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6 11:46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2004 대여점 (구작)


영화의 신이 편애하는, 현존하는 영화왕 중 한 명의 연출작. 그리고 판타지 동화로써의 색을 분명히 했던 이전 작품들이나, 액션 스릴러로써의 면모를 더 드러냈던 이후 작품들에 비하면 성장 드라마적 부분에 더 방점을 찍었던 작품. 무엇보다 애들이 정말 많이 컸다.

알폰소 쿠아론이 확실히 연출을 잘한 게, 씬마다 꼭 한 두 개씩은 들어가 있는 유머 요소를 잘 살리고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론 어두운 극의 기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영화라는 것이다. '마지' 고모를 하늘로 두둥실 띄워보내는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차분한 톤 앤 매너를 가지고 있지만 그 내부 유머의 잔잔한 폭발력은 또 다른 방식으로 대단하다. 마지 고모의 몸이 불어나면서 그녀를 옥죄고 있던 단추들이 하나씩 팡팡 터지며 '두들리'의 이마팍을 파박하고 때리는 장면 같은 것들. 예전에 볼 땐 그냥 재밌고 말 뿐이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 이런 걸로 어떻게든 유머가 들어갈 구석을 만들어냈다는 게 보임. 박지성 마냥 공간 창출 능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러면서도 차분히 가라앉은 영화의 어두운 분위기가 돋보인다. '해리'가 검은 개를 만나는 장면부터 시작해 구조 버스로 런던 시내를 돌아다니는 장면, 이어 펼쳐지는 리키 콜드런에서의 차가운 느낌도 좋다. 1편과 2편이 훌륭한 프로덕션 디자인으로 시리즈 전체의 미술적 방향성을 다잡았던 작품이라면, 이번 3편은 특유의 다운된 톤 앤 매너로 이후 시리즈 전체의 분위기를 새롭게 제시한 그런 영화다. 

촬영도 좋다. 쿠아론이 엠마누엘 루베즈키와 협업한 영화도 아닌데 롱테이크들이 인상적이다. 본작의 촬영감독은 이후 <혹성탈출> 리부트 시리즈의 2편과 3편을 촬영하게 되는 마이클 세러신. 사실,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촬영보다 개인적으로는 훨씬 더 취향에 가까웠다.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롱테이크가 대단한 것은 사실이지만, 때때로 그게 좀 과해보이기도 하거든. 너무 과시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그러나 마이클 세러신의 롱테이크에는 담백한 맛이 있다.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 씬도 그렇고, '해리'와 '루핀'이 다리 위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도 오버 더 숄더 쇼트를 따로 배분하지 않고 그냥 찍어냄. 확실히 이런 부분들에서의 연출이나 촬영이 내 취향이다. 

애초에도 복선을 잘 깔아놓기로 유명한 시리즈인데, 이전 작들에 비해 핵심 미스테리가 더 복잡하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다보니 그 복선들의 파괴력이나 그로인한 흥미가 더 커졌다. <마법사의 돌><비밀의 방>은 '범인이 누굴까?'의 미스테리였잖나. 그러나 <아즈카반의 죄수> 속 미스테리는 이미 범인이 특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고 바로 그 때문에 '그가 왜?'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이 구조가 기묘하게 재미있다. 마법사 세계를 뒤흔들고 탈옥한 웬 미친놈 하나가 글쎄 주인공 주변을 배회하고 있대. 거기서 느껴지는 공포감. 여기에 '스캐버스'와 루핀 교수 주위를 맴도는 복선과 힌트들 역시 좋다. 보가트를 활용해 루핀에게 보름달을 제시한다든가...

여기에 '시리우스 블랙' 관련한 플롯과 '벅빅'의 플롯이 효과적으로 잘 얽히고설켜든다는 것 역시 플러스 포인트다.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시간 여행 테마가 저 두 플롯을 효과적으로 잘 묶어준다. <비밀의 방>에서 일찍 리타이어하는 바람에 클라이막스에서 활약할 기회를 놓쳤었던 '헤르미온느'가 해리의 파트너로 배당되는 것도 좋음. 

시리즈 내에서 유독 거울을 더 많이 보는 시리즈다. 거울은 '성장'을 은유하는 미장센으로 많이 활용되는 오브제다. 해리는 계속 거울을 통해 자기 자신을 비춰본다. 아니, 거울 뿐만이 아니다. 해리는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벅빅을 타고 하늘을 가르다가 호수의 잔잔한 표면에 비친 스스로를 응시 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칠렐레 팔렐레하며 바실리스크 때려잡고 희희낙락할 수 있던 시절은 끝난 것이다. 해리는 스스로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으로 성장기의 감옥에 갇힌다. 아이와 어른 사이에서 서성거릴 수 밖에 없게된 소년이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다. 다만 그 지난함을 인정하되 그 사이사이, 그 순간순간에 찾아오는 사소한 행복들을 잘 붙잡고 즐기는 것 밖에는. 고생 끝에 얻어낸 대부가 도망자로 추락했지만, 그럼에도 신상 빗자루를 타고 신나게 날아오르던 그의 모습처럼. 질풍노도의 성장기란 그런 것이다.

더불어 '오해의 소지'를 잔뜩 만들어놨다는 점에서도 시리즈 특유의 성장 영화적 기질을 극대화하려 했던 알폰소 쿠아론의 의지가 잘 보인다. 마법부는 해리가 머글들 앞에서 마법을 쓴 것으로 오인하고, 해리와 친구들은 같은 열차칸에 탄 루핀을 교수가 아닌 부랑자쯤으로 생각하며, 퀴디치 경기 중 검은 우산처럼 보였던 것은 곧 디멘터로, 그리고 자상한 대부 시리우스를 잔혹한 연쇄 살인범이자 부모님의 배신자로 오해한다. 여기에 무엇보다, 해리는 자기 자신을 아버지로 잘못 본다. 그래 보였던 것들이 다 아니었던, 오인하고 또 오해하게 되는 시기. 알폰소 쿠아론은 정말이지 언뜻 조용한듯 보이면서도 끊임없이 물결치는 바다와도 같은 청소년기를 보냈던 게 틀림없어 보인다.

결론적으로는 총 여덟 편이나 되는 시리즈 중에서 내가 제일 애정하는 영화. 좋은 쇼트, 좋은 씬, 좋은 시퀀스가 너무 잔뜩 산재해있다. 신입생들을 반기는 호그와트 중창부(feat.두꺼비)의 합창 장면도 좋고, '덤블도어'가 손짓 하나 하나로 촛불 온 앤 오프하는 쇼트도 좋고, 찻잎으로 그려진 검은 개가 비구름으로 산화하는 것도 좋으며, 결국 그렇게 아버지가 되었던 해리의 모습 역시 좋았다. 아, 알폰소 쿠아론 만세다.

뱀발 - 오프닝 타이틀 씬인 루모스 장면은 정말 봐도봐도 세련된 것 같다.

뱀발2 - 리처드 해리스의 죽음 때문에 덤블도어 캐스팅이 마이클 갬본으로 변경됐다. 친근한 할아버지 느낌이던 이전 캐스팅과는 달리 좀 더 지적이고 신경질적인 느낌의 현자 캐릭터로 재탄생. 개인적으로는 확실히 이쪽이 더 좋다. 깐깐한 이미지이다보니 중간중간 친절하게 굴거나 드립칠 때가 더 소중하게 느껴짐. 향후 시리즈 내에서 액션도 많이 늘기 때문에 더 강해 보이는 이미지도 필요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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