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03 17:15

북스마트 극장전 (신작)


하이틴 장르, 성장 드라마, 학원물. 그 어떤 이름으로 싸잡아 불러도 상관없다. 어찌되었든 이들의 요지는 학교를 배경으로 하거나 또는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삼아서, 10대라는 그 나이대에서만 겪을 수 있는 정서와 경험들을 통해 결국엔 어른으로 성장해나가는 법을 배운다-인 거니까. 이 계열의 고전으로는 <조찬 클럽>이나 <페리스의 해방> 같은 영화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 정말 개인적인 생각인데, 어쩌면 <북스마트>가 우리 시대의 새로운 하이틴 고전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여겨졌다. 

초장부터 대사를 통해 <페리스의 해방>에 대한 일종의 존경심을 대놓고 언급하는 작품이고, 그러면서도 이야기가 거의 마무리되는 후반부가 되어서는 다른 대사를 통해 예전 뮤지컬들은 계속 반복해 상연되니 지루하지 않냐며 새로운 시대의 관객들에겐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일갈 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배우 출신 감독인 올리비아 와일드의 출사표가 보이는 순간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출사표 써놓고 이 정도로 영화 만들었으면 적어도 부끄럽지는 않겠단 생각도 했다. 

살다보면 정말로 그런 순간이 있지 않나. 인생이 나한테만 이렇게 모질고 힘든가- 싶은. 공부가 이렇게 어렵고 힘든 건 나 뿐인가? 학교 생활이 이렇게 괴롭고 지루한 건 나만 그래? 그건 비단 학생 시절 때만의 감상이 아니다. 대학 생활도 마찬가지고 군대도 마찬가지야. 회사 생활도 마찬가지고. 심지어는 연애나 사회 생활도 다 마찬가지란 거다. 왜 유독 나만 힘들어하는 것 같지? 같이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빌빌대고 찌질하게만 굴던 저 자식, 졸업 후엔 대체 뭘 했길래 지금은 나보다 더 잘 나가는 걸까? 로또라도 된걸까? 

<북스마트>의 두 주인공도 고등학교 졸업식 전날에 그걸 느낀다. 나는 학교 생활 정말 빠듯하게 했고, 학생 회장 역할에다가 봉사 점수 또한 열심히 땄단 말이야. 그래서 명문대 합격할 수 있었던 건데... 그런데 학교 생활 내내 놀고 먹기만 했던 저 덜 떨어진 놈들은 대체 어떤 수를 썼길래 명문대 진학을 앞두고 있고 또 장학금 탈 상황에 놓인 것이란 말인가. 이거 나만 억울해? 나만 학교 빡세게 다닌 거야? 왜 다들 펑펑 놀 거 다 놀면서 저토록 잘된 거냐고!

아까도 이야기했듯 우리네 인생이라는 게 다 그렇고, 특히 학창 시절에는 그게 더 크게만 느껴지는 법이다. 그러나 달리 바꿔 말하면, 내가 덜 떨어진 놈들이라고 비하한 그 놈들 역시 자기네 인생에선 주인공이었을 거고, 주인공이었던 만큼 만만치 않은 부담에 시달렸겠지. 그러니까, 그냥 내가 몰랐던 것 뿐인데도 억울한 심정. 여기에 이상한 선민 사상까지 곁들여진다. 난 저 놈들이랑 달라. 아, 저 예쁘장한 기집애는 다른 남학생들 거시기 빨고 다니느라 바쁘다지?

그러나 그 예쁘장한 기집애에게도 사정은 있었고 나름의 변명거리 역시 존재했다. 마냥 멍청한 것만 같다 놀리던 학생회 부회장, 사실은 주인공도 좋아하고 있었다. 아닌 척 했을 뿐이지. 이렇게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우리 모두가 주변인이던 시절엔 이런 오해와 곡해, 우월감과 시기심이 모두 혼재되어 있었다. 그걸 구분하고 통제하기가 어려웠다. 근데 존나 웃긴 건 어른이 된 지금도 그걸 완전히 통제해내기란 불가능하단 것이다. 그냥 어렴풋하게 구분 방법을 좀 더 배우는 것 뿐인 거지.

교훈이란 표현 뭔가 도덕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단어라 사용하는 데에 주저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굳이 쓴다. 주인공 둘은 그 교훈을 하룻밤동안에 배운다. 그리고 그 과정이 무척이나 재미있다. 여러 파티를 전전하는 과정도 웃기고, 그 각자의 파티들에 당도해 벌어지는 에피소드들도 신선하다. 이 장르에서 '신선함'이란 빛과 소금 같은 것이다. 전통적이고 교과서적인 성장 드라마의 플롯, 그런 거 물론 있겠지. 그러나 하이틴 장르는 영화의 여러 장르들 중에서도 유독 특정 나이대에만 집착한 장르 아닌가. 가장 빠르고, 가장 예민하고, 가장 최신의 세대. 그런 세대를 다루고 있는 장르에서 '신선함'이 매우 중요하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북스마트>는 그걸 잘 채워준다. 영화사에 있어 아주 획기적인 방식인 것까진 아니지만, 그럼에도 몇 가지 변주와 트렌디한 현실 반영 만으로도 얼마나 영화가 달라질 수 있는지 우리를 깨우쳐주는 영화.

무엇보다 캐릭터들을 알차게 사용해서 좋다. 주인공 둘 뿐만 아니라, 잠깐 얼굴만 비추고 사라질 수도 있었던 캐릭터들을 영화는 넓은 품으로 끌어안아 준다. 때로는 개그의 소재로 그치기도 하고, 때로는 인물들 사이의 갈등을 부추기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끝내는 담백하면서도 깨끗한 결말부 졸업축사 장면으로 모두를 다 안아주는 느낌. 필연적으로 '어른'들이 만들 수 밖에 없는 '청춘'들에 대한 영화로써는 최선을 다한 모양새였다고 느꼈다.

그리고 일단 올리비아 와일드의 연출이 정말로 좋다. 짝사랑 상대와 마주해 상상 속에서 벌어지는 뮤지컬 장면 따위도 생각해보면 엄청 뻔하고 유치한 건데, 안무와 편집 타이밍으로 그걸 다 살려냈다. 중간에 주인공 둘이 쭉쭉빵빵 인형으로 변신하는 장면이나 피자 가게 소개하는 장면 등의 카메라 움직임도 좋았다. 감독으로서의 올리비아 와일드를 앞으로 좀 더 기대해봐도 괜찮을 것 같다. 

영화가 끝날 때, 다른 건 모르겠고 그냥 주인공 둘을 더 보고 싶단 생각만 했다. 둘이 잘 살았으면, 쉽지 만은 않은 어른의 과정에 이들이 갖은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끝내는 그에 잘 녹아들었으면. 10년, 20년이 지나서는 페리스보다 에이미 & 몰리가 더 보고 싶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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