 그의 곁에 '레슬리 반즈'가 함께했다. 그러니까 기존의 시리즈에서도 버디 무비로의 확장성은 언제나 존재했었다는 이야기.

그럼 버디 무비로써 존 맥클레인의 파트너에 누굴 데려다놓을 건데? 여기서 신의 한 수라고 여겨지는 게, 다른 사람도 아닌 사무엘 L 잭슨을 데려왔다는 것이다. <롱키스 굿나잇>도 그랬고 <네고시에이터>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이 양반은 어디 갖다놔도 웬만해선 중간 이상 가게끔 만들어주는 위인이다. 할리우드 최강의 깝죽이 곁에 할리우드 최강의 욕쟁이를 붙여놓은 꼴이라니. 이게 어디 재미없을 수가 있겠어.

1편의 한정된 공간적 배경을 2편이 공항이라는 설정을 통해 살짝 틔워놨었지만, 이번 3편에 비할 바는 아니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뉴욕 전체가 주 배경으로써 작용한다. 특히 맨하탄.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도 할렘이고, 이어서 악당들이 노리던 곳 역시 월스트리트였으니 거의 <다이 하드> 맨하탄 특집편이었다고 봐도 무방. 정말 다행인 건, '한정된 공간에 갇히는 맥클레인'이라는 기존 시리즈의 전통을 버렸는데도 일단 주인공 캐릭터가 재미지니 어느정도 용서가 된다는 것이다. 2편에서도 느꼈던 거지만 확실히 이 시리즈는 설정보다 캐릭터에 의해 오래 살아남은 거임.

전편들 속 악당들과는 다르게 이번 영화의 악당 '사이먼 그루버'는 존 맥클레인에게 개인적인 악감정이 있는 사람이다. 그 때문에 유독 맥클레인을 갖고노는 듯한 묘사가 많고, 그래서 3편이 이전 시리즈들과는 다른 맛을 내기도 한다. 그냥 서로 방해하고 죽이려만 들었다면 또 뻔했을 텐데, 복수라는 감정과 목표를 장착한 사이먼에 의해 이야기 안에 자잘한 서브 퀘스트들이 많이 생겨서 흐름 전환도 빠름. 덕분에 크게 지루한 맛이 없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쉴새없는 상황 전환에 지루함이 덜해지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지만, 그만큼 소화해야할 분량이 많아서인지 편집의 흐름이 종종 튀거나 생략된다는 인상이 강하다. 편집 리듬이 좀 급박하다고 할까? 더불어 클라이막스로 배치되었어야 마땅한 악당과의 마지막 결전을 에필로그 처리하듯이 그냥 가볍게 넘긴 것 역시 실망스러운 부분.

그렇지만 인간적이면서도 인간애 넘치는 존 맥클레인과 '제우스'의 콤비 조합이 무척이나 좋아서 그냥 저냥 신나게 보게되는 영화. 막말로 타란티노나 우디 앨런 영화처럼 카페나 식당 같은 곳에 이 둘 앉혀놓고 서로 투닥거리는 것만 지켜봐도 재밌었을 것 같음. 그리고 '이거 진짜 맨하탄에서 찍은 걸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여러 액션 스턴트들의 90년대 무대포스러운 쿨함이 멋지고 또 무섭기도 하다. 둘이 택시 타고 센트럴 파크 가로지르는 장면 같은 게 진짜 대단함. 

전반적으로 버디 무비로써의 그럴듯한 쾌감이 있고, 브루스 윌리스와 사무엘 L 잭슨의 조합이 좋으며, 제레미 아이언스의 멋들어진 악당 연기까지 괜찮은 영화. 1편에 비해서는 확실히 떨어질 수 밖에 없지만 그건 1편이 기준을 너무 높이 잡아놔서 그런 거고. 순수 재미로만 따지면 2편과 거의 동급 정도는 될 거라고 본다. 그래서 두고두고 더 아쉽네, 마지막 결말만 좀 덜 허무하게 짜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이렇게 개고생에 개고생을 더하던 존 맥클레인은 이후 12년을 운좋게 쉬게 된다. 이후 4편과 5편까지의 상황으로 봤을 때, 이 12년이 맥클레인의 경찰 생활 사상 가장 평화로운 나날들이 아니었을까.

뱀발 - 테러 집단들로부터 두번이나 그녀를 구해냈음에도 불구하고, 맥클레인은 '홀리'와 별거 중이다. 그렇다, 결혼은 현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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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rumic71 2021/01/05 23:25 # 답글

    남편 덕을 본 건 본 거고, 맘고생하고 싶지 않은 건 않은 게 여자 마음이죠.
  • CINEKOON 2021/01/08 10:52 #

    = 현실
  • IOTA옹 2021/01/06 09:44 # 답글

    제레미 아이언스를 이영화로 처음 봤는데 남자가 봐도 너무 멋졌어요. 나이를 그렇게 먹으면 너무 좋을텐데.
    목소리가 마치 음악 같아요. 돌아가신 크리스토퍼 리께서도 그랬고.
  • CINEKOON 2021/01/08 10:53 #

    와, 목소리가 마치 음악 같다니. 이렇게 멋진 표현이 다 있군요
  • rumic71 2021/01/08 14:24 #

    리 선생께서는 성악하려다 영화로 빠진 양반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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