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감에 무딘 인간과 오히려 감정에 고양된 안드로이드의 만남.
아웃사이드 더 스포일러!
드론 조종사인 주인공 '하프'는 생사가 오가는 긴급한 전투 상황을 젤리 먹으며 모니터를 통해 지켜보는 것으로 첫소개된다. 전투 현장의 전우들이 서로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동분서주하는 동안에, 하프는 전체를 살리기 위해서는 그 중 두 명을 희생할 수 밖에 없다는 지극히 이성적이고도 수학적인 판단으로 상부의 명령까지 어겨가며 미사일을 발사한다. 심지어 그는 말한다, 우리가 실수를 저지르게 만드는 인간적인 감정이야말로 결점인 것이라고.
이에 반해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일종의 안드로이드 '레오'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첫소개된다. 그는 LP 플레이어를 통해 음악을 감상하는 것으로 모습을 보이고, 새소리를 듣고, 여자와 아이들을 걱정하며 연민을 느끼며, 장난을 치고, 실없이 웃고, 그러면서 스스로 감정과 감각이 풍부함을 자부한다. 로봇처럼 굴던 인간과 인간처럼 구는 로봇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된다.
영화는 지극히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스럽다. 엄청나게 거대한 규모의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건 아니지만, 딱 쓸데만 쓴다-라는 인상을 주는 특수효과와 CGI 배분으로 더 그렇다. 비교하자면 딱 <디스트릭트 9>과 <채피> 정도 수준의 스케일이라고 보면 될 것 같은데, 그 자체는 생각했던 것보다 볼만한 수준. 보는내내 어색하다는 느낌이 크게 들지는 않는다. 여기에 안소니 마키가 보여주는 액션도 꽤 그럴 듯하고. 특히 팔콘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한 그이다 보니, MCU를 의식한 듯한 드립이 많이 나오는 편. "하루종일도 할 수 있어" 대사라든지, 백인 캡틴 아메리카 언급이라든지.
또 주적을 러시아로 설정하는 미국 영화인가 싶었지만, 결국 보다보면 다른 포스트 9/11 영화들처럼 미국을 돌려 비판하는 영화였다. 평화를 위해 세계 경찰로서 활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보면 그 분쟁 자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미국의 면모. 뻔한 신 냉전 프로파간다 영화인가 싶었는데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근데 문제가 있다. 영화가 엄청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중반까지는 꽤 그럴 듯 했거든? 허나 고만고만했던 그 수준이 후반부 들어 수직하강하게 된다. 여기저기를 오가는 주인공 하프의 동선은 정신이 없고, 무엇보다 핵심 주인공에서 주 악역으로 변모하는 레오의 음모와 행동에 물음표가 붙는다. 그러니까 이 새끼가 미국에 핵탄두 날리려는 이유가 뭐라고? 자신이 안드로이드로서 고통받았으니 후대의 다른 안드로이드 동지들 만큼은 해방시켜주고 싶다? 그래서 날 만든 공장이 있는 미국에 핵을 싸지르겠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그렇다고해서 이에 대한 묘사를 영화가 해준 것도 아니다. 아예 안 해줬다! 안드로이드로서 레오가 고생했던 모습이라든지, 공장에서 개발되고 생산되던 당시의 고통을 보여준다든지 했어야 하는데 그런 걸 일체 안 해놓고 징징 짜대고만 있으니 이게 관객 입장에서 납득될리가.
중간은 가는 영화가 되겠다- 싶었었는데 상상초월적으로 허접한 후반부와 결말부 때문에 와르르 무너진 영화. 주인공처럼 보였던 놈을 악역으로 싹 돌린 건 충분히 흥미로웠는데 그에 대한 이유를 제대로 찾아주진 못했던 영화. 그러니까 그 아이디어만 딱 존재했던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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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898 2021/01/20 12:21 # 답글
CINEKOON 2021/01/31 1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