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9 22:36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 2부, 2011 대여점 (구작)


일반적인 기준으로만 본다면야 그저 '나쁘지 않은 영화'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기화 되어 한 세대와 보폭을 맞춰 걸었던 시리즈들이 으레 그렇듯이,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 2부>는 직전까지 나왔던 일곱편의 영화들과 더불어 관객들에게 강한 원기옥 한 방을 선사한다. 여기서 끝나는 게 너무 아쉬워서, 영화가 끝난 뒤에도 자꾸만 곱씹게 되는 그 마음. 떠나지 않고 이 영화 속의 세계에서 조금만이라도 더 머물고 싶어지는 그런 마음.

특기할 만한 점은 영화가 생각보다 짧다는 것이다. 두 시간이 좀 넘는 런닝타임. 하기야, 원래라면 한 편짜리로 만들었어야 했던 소설을 두 편으로 나눠 찍었으니 생각보다 짧은 게 아니라 생각보다 짧은 것처럼 보이게끔 야바위 쳐놓은 거지. 그러나 어찌되었든 총 8부작 구성으로 확정된 시리즈의 피날레에서 런닝타임을 겨우 2시간 10분만 썼다는 게 특이하다. 10여년 간 이어져온 프랜차이즈인 건데, 그럼 욕심 좀 더 날만 하잖아.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이 그랬고그건 시리즈내내 길었잖아, 최근 <어벤져스 - 엔드 게임>이 그랬듯이 이 영화도 3시간짜리 피날레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근데 제작진이 그렇게 안 놔둠.

대신 전개가 졸라 빠르다. 두 시간동안 꾸역꾸역 담아내야만 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미 알고 있으니 귀찮게 하지 말라는 듯, 각본이 쏜살 같다. 이제 막 영화 시작했는데 지팡이 장인 & 비열한 도깨비랑 일대일 면담 한 번씩 나누더니 어느새 그린고트 은행 털러 출발. 그리고 이어지는 호크룩스 쟁취와 대탈출(feat.스마우그), 여기에 바로 붙어버리는 호그와트 침투 장면까지. 정신 살짝 놓고 있으면 바로 '잠깐, 얘네가 여기 왜 왔지?' 싶어진다. 그러니까 핵심 시퀀스가 되는 큰 그림들은 확실히 잘 보이는데, 그 큰 그림 사이사이를 연결해주는 부속 씬들이 금방 금방 지나가버리는 느낌. 퀴디치 경기 중 골든 스니치 찾듯이 생각보다 집중력을 요하는 영화라는 생각.

사실, 전개가 빠르다는 게 별로 단점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느끼는 가장 큰 단점은, 메인 악역이자 10여년동안 공들여 온 대마왕 '볼드모트' 캐릭터가 너무 가볍게만 느껴진다는 데에 있다. 마법 능력 킹왕짱인 것은 알겠다. 근데 설정만 그럼 뭘해, 보여줘야지. 영화가 소설이냐? 말로만 후두려 팰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보여줄 땐 보여줘야 하는 거라고. 이 부분에서 볼드모트는 실패한 캐릭터처럼 보인다. 차라리 <불사조 기사단>에서 덤블도어랑 맞짱 떴던 게 더 무서웠다. <죽음의 성물 - 2부>에서 볼드모트가 하는 건 크게 세 가지 정도처럼 보이는데, 일단 호크룩스 터질 때마다 휴가 나와 집에 다 도착해서야 군복 앞주머니 속에 든 총기보관함 열쇠를 확인한 갓 일병 같은 표정으로 멘탈 붕괴를 보여주는 게 1번. 그리고 고등학교 하나 레이드 뛰는 거면서, 한참 어린 후배 학생들이 힘들어할 때마다 그 꼴보고 좋다며 쳐웃는 거, 그게 2번. 여기에 마지막으로 '해리'랑 호그와트 상공 활강하는 액션 카메라로 찍은 듯한 느낌의 충공깽한 비주얼이 3번이다. 그 무엇 하나 이 대마왕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우러러 보게끔 만들어주는 부분이 없다. 아니, 이쯤되면 어차피 막판이고 곧 죽어야 하는 양반이니 끌어내릴 대로 끌어내리고 껌뱉듯 버리겠다 이건가.

호크룩스와 죽음의 성물 등, 세계관 내 갑툭튀한 여러 설정들이 아직도 발목을 붙잡는다는 점도 아쉽다. 물론 원작 소설 여러번 독파한 진성 팬들이야 이런 거 별로 문제 안 되겠지. 그러나 원작 소설 다 읽었던 나로서도 더듬더듬 이해 되더라. 애초 원작 소설 안 읽은 관객들을 대상으로 이해도의 기준을 맞췄어야 하는 거 아니냐? 지금 버전은 시리즈 특유의 복선까는 장점이 하나도 안 보임. 급해지니까 갑자기 시리즈 내내 일언반구도 없던 래번클로의 유령 '회색 숙녀' 던지고, 마법 지팡이의 주인선택론도 영화 시작하자마자 급 강의. 아니,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정신 잠깐 놓으면 놓치는 부분들이 바로 이런 거라니까? 이런 설정들 살짝 놓치고 영화보면 대체 갑자기 볼드모트가 '스네이프' 왜 죽이는 건지 1도 모를 수 있다 이거지.

스네이프 이야기. 사실상 이번 에피소드에서의 진 주인공이 되었어야 하는 양반인데, 이 양반의 진짜 과거사를 담아낸 플래시백 몽타주 시퀀스도 그닥 효과적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자체로 아름답기는 하고, 제작진 입장에서도 나름 신경쓴듯한 모양새이긴 하다. 그리고 얼마나 어려웠겠어, 영화는 막바지 하이라이트를 향해 달려가야 하는데 갑자기 여기서 긴 분량의 플래시백 넣어야만 하니까... 아무래도 이게 최선이었겠지. 그래도 스네이프의 패트로눔이 왜 암사슴인지 한 번 정도만 더 짚어주고 갔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근데 그건 그거고... 아무래도 알란 릭맨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별 거 아닌데, 죽음을 목전에 두고 그가 우는 장면이 너무 슬펐다. 스네이프가 죽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아니라, 알란 릭맨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서 더 슬펐다. 

하다보니 불만들을 먼저 이야기했는데, 그럼에도 영화는 재미있는 편이다. 죽음을 먹는 자들과 호그와트 전체의 대결은 여전히 좀 아쉽지만, 그럼에도 마지막 편 다운 총결전의 씀씀이가 마음에 든다. 10여년간 지속되어 온데다 이야기 특성상 여러 조단역들이 등장할 수 밖에 없는 프랜차이즈였는데도, 마지막 편이 되어서 그 모든 캐스팅과 프로덕션 디자인들을 여전히 유지해주고 있다는 데에 다시 한 번 놀란다. 따지고 보면 시리즈 내내 잠깐 나왔을 뿐인 배우들도 다 모여서 영화를 찍었더라. 특히 해리의 그리핀도르 동기들은 이제 그냥 나랑 친구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 사소하지만 거대한 캐스팅들을 다 유지해줘서 고마웠다.

영화가 이상하게 담백한 것 같다. 보통 장기화된 시리즈의 마지막 편들은 다 에필로그를 질질 끌잖나. 그 완성도와는 별개로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도 그래서 빡쳤었지, 이제 좀 끝낼만 한데 계속 안 끝내고 엔딩 크레딧 아껴둬서. 근데 <해리 포터>는 안 그랬다. 볼드모트를 물리치고 난 직후의 엔딩도 그냥 주인공 세 명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으로 담담하게 마무리. 물론 팬들을 위한 19년 뒤의 에필로그가 존재하지만, 그것도 그렇게 길진 않더라고. 그리고 바로 이 쿨한 태도 때문에, 내가 이 영화 속에 더 남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더 보여줬으면 좋겠는데, 더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영화가 그러질 않고 있으니. 정말 기묘하게도 개봉 당시 이 영화를 봤던 2011년 극장에서의 경험보다, 오히려 거의 10여년 만에 재감상을 한 거실 TV 앞에서의 경험이 더 뭉클하게 느껴졌다. 요 며칠간 시리즈를 내내 연이어 탐독해서 그런 건가. 그러니까, 흥행 기록도 흥행 기록이었겠지만 왜 사람들이 이 세계관 단물을 더 빨아먹기 위해 스핀오프 시리즈를 만들었는지도 잘 알겠다. 어휴... 이왕 만들 거 잘 좀 만들지 그랬어, 진짜.

덧글

  • SAGA 2021/01/19 22:52 # 답글

    왕좌의 게임 같이 장기간 이어진 시리즈물 치곤 마무리를 깔끔하게 했다는 것에 박수를 쳐줬지요. 해리와 볼드모트의 싸움보다는 네빌의 내기니 참수가 더 기억에 남네요...^^;;;
  • CINEKOON 2021/01/31 16:16 #

    볼드모트보다 내기니가 더 카리스마있어서 그런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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