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13 13:44

더 히든, 2020 대여점 (구작)


원제를 해석하면 대략 "진작 떠났어야지" 정도의 남탓이 될 텐데, 어째 국내 공개명은 '숨겨진'이네. 장편 영화 제목으로써는 이거나 그거나 둘 다 매력 없는 것 같긴 하다만. 

영화는 전형적인 귀신들린 집 이야기다. 엄밀히 따지면 '귀신들린 집'이라기 보다는 악마가 에어비앤비로 내놓은 모던한 신축 숙소 이야기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수는 있겠다. 그러니까 영화의 차별점은 이미지다.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보통의 귀신들린 집들은 대개가 오래된 폐가 느낌을 주는 것으로 표현되지 않나. 거미줄이 자욱하고, 오래된 마루바닥은 삐걱 거리며, 해가 중천에 떴을 때도 그 햇살이 잘 들어오지 않는 개떡같은 채광. 이에 비하면 <더 히든>의 그 집은 대궐이다. 대사로 직접 표현되기론 신축 4년 차의 건물이고, 그마저도 모던한 인테리어에 관리도 잘해 그냥 명백한 새 집처럼 보이거든. 잠깐 봤지만 수납 공간도 낭낭히 잘 챙겨넣어준 것 같더라.

이렇게 좋은 집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지은 과거의 죄와 대면한다. 집이라는 공간에 뿐만 아니라 주인공 인물의 내면에도 미스테리를 박아놓은 영화인 것. 결국 주인공이 유죄냐, 무죄냐에 따라 이야기의 결말이 매듭지어 진다. 스스로의 죄 때문에 딸아이가 고통받는 꼴을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지. 그런 고로 주인공의 마지막 선택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호러 영화 특유의 쫀쫀함이 깃들어 있는 영화이기는 하다. 케빈 베이컨의 빡쳐서 지친 연기도 볼만하고. 그러나 그 자체로 너무 두루뭉술한 이야기인 것 역시 사실이다. 애초 악마가 관여된 오컬트 장르에서 개연성과 설득력을 기대하는 내가 잘못일지도 모른다. 오컬트라는 게 근본적으로 인간의 몰이해 또는 오해로부터 비롯되는 장르니까. 그래도 그렇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계속 엮이고 초현실적으로 변모하는 공간을 다룬 영화치고는 그 안에서의 설득력이 너무 부족하다. 좋아, 일기장 다음 페이지에 글 썼던 건 주인공 본인이야. 그럼 그 다음 장에는? 그리고 왜 거기 멀뚱히 서서 과거의 자기 자신과 딸아이에게 겁을 주냐? 알면 구석에 짜져있던가. 

재밌는 것 같다가도 이게 뭔가 싶었던 그런 영화. 근데 존나 웃긴 건, 감독 이름으로 데이비드 코엡이 뜨는 순간 내가 나 자신을 의심했다는 것이다. 마치 이 영화의 주인공 마냥. 데이비드 코엡 내 기억으로는 이 정도로 형편없는 감독 아니거든. 원래 각본도 잘 쓰고, 무엇보다 소소하긴 해도 그의 전작 <프리미엄 러쉬>를 좋아했는데... 아, 이래서 브랜드 이미지가 중요하다는 건가? 애매한 영화로 끝냈는데 감독 이름 보고 애매한 건 나 자신 아니었을까-하며 전전긍긍하고 있는 나를 보니,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받는단 이야기가 떠올라 문득 아득해졌다.

덧글

  • rumic71 2021/02/13 14:59 # 답글

    제목만 보고 1987년작 히든의 리메이크인줄 알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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