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31 16:13

케빈에 대하여, 2011 대여점 (구작)


'케빈'이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 대해 영화는 구체적으로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결국 둘 중 하나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첫째는 비교적 현실적인 대답으로, 그가 유년기에 겪었던 '에바'의 잘못된 표현과 행동들로 인해 후천적으로 그리 되었다는 것. 자녀의 생애 전반에 걸쳐 그 부모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특히나 유년기의 기억과 경험이 그 중에서도 유독 더 중요하다는 점은 이미 많이들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니까. 그럼 두번째 대답은? 별 거 아니다. 하지만 별 거 아니라서 더 무섭다. 애초에 케빈은 그렇게 생겨먹은 악마였다는 것. 경험과 실수라는 인간적 요소로 어떻게 해볼 수 있었던 존재가 아니라, 그냥 태생부터 그런 상태로 찾아온 우연적 결과였다는 것. 물론 두 대답 모두 무서운 건 매한가지지만, 영화가 유독 두번째 대답에 좀 더 가까운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 같아 더 무서웠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좀 맥이 빠지기도 했다. 

초장부터 결론쓰고 앉아있는 꼴이긴 했는데, 나는 이 영화가 부모 자식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좀 더 농밀하게 다루는 영화일 줄 알았거든. 그냥 밑도 끝도 없는 <오멘>류의 오컬트적 요소가 아니라, 서로에게 속박당한 엄마와 아들의 그 관계로 인해 파국으로 치달아가는 심리 드라마 혹은 심리 스릴러일 거라 생각했던 거지. 아, 분명히 이야기하는데 물론 영화가 그런 태도 역시 취하고 있다. 그러나 요상하게도 내 기준에서는 그런 부분들이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었다. 오히려 케빈의 태도와 행동에 대한 많은 부분들을 미스테리로 남겨둠으로써 그를 그나마 인간적인 싸이코보다 그냥 내츄럴 본 이블에 더 가깝게 묘사하는 것 같아 그런 감상이 든 것 같기도 하고. 막말로 지 아빠랑 동생까지 죽인 건 좀 너무 나간 전개 같이 느껴져서.

그래서 영화의 내용에 확 매혹 당하진 못했는데, 그럼에도 언급하고 넘어갈 수 밖에 없는 건 사운드 몽타주의 기가 막힌 활용이다. 스페인의 토마토 축제를 묘사하는 오프닝 시퀀스에서 잔잔하게 울려퍼지는 희생자와 유족들의 분노. 그러나 정작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하릴없이 터져나가고 있는 수 십 수 백 개의 토마토들. 그 사운드 몽타주 덕분에, 인생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던 에바의 자유로운 젊은 시절은 곧 운명의 나락으로 끌려가고 있는 듯한 순례자의 피튀기는 절망적 모습으로 치환되어 간다. 따지고 보면 별 것 아닐 수 있는 편집이지만, 마치 그 자체로 콜럼버스의 달걀 같다. 이 정도면 연출 존나 잘한 거지, 이게.

틸다 스윈튼 연기야 두 말할 것 없겠고, 그러니 그것보단 에즈라 밀러를 본격적으로 찾아낸 영화로써 좀 더 깊이 다뤄야하지 않을까. 어린 듯하면서도 성숙하고, 장난끼 어리면서도 섬뜩한. <월 플라워>도 보고 <저스티스 리그>도 봤지만, 유독 이 영화의 그 모습에서 참 좋은 배우의 마스크를 지녔구나-하며 감탄하게 됐다. 솔직히 다 떠나서 그냥 에즈라 밀러 발굴해낸 영화라는 점에서 이미 하나의 기념비를 세운 것이다. 앞으로 에즈라 밀러가 어떤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느냐에 따라 또 달라질 순 있겠지만 말이다.

뱀발 - 태어나서 본 영화 통틀어 가장 안 어울리는 커플이 틸다 스윈튼과 존 C 라일리인 것 같다. 린 램지는 그걸 노리고 캐스팅한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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