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17 10:58

그레이트 월, 2016 대여점 (구작)


엄청난 악평을 받는 영화길래 걱정하면서도 기대?했는데 그냥 머리 비우고 보기엔 나쁘지 않...으면서도 나빴던 영화. 확실히 장예모는 대규모 블록버스터 운용에 잘 안 맞는 감독인 것 같다.

과도한 국수주의적 내용, 그러니까 중국 뽕에 대한 문제. 놀랍게도 이 정도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다. 지금까지 수십년간 미국이 이 세상의 최전선에 서서 봉사하는 국가라는 이미지를 그린 영화들이 좀 많았나. 오해는 마시라, 그래서 중국 뽕 영화도 참을 수 있다- 이런 뜻이 아니라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영화들은 다 자국의 이미지를 대표하게 되지 않나, 어느 정도는. <승리호>에서 한국인들이 지구를 구하는 것과 마찬가지 맥락이라는 것이다. 물론 21세기 들어 자국에 대해서도 비판적 관점을 견지하는 미국의 요즘 영화들이 그래서 더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도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중국 자본이 들어간 영화이고, 장예모의 전작 <영웅>이 그랬던 것처럼 대놓고 공산당 찬양하는 영화까지는 아닌 걸로 보여 그냥 그거대로 됐지 싶다. 그것도 아예 없다고 볼 수는 없고, 판타지적 설정으로 어느 정도 가려놓은 것이긴 하지만 이 정도면 어때. 중국이 외계 괴물들로부터 만리장성을 쌓아 세상을 지켜내고 있고, 시대고증이 안 맞는 여러 무기와 전술 등이 나오긴 하지만 이건 또 애초부터 판타지 영화니까. 그냥 다 그러려니 한다고. 좋다는 게 아니라 그러려니 한다는 게 포인트

그걸 다 이해하고 넘어가도 단점들이 산재해 있다. 일단 초반 편집이 좀 괴이하다는 점. 단역 세 명을 잡아먹고 주인공 손에 의해 끔살 당하는 외계인의 첫 등장 장면. 이게 말이 되나 싶다. 주인공 두 놈이 아주 멀찍이서 있던 것도 아니고, 거의 바로 옆 수준이었는데 괴물이 다른 세 명만 딱 깔끔하게 죽이고 사라진다니. 사실 별 거 아닌 만큼 연출로 다잡을 수 있었던 건데 이상하게 연출도 괴상하고 편집도 괴이하다. 여기에 이어지는 주인공 둘의 만리장성 첫 당도 장면도 충분히 이상하고. 언덕 넘고 말 달리자마자 화살 세례가 쏟아진다. 이거 좀 동선이 이상하지 않아? 아, 이건 진짜 봐야만 아는 건데 글로 설명하려니 잘 안 되네.

각본을 진짜 대충 썼다는 것이 드러나는 게, 서양인 주인공 두 명이 중국인들에 의해 포박된다. 그리고 영창에 넣으려 했는데, 진짜 좁은 영창에 넣어두면 이후 외계인들과의 전투에서 이 두 명이 활약할 수가 없잖아? 활약을 못하면 또 이후 전개가 성립이 안 되는 거고. 고로 각본가 입장에서는 두 주인공이 영창에서 탈출하거나 애초 영창에 들어가지 않는 등의 전개를 만들어내야 했다. 그래서 기껏 만들어낸 변명이... 영창 잠금장치 열쇠를 관리하는 간수가 그 열쇠를 못 찾는다는 거야... 열쇠 꾸러미 들고 풀어보려고 하는데 결국 못 풀어서 상사에게 "못 풀겠습니다요~" 이 지랄 떨고 앉았다. 시팔, 중국 뽕 하려면 제대로 했어야지 이게 너희가 보여주고 싶었던 중화사상이니? 중국인들은 열쇠를 제대로 찾지 못한다? 끈기가 없다? 상관이 시키든 말든 내가 못하면 그만이다? 아니면 그냥 이 모든 부하의 불찰을 이해해주고 너그러이 넘어가주는 상관의 모습에 중국인들의 모습을 투영시키고 싶었던 건가...

어쨌거나 시작되는 전투. 전투의 스펙터클은 걱정했던 것보단 괜찮다. 외계 괴물들의 디자인이 다소 뻔하긴 해도 쏟아지는 물량공세를 보는 맛이 있고, 무엇보다 공성전은 언제나 재밌는 소재 아니던가. 여기에 <영웅>에서 정점을 찍었던 장예모 특유의 빛깔 도는 연출까지. 그래서 그냥 볼만 하기는 했는데... 아니, 내가 제갈량은 아니지만 학 기병대의 전술은 진짜 비효율적인 전술 아님? 병사 한 명 한 명이 아까울 상황에 중공군:?? 정예병사 한 명을 번지점프 줄에 묶어 적들에게 내던져 버린다는 게... 이거 그냥 자살 돌격대잖아? 그냥 활을 쏘거나 투창을 하라고... 왜 애꿎은 병사들로 낚시 플레이 하냐고... 이건 진짜 지금까지 영화와 게임 등에서 내가 봤던 전술들 중 최악의 선택지인 것 같다.

더불어 또 이해 안 가는 거. 대장군이라는 작자가 직접 야밤에 순찰 돌다가 허무하게 골로 간다. ......? 물론 일국의 대통령이 직접 전투기 몰고 출전해 외계인과 싸우는 영화도 있었지만, 여전히 총사령관이라는 작자들이 직접 일선에 나가는 건 이해가 안 된다. 심지어 여긴 전투도 아니고 거의 순찰에 가까웠다고! 시발아, 너 죽으면 또 누가 인수인계 받으라고? 그냥 이렇게 짬 시키고 갈 거야? 60여년을 기다렸다면서 정작 전쟁 시작되고 며칠도 안 되어 광탈. 중세 전투 등에서 군주나 장군이 "나를 따르라" 이 지랄 하지 않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기타 등등. 이상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닌 영화인 건 맞다. 보는내내 지루해서 몸을 꿈틀 거리기도 했고, 주인공들의 멍청한 행위에 혼잣말로 타박을 넣기도. 그런데 정말이지 이상하게도, 영화를 보던 그 두 시간이 나쁘지 만은 않게 느껴지는 경험이었다. 아, 이건 내가 원래 괴작이나 망작 보는 걸 즐겨하는 악취미가 있어서 그런 건가? 이제 면역이 생긴 건가? 아니다. 어쩌면 영화에게 타박하는 경험 그 자체가 재밌었기 때문일런지도 모른다. 좋은 거 아니잖아

뱀발 - 요즘 장르 영화팬들의 수호자인 페드로 파스칼이 나온다. 개봉 당시에 봤으면 몰라 봤겠지? 애초 누군지도 관심 없었겠지. 이쪽 바닥이 이리도 냉정하다. 

덧글

  • SAGA 2021/02/18 00:09 # 답글

    이딴 영화에 출연하느라 맷 데이먼은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출연을 포기했더랬죠...
  • CINEKOON 2021/03/17 13:55 #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엄청 좋은 영화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는 아니라서... <그레이트 월>은 이상하게 거지 같은 재미가 또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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