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8 16:15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 2009 대여점 (구작)


여섯번째 편인 <해리포터와 혼혈 왕자>에 이르러, 시리즈는 기존 전개의 방향을 조금씩 수정하는 동시에 피날레를 준비하는 모양새를 띈다. 이전 다섯편 동안의 패턴은 대부분 다 이런 식이었지. 머글 세계에서 방학 생활을 보내고 있던 '해리'가 호그와트로 돌아오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귐과 동시에 새로운 위기를 맞닥뜨리게 되는. 그러니까 말그대로 학원물답게 학교의 일년 학사일정에 따라 이야기 전개가 반복되었던 것.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조금씩 달라진다. 얘네 조금 있으면 학교 자퇴하고 도망자 신세 될 거라서.

영화가 좀 기묘하다. <아즈카반의 죄수><불사조 기사단>이 가지고 있던 기묘함이 긍정적인 기묘함이었다면, <혼혈 왕자>는 좀 미묘하게 기묘하다. 그렇다고 막 나쁘다는 건 아닌데, 좋기만 한 건 분명 아냐. 여러모로 좀 어중간한 구성을 펼쳐놓은 느낌. 좋다, 일단 원작과의 괴리가 있다. <불의 잔>부터 시작해 <불사조 기사단>과 이 영화까지의 원작 소설들은 모두 그 길이와 분량이 네 권과 다섯 권짜리의 구성으로 1편~3편에 비해 길었다. 물론 소설과 영화라는 매체 사이엔 분명 간극이 존재함으로 당연히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나조차도 원작 제일주의자가 아니라서, 필요에 따라서는 원작을 꼭 따라갈 필요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다만 <불의 잔>과 <불사조 기사단>은 일견 각색하기가 쉬워보인다. 아니, 쉬워보인다는 표현은 좀 그렇고... 각색 방향이 비교적 더 명확해 보인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겠네. <불의 잔>은 트리위저드 시합만 잘 유지한다면 나머지는 다 쳐내거나 요약해도 상관없는 이야기의 영화였다. 그에 비해 <불사조 기사단>은 좀 더 복잡해보이지만, 그래도 '엄브릿지'와 주인공 무리의 대결 구도만 잘 잡아낸다면 '그롭'이든 뭐든 다른 거 조금 하는 건 별 탈 없는 이야기였지. 그러나 <혼혈 왕자>는 다르다. <혼혈 왕자>는 설명해내야 하는 것도, 구체적으로 묘사해내야 하는 것도 모두 두 세가지 이상이다.

제목이 제목이니 일단 혼혈 왕자에 대해서 설명해야한다. 혼혈 왕자가 남긴 마법약 책으로 시작해, 끝내는 그게 결국 누구였는지까지 도달해야한다. 근데 또 그러려면 이번 이야기 내에서 그 '누군가'가 기존 시리즈의 분량에 비해 더 많은 등장과 활약을 했어야만 한다. 만약 이번 영화에서도 <불의 잔> 정도의 분량으로만 그 '누군가'가 나왔다가 막판에 그 지랄 떨었으면 그 충격이나 설득력이 반감 되었겠지. 그러니까 일단 혼혈 왕자 스토리 라인 하나만은 잡고 갈 수 밖에 없는 에피소드였다.

여기에 '슬러그혼'이 엮인 미스테리가 하나 얹어진다. 이번 영화에서의 해리 최대 목표라고 봐야 할 것이다. 거기다가 '말포이'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미스테리가 하나 더 추가되고, 더불어 '덤블도어'와의 호크룩스 원정을 더해 올려야하며 또 그걸 하려면 이미 덤블도어가 그 호크룩스들 중 몇 개를 박살냈다는 묘사도 해야하지. 곤트의 반지가 대표적일 텐데, 만약 원작 안 보고 영화만 봤다면 대체 저 반지가 무엇이고 볼드모트는 왜 저 반지를 호크룩스 삼았던 건지 잘 이해 안 갔을 것이다. 그만큼 좀 불친절한 구석이 있는 것. 그리고 막말로, 총 여덟편짜리 시리즈에서 호크룩스와 죽음의 성물 등 갑자기 중요한 아티팩트들이 연달아 소개되고 등장하며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도 좀 있는 것 같다. 

사실 이 모든 요소들은 소설 내에서 꽤 괜찮게 엮여있는 편이다. 왜냐면 그만큼 책이 두꺼우니까. 독자들에겐 각 이야기들과 설정들을 천천히 곱씹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게 안 됐다. 두 시간 좀 넘는 영화에 이것들 다 욱여넣고 거기다가 해리와 친구들의 학교 생활까지 틈새로 때려박아야하니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놀아야할지 감이 안 선다. 그와중에 시리즈 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중요한 러브 라인까지 여기서 다 해결하려 든다. 이건 공간 창출 마법을 써도 잘 안 될 것 같은데. 그러니까 이건 감독의 잘못이 아니라 각색가의 잘못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각색가도 무슨 잘못이겠어... 그냥 소설과 영화 매체의 차이에 의해 발생한 어쩔 수 없는 사고에 가깝지...

촬영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분명 특기할 만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버로우 앞마당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추격씬은 그 자체로 유러피안 스릴러 같은 면모가 있어서 좋아하는 편. 그러니까 데이빗 예이츠 그렇게 연출 못하는 편은 아니라니까... 특유의 어둡고 채도 낮은 톤 앤 매너도 나랑 잘 맞고... 다만 각본이 낮게 잡은 물에 두 세 봉지씩 때려박아 불어날대로 불어나는 바람에 짠맛과 밀가루맛 밖에 안 남은 봉지 라면 같이 굴어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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