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08 20:11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 2000 대여점 (구작)


항상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온 것처럼 보인 코엔 형제. 이번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오래 살아남은 이야기 중 하나를 건드린다. 오프닝 자막에도 썼듯이,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를 현대적으로 어레인지한 이 영화. 때문에 고대 그리스의 신화적 속성을 많이 띄고 있기도.

얼간이 하나와 까칠이 하나, 그리고 이와중 그나마 나아보이는 뺀질이 하나. 이 세 명의 죄수는 입감 전 세상 어딘가에 어마어마한 액수의 보물을 묻어두고 왔다는 뺀질이의 골드 D 로져 풍 멘트에 홀려 탈옥을 결심한다. 허나 그 보물은 타임 어택 레이드를 해야하는 물건이었는데, 다름 아니라 묻혀있는 곳이 곧 댐 공사로 물바다가 된다는 것. 이에 얼간이, 까칠이, 뺀질이는 경찰과 시간에 쫓기며 로드 무비를 시작한다. 

앞서 말했듯 고대 그리스의 신화적 요소들을 재조립한 영화라 관련해서 눈에 띄는 부분들이 많다. 여정이 시작되는 순간 등장하는 흑인 장님 아저씨는 그리스 신화에서 숱하게 나오는 신탁 전달용 예언자 혹은 메신저로서 주인공들에게 혹독한 시련을 예고한다. 이어지는 여정에서 3인방은 파토스에 빠진 무법자와 현을 다루는 음악가, 표리부동한 양아치, 유혹의 노래로 먹잇감을 홀리는 세이렌 여성들과 비밀 결사단을 마주하게 된다. 현대적으로 어레인지했을 뿐, 모두 그리스 신화의 좋은 재료들이다.

근데 가는 길에 만난 인물들 뿐만 아니라 이 모험 자체 역시도 그리스 신화스럽다. 결국 여정의 끝에 놓여있는 아내의 모습이라든가, 홀로 붙잡혀 배신의 기로에 서게 되는 상황이라든가... 사실 이 모든 게 굳이 할 필요가 없었던 모험이었다는 점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말 나온 김에, 암만 생각해도 빡치네. 뭐? 보물 그딴 건 다 뻥이었고 그냥 족쇄로 함께 묶여있었기 때문에 속일 수 밖에 없었다고? 그러니까 얼간이와 까칠이와 뺀질이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한데 묶인 것은 겨우 '우연'의 힘이었다는 건가? 허나 누가 또 말하지 않았나. 우연이란 신이 스스로 서명을 하고 싶을 때 쓰는 가명이라고. 어쩌면 이 셋이 묶인 것은 다른 말로 말해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아, 운명! 이 얼마나 또 그리스와 잘 어울리는 단어인가!

존 터투로의 퀭한 얼굴도 좋고 팀 블레이크 넬슨의 나사빠진 모습도 좋은데, 진짜 뺀질이라고 밖엔 표현할 수 없는 조지 클루니의 뺀질거리는 표정이 일품. 언덕 위의 피크닉 장면에서 표리부동 양아치에게 죽빵 터질 때 그 얼빠진 듯하면서도 새침한 표정 존나 웃겼다. 나라도 한 대 치고 싶었을 것 같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