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4 11:23

분노의 역류, 1991 대여점 (구작)


TV 뉴스나 대화를 통해 많이 듣고 또 쓰게 되는 표현, 화마. 불 화()에 마귀 마(魔)를 쓴다. 이렇게 불을 마귀에 비교할 정도로, 우리 인간은 불을 원초적으로 두려워한다. 때문에 소방관을 주인공으로 삼는 일련의 영화들에서는 이 '불'이라는 존재를 마귀나 악마에 비할 정도로 의인화해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소방공무원들의 원픽 영화라는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

영화의 전개는 넓게 보면 투 트랙이다. 우선, 화염과 싸우는 소방관들의 모습을 담아낸 재난 장르 영화로써의 한 줄기가 존재한다. 이건 뭐 이 영화의 기본이라 사실 당연한 것. 그리고 이에 이은 두번째 스토리 줄기는, 연쇄 방화범을 잡기 위한 화재 감식반의 활약을 다룬 미스테리 추적극으로써 전개된다. 여기에 이 두가지 줄기를 하나로 단디 묶어주는 두 형제의 인간 드라마.

불끄러 다니는 소방관들의 이야기에 형제의 드라마적 요소만 더해놨었다면 이 정도의 풍미는 생기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는 그 세 가지 요소의 밸런스를 비교적 잘 잡아내고 있다. 소방관들의 활약을 다룬 부분에선 1991년 영화라는 것을 잊게 만드는 압도적인 스펙터클의 화염과, 그 안에서 고군분투 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제대로 담아낸 연출이 있다. 커트 러셀이 연기한 주인공이 어린 아이 안고 슬로우 모션으로 걸어 나올 땐 그냥 내 모든 걸 다 그에게 줄 뻔 했다. 신병 교육대나 예비군 훈련장에서 정훈 교육의 일환으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영화들 자주 틀어주는데, 아마 실제 소방관들 역시 이 영화 속 그 장면 교육 훈련 때 많이 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더불어 미스테리 추적극 파트도 인상적이다. 여기서는 로버트 드 니로가 주축이 되어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아무래도 재난 장르 영화로써의 속성이 좀 더 강한 영화이다보니 이 미스테리 추적극 파트는 약간의 양념 정도로 느껴짐. 근데 딱 그 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어쨌거나 미친 전직 방화범으로 도널드 서덜랜드가 나오는데, 이 인간과 로버트 드 니로의 화재 감식반 반장 캐릭터 사이 관계가 마치 <양들의 침묵> 속 '한니발'과 '스털링' 관계처럼 느껴져서 기묘 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쪽 이야기도 꽤 많이 신경을 쓴 편. 진짜 범인의 정체가 밝혀질 때 관객으로서 마음 한 구석이 뜨끔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좋은 배우들이 은근히 많이 나오는 영화지만, 커트 러셀을 제일 좋아해서... 커트 러셀은 정말 <다이 하드>의 브루스 윌리스 다음으로 하얀 런닝이 잘 어울리는 사내다. 블루 칼라 노동자 계열의 영웅이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 여기서도 달리고 뛰어오르는 등의 육체파 공무원 영웅으로서의 모습을 성실하게 잘 보여준다. 더불어 황소처럼 고집스런 면모도. 무엇보다 정말이지 젊다. 이 영화 처음 봤던 게 대략 20여년 전이었던 것 같은데, 그 때만해도 이런 생각 안 했었지. 근데 내가 좋아하는 배우의 젊은 모습 다시 보니까 마냥 좋더라고...

현재는 할리우드의 주류 감독으로서 다작 감독이기도 한 론 하워드. 비록 <분노의 역류>가 그의 데뷔작인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의 필모그래피를 되짚어봤을 때 일종의 구두점이 되는 작품이었던 건 맞는 것 같다. 이 작품 이전에 찍었던 영화들은 대부분 제작 규모가 작은 소품 느낌의 영화들이었던 것 같은데, 이 작품을 연출한 이후로 점점 더 큰 제작 규모를 배당받는 감독으로서 거듭나게 되니. 물론 개봉 당시의 흥행은 어중간 했다고 하지만 말이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