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1 12:11

소울 극장전 (신작)


픽사도 이제 더이상 성역이 아니다. 불패신화로 유명하던 천상계의 이 회사는 <카>와 <메리다와 마법의 숲>, <굿 다이노>, <온워드> 등의 작품들을 통해 점차 인간계로 내려왔다. 물론 그것들이 형편없기만 한 작품들이었던 것은 아니다. 여전히 꽤 괜찮은 영화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비교 대상이 되는 형과 누나들은 <토이 스토리>였으며 <월-E>였고, <라따뚜이>였으며 <업>이었다. 감히 쉽게 넘볼 수 없는 권능을 가진 그런 작품들이었다. 그렇다면 이번 <소울>은 어떠한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피트 닥터의 신작. 그의 연출작으로는 <몬스터 주식회사>가 있고 <업>이 있으며, 끝내 <인사이드 아웃>이 있었다. 픽사 내에서도 유독 더 빛이나는 황금라인의 감독. <소울>은 과연 그 사내 동아줄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실패했다고 본다. 맞다, 나는 이 영화를 그저 그렇게 보았다. 

딱 잘라 말해 설정부터 그리 신선하지는 않다. 픽사는 언제나 우리가 보지 못한 세계관의 이면을 담아왔다. 어린 주인이 보지 못하는 장난감들만의 내밀한 시간, 옷장 너머 괴물들이 사는 세상, 우리 마음과 머릿속에 존재하는 감정들의 평생 직장에 이르기까지. 픽사가 창조한 이면의 세계는 언제나 흥미로웠다. 그러나 <소울>이 묘사하는 프리(Pre-) 라이프 단계의 세상은 이전작들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는 점에서 신선함을 잃는다. 이른바 유 세미나로 통칭되는 이 세계관은 너무 단편적이다. 아이디어는 뻔하고 디자인은 포근한 동시에 익숙하게만 느껴진다. <인사이드 아웃>엔 기발한 상상력과 고차원적인 유머가 동시에 존재했었다. 한 사람의 인격을 규정하는 여러 섬들, 오래된 기억들을 지우지만 유독 흥이나는 멜로디에 만큼은 집착하는 기억 청소반, 종종 비슷한 것처럼 느껴져 섞이는 '사실'과 '의견'들. <인사이드 아웃>은 우리가 상상 해봤음직한 요소들을 멋드러지게 시각화 해낸 것은 물론 한 번에 딱 이해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세계관을 짜놨다. 이에반해 <소울>의 그것은 빈약 하게만 느껴진다. 영혼의 성향들을 증폭해내는 각 방들의 디자인과 그 안에서의 과정은 지나치게 생략되어 있다. 솔직히 유 세미나 곳곳은 그냥 다 엇비슷해 보일 뿐인 것이다.

새롭게 만든 세계관이 흥미를 끌지 못하니, 관객으로서 더 집중하게 되는 것은 뉴욕을 기반으로한 현실 세상의 이야기다. 솔직히 초반까지만 봤을 때는 또 눈물 흘리겠지 싶었다. 내가 좋아해 마지않는 부서진 사람들의 이야기. 자신의 삶이 헛된 것이라 여기며 상처받는 주인공. 그리고 그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일상의 평범함을 소중히 느끼게 된다는 전개. 이거 내가 딱 좋아하는 것들이거든. 허나 <소울>은 그 점에서도 전형성으로 빠지고 만다. 고양이 몸에 들어간 '조 가드너'와 조 가드너 몸에 들어간 '22'의 상황은 그야말로 뻔할 뻔자다. 몸 바뀌는 에피소드로 재미를 뽑으려했던 바디 체인지 물이 어디 한 두 개인가? 각자 어색한 몸으로 고군분투하고 동분서주하는 두 주인공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재미없었다. 때때로 지루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재즈나 소울 같은 장르의 음악을 메인 소재로 삼을 것처럼 굴었으면서, 정작 다 보고나니 음악적 요소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중심이 되지 못했다는 점 역시 실망스럽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공인 조가 자신의 결심을 무르고 22를 위해 희생 아닌 희생을 하는 당위성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다. 아니, 뭔지는 알겠어. 근데 거기서 각본의 설득력이 약한 느낌. 꿈에 그리던 무대에서 신나게 연주해 좋은 반응까지 이끌어놓고 갑자기 현자 타임 타령 하니까 관객으로서는 납득이 잘 안 가는 거다. 공연 끝나고 올라오자마자 심드렁한 그 표정이 존나 꼴보기 싫기까지 했다. 

코로나 19 시대를 맞아, 우리가 잃었던 일상의 평범함에 대해 다시금 재조명하는 영화의 메시지는 너무나도 훌륭하고 사무친다. 그래서 후반부 조의 새로운 결심을 받드는 그의 과거 회상 몽타주 시퀀스는 그 자체로 감동인 것이다. 어릴 때 보았던 불꽃놀이의 추억, 처음 만졌던 피아노의 온도와 질감, 지하철을 타고 가다 창밖으로 만나는 세상의 멋진 풍경. 그 모든 것들에 공감이 가고, 덕분에 내 일상 역시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딱 그 시퀀스만 떼놓고 본다면. 그 시퀀스 자체는 좋지. 근데 갑자기 그 시퀀스가 거기 들어가 있는 이유를 모르겠는 거다. 22 실컷 갈구고 그토록 원하던 삶을 다시 찾아 좋아할 땐 언제고, 갑자기 먹다남긴 피자와 베이글 쪼가리 보더니 과거 삶의 소소한 행복들을 반추 해낸다고? 깨달음이 그렇게 쉬웠으면 나도 지금 예수와 부처 뒤를 잇는 성인군자 랭킹 탑텐 유저가 되어 있을 것이다. 

분명히 말하는데, 나쁜 영화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괜찮은 영화군에 속한다. 그러나 예고편이 적이었다. 예고편이 너무 쩔어줬다. 그거에 반해 잭이 산 콩나무 마냥 기대치가 쑥쑥 상승 했었고, 결국 그 높아진 기대에 본편이 깔린 모양새. 다른 회사의 애니메이션들과 비교하자면 분명 우위에 있겠지만, 같은 픽사내 우등생들과 섞어놓기엔 조금 부끄러운 그런 영화. 피트 닥터의 태작. 나에게 <소울>은 그런 영화처럼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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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저도요 2021/02/05 22:45 # 삭제 답글

    나만 별로였나? 싶어서 괜히 후기 찾아다 읽던 중인데 반갑네요.
    소울 보기 직전에 인사이드 아웃을 다시 보고 와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CINEKOON 2021/02/13 12:36 #

    <인사이드 아웃>은 거의 뉴 클래식급 걸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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