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5 21:06

헌트, 2020 대여점 (구작)


그 게임의 이름이 <배틀 로얄>이든, <헝거 게임>이든, 아니면 다른 뭐시기든 간에 서바이벌 게임하는데 일방적인 뉴비학살 안 벌어지려면 운영진의 밸런스 조절이 가장 중요하지. 근데 <헌트>의 그 게임은 거기서 실패했다. 여러모로 평균치 미달인 뉴비를 영입해야 했었는데, 공지 메일 실수로 그 뉴비와 동명이인인 같은 동네의 애먼 고인 물이 끌려온 것. 애초 운영진들 부터가 초보자 티 갓 벗어난 인간들이었는데 여기에다 존 윅 급의 인간을 하나 풀어놨으니 결과는 안 봐도 4K 블루레이.

블룸하우스가 만든 영화인 데다가 갑부들의 평민 사냥이라는 컨셉이 주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본격 고어 호러 또는 고어 스릴러로써의 면모를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보기 전에는 좀 짜증나는 것도 있었다. 나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 근데 보면 볼수록 호러 보다는 액션이 가미된 B급 코미디처럼 보이는 거다. 그리고 그게 너무 내 마음에 들었다. 물론 잔인한 묘사도 포함되어 있다. 허나 진짜 딱 B급 영화스러운 묘사로 그냥 일관해버리니 오히려 모든 게 다 코미디처럼 느껴지더라고. 경기 시작하자마자 연속으로 두 번이나 쇠꼬챙이에 찔린 여성의 누운 모습에선 진짜 존나 웃었다.

주인공처럼 소개했던 초반의 인물들을 바로 싹 보내버리면서 클리셰 아닌 클리셰 타파에 열 올리는 모습도 좋았고, 그러면서도 먼치킨 주인공으로 사이다 한 사발 꺾어주는 전개가 일품이라고 하겠다. 더불어 블룸하우스 제작 영화라는 점이 호러 말고 다른 데에서 드러나는데, 바로 21세기 지금 이 순간의 현실에 깊게 발 담그고 있는 그 설정 때문이었다. 리버럴한 성향의 갑부들은 이 세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 시골 촌뜨기를 한 다스로 잡아다가 사냥한다. 이미 이 영화 속 세계의 대중들도 부자들의 '저택 사냥'이라는 도시 전설을 알고 있고, 이 갑부들은 스노비즘으로 빚은 특유의 선민 사상으로 그 대중들을 무시한다. 그들은 성 평등을 넘어 LGBTQ까지 끌어안는 정치적 올바름을 지표로 삼고 동시에 멸종위기 동물들을 걱정하며, 제 3세계 난민들의 삶을 구제하려 애쓴다. 씨발, 근데 정작 지들 딴에 수준 미달이라고 꼬리표 붙인 인간들 잡아 죽이며 즐기는 데에는 아무런 죄책감이 없음.

힐러리 스웽크가 연기한 '아테나' 정도를 제외하면 이 악역 포지션의 갑부들이 그리 상세히 묘사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캐릭터성을 한 번에 잘 보여줄 수 있도록 정돈해 묶은 대사들이 그럴듯 하다. 막말로 이 인간들 소개는 초반 비행기 내에서의 장면 하나랑 중반 벙커에서의 장면 하나, 이렇게 총 두 개 뿐인 건데도 대충 어떤 사람들인지 다 알 것 같다. 심지어 어떤 부분에서는 꽤 존경스럽기까지 함. 제아무리 남녀 평등주의자라고 자부하는 나로서도, 당장 목숨을 담보로 그것을 요구한다면 곧바로 "남자 만세!"를 외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 속 악당들 중 몇몇은 그 신념과 고집을 꺾지 않는다. 여자라고 봐주지 말라는 페미니스트 갑부는 그렇게 골로 간다. 여기에 아테나 역시 마찬가지다. 본인의 실수가 분명함에도 끝까지 그 과실을 인정하려 들질 않는다. 그렇게 고집 부리고 또 부리다가 결국 내뱉은 한 마디가 겨우 "웁스"라니. 진짜 자존심 존나 세네.

<겟 아웃>을 통해 '흑인'이라는 인종을 대상화하는 걸 넘어 상품화까지 해대는 요즘 풍토를 적나라하게 깠던 블룸하우스의 특징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그 갑부들은 세상을 가엽게 여기지만 인간은 가볍게 죽이고, 난민들을 불쌍히 여기지만 동시에 그들의 이미지를 고착화하고 이용한다. 여기에 '돈'의 죽음은 또 어떻고. 내가 봤을 때 이 양반은 진짜 연루된 사람 아닌 것 같던데.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일종의 프로파간다로 일반 대중들을 분열화 시키고도 있는 것이다. 

근데 영화 이면에 깔린 메시지가 어떻고 또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장르적으로 꽤 재밌게 봤다. 똑똑하고 합리적인 주인공의 뒤를 따라가는 재미. 고구마 먹일 것 같은 내용에서 사이다 콸콸콸 터뜨려주는 대인배의 풍모. 진짜 별 것 아닌 B급 영화처럼 보이는데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통쾌하게 본 영화. 아침에 기상 하자마자 넷플릭스 통해 본 영화였는데 덕분에 하루가 상쾌했다. 

뱀발 - 베티 길핀 존나 멋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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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ID U MISS ME ? : 투모로우 워 2021-07-05 18:15:09 #

    ... 가능성들에 대해 좀 더 탐구하는 영화였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앞서 말했듯 결국엔 오락 영화인 건데 거기까지 기대하는 게 좀 욕심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나저나 &lt;헌트&gt;에서 베티 길핀이 너무 멋지게 나와 이번 영화에서도 기대했는데, 주인공의 현재 시점 아내로 나와 그리 많이 등장하지는 않더라고. 그게 좀 아쉬움. ... more

덧글

  • nachito loco 2021/01/26 15:10 # 답글

    재미있겠는데요..
    제가 있는 곳의 넷플릭스에서는 검색이 안되는군요.,....
  • CINEKOON 2021/01/31 16:15 #

    블루레이로 구매하시는 건 어떨까요... 저도 지금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 넣었다 뺐다 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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