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운이 감도는 1939년의 영국. 이름을 쉽게 불러서는 안 될 것 같은 대마왕의 얼굴을 한 어느 발굴가가 미망인의 의뢰로 땅 파기에 나선다. 공들인 발굴 작업 끝에 땅밑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어느 옛날의 배. 그러나 그 '느닷없이'라는 표현의 자리에 구체적인 이유를 더하고, '어느 옛날'로 대충 명시된 자리에 정확한 연도를 써내려가는 것이 발굴가의 일 아니겠는가.
그래봤자 땅 파서 유적 발굴하는 이야기일 텐데 이게 영화로 만들어질 만큼의 흥미로운 소재가 될 수 있을까? 그 관점에서 봤을 때, 영화가 큰 재미를 주지 못하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더 디그>는 모든 것이 불확실한 삶 속에서 그 때문에 무력감을 느끼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잊혀진 과거도 아니고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도 아닌 '바로 지금 여기'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영화다.
영화는 과거를 붙잡고 있는 것들을 계속 보여준다. 누군가의 죽음을 기리고 또 놓치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오래된 무덤과 거기서 나오는 유물들. 누군가의 모습을 잊지않고 계속 확인하기 위해 촬영된 흑백의 사진과 필름들. 과거 아버지와의 추억을 만지기 위해 착용한 목걸이까지. 영화는 그것들을 자꾸 보여준다. 왜 인간들은 과거나 미래 따위의 불확실한 것들에 계속 집착하는 것일까. 암흑의 시대로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기 위해. 불안하고 두렵기만 한 다가올 것들에 대비하기 위해. 그러나 인간은 영원히 살지 못하는 필멸자에 불과하고, 바로 그 때문에 대비하고 또 대비 해봤자 삶의 불확실함 앞에서는 결국 굴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말한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알 수 없으니. 그저 주어진 지금 이 순간의 현재에 집중하고 또 집착할 수 밖에 없다고. 당신의 과거가 어땠고 미래가 어떨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으니 그냥 바로 지금을 붙잡으라고. 그게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누리고 지금 이 순간의 선택에 집중하는 것. 그렇게 영화는 지나간 것들과 다가올 일들 사이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를 관객들에게 잘 설명해준다.
<쿵푸팬더>에서 대사부였던 우그웨이는 이미 우리에게 속삭인 적이 있다. "어제는 역사(히스토리)가 되고, 내일은 아직 알 수 없다(미스테리). 하지만 오늘은 선물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을 선물(프레즌트:현재)이라 부르지" 우그웨이의 말은 정말이지 맞는 말이다. 후회하고, 불안해하기 보다는 그저 주어진 오늘과 지금을 성실히 살아가는 것. <더 디그>의 브라운에게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서는 현재 현장에 있어야 한다고 말해줄 수 있는 아내가 있어 다행이었다.
뱀발 - 근데 그렇다쳐도 중반부부터 캐릭터가 너무 많아진다. 덕분에 좀 난잡해지는 느낌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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