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7 09:43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2007 대여점 (구작)


다들 별로라고 하는데 나는 졸라 재미있게 봤다. 시리즈 내에서는 3편 다음으로 제일 좋아하는 작품.

이후 마법 세계 공무원이 되는 데이빗 예이츠가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기도 하다. 이 시리즈 외에는 그의 다른 연출작을 제대로 본 게 없었기 때문에 어떤 스타일의 감독일지 완벽히 의문이었는데, <불사조 기사단>부터 <죽음의 성물> 연작까지 보고나니 그냥 채도 낮고 어두우면서도 차분한 영화 잘 만드는 사람인 것 같음.

그리고 그 차분한 톤이 이번 이야기의 결과 꽤 잘 맞는다. <불사조 기사단>은 '해리'의 내적 갈등이 쌓이고 또 쌓이다가 결국엔 폭발하는 에피소드이기 때문.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상황에 처해 거짓말쟁이로 몰린 소년의 학교 생활이 험난하기만 하다.

데이빗 예이츠는 마법부와 관련된 그 이야기 틀, 그리고 호그와트 내에서 입지를 넓혀나가는 '돌로레스 엄브릿지' 이야기 틀 이렇게 투 트랙을 통해 정치 드라마로 정통 했다는 그의 과거 이력을 새삼 일깨워준다. 쭉쭉 치고 나가는 전개가 좋은데 런닝타임은 또 짧은 편이라 굳이 나쁘게 말하면 좀 건성건성 하는 느낌이 있지만 그걸 또 좋게 말하면 시원시원한 속도감이 일품이라 할 수 있으니...

여기에 아이와 어른 사이 중간 단계에서 주변인의 상황을 겪는 주인공 무리가 느끼는 소소한 학교 생활의 재미 같은 것들이 끼어든다. 필요의 방에서 진행되는 덤블도어의 군대 시퀀스가 그래서 좋다. 여기엔 그동안 일종의 개그 캐릭터로서만 취급되어오던 '네빌'의 진솔한 이야기가 있으며, 더불어 부모 세대로부터 파생된 전쟁을 통해 오히려 가족의 의미를 더 공고히 하는 흐름이 있고, '초 챙'과 해리의 러브 라인, 주인공 3인방의 우정 따위가 맞물려 돌아간다. 특히, 주인공 3인방이 그리핀도르 기숙사 벽난로 앞에 앉아 수다 떨다가 웃는 장면은 최고의 포인트. 맨날 용 때려잡고 유니콘 시체 구경하는 이 시리즈에서 우리가 목도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소소해서 또 소중한 광경. 그렇다, 나는 이 시리즈의 최고 장점은 주인공이 학생이라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들 중 그 누구도 빗자루 타고 날아보거나 목숨 건 체스 게임 해본 적 없는 거잖아. 그러나 우리는 모두 학생이거나 학생이었지. 지금 청소년이거나 한 때 청소년이었지. 바로 그 점 때문에 영화 속 인물들에게 더 마음이 가고 공감이 쉽다. 

악역을 참 잘쓴 영화이기도 하다. 오버하지 않으며 귀여움과 악랄함 사이를 오가는 돌로레스 엄브릿지 캐릭터가 좋다. 이멜다 스탠톤이 진짜 멋지게 연기하고 있고, 특유의 분홍색 의상부터 고양이 가득한 사무실까지 프로덕션 디자인도 상징적이고 맘에 든다. 사악한 관료주의의 정점을 찍는 캐릭터이다보니 보는내내 답답해 거기서 부조리를 느낄 수 밖에 없는데, 이 캐릭터가 이렇게 잡아줬기 때문에 이후 나오는 쌍둥이 형제의 장대한 자퇴식 장면 같은 것들이 더 파괴력을 얻는 것 같다.

그럼에도 역시 절정의 악역으로 등장하는 '볼드모트'의 임팩트가 너무 세다. 솔직히 까놓고 말하면, 이후 <죽음의 성물> 연작에서 보다도 이 영화에서 볼드모트의 모습이 더 멋지고 무서웠던 것 같다. <죽음의 성물> 연작에서는 호크룩스 연이어 깨지며 멘탈 털리는 묘사 밖에 안 보여줬던 것 같은데, <불사조 기사단>에서는 부활한지 얼마 안 되어 말그대로 새로운 리즈를 찍던 상황이라 마법부에서 '덤블도어'와 벌이는 결전의 충격이 대단하다. 모든 시리즈 통틀어 이 영화에서 가장 강하게 나왔던 것 같음. 특히 덤블도어와 신명나는 마법 대결을 벌이다, 해리의 몸으로 빙의되는 장면. 거길 내가 제일 좋아한다. 몽타주 편집 잘하기도 했고, 거기서의 음악도 좋음. <아즈카반의 죄수>에서의 해리가 유독 거울을 많이 보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자주 한다고 했었는데, <불사조 기사단> 속 그 장면에서 해리가 거울을 보자 얼굴이 볼드모트로 변하는 장면이 마치 그 설정에 대한 페어처럼 느껴져서 맘에 든다. 이후 그 거울 깨버리며 본인 스스로를 되찾는다는 설정도 좋고.

어차피 영화판에서는 이후 별로 나오지도 않을 거, '그롭'은 그냥 빼버렸으면 어땠을까 싶다. 근데 그럼 '해그리드' 분량이 너무 안 나왔을라나. 가뜩이나 '시리우스 블랙' 그렇게 떠난 것도 빡치고 안타까운데 해그리드 마저 존재 삭제 당했더라면 팬들이 더 들고 일어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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