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용은 존나 뻔한 무협 장르의 정도를 걷는다. 혼란에 빠진 강호, 전설이 붙은 운명의 검, 그를 차지하고 또 보호하기 위해 각자의 절대무공으로 맞붙는 무림 고수들과 그들 각자의 사연. 골백번도 더 본 정도가 아니라 이 정도면 그냥 무협 영화 시나리오 쓰기 제 1장 1절에 알파요, 오메가지. 그러나 이 전형적인 내용에 감독으로 이안이 나선다. 그럼 어쩔 수 없이 달라지는 것이다. 감독의 역량이란 이런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무조건적으로 재밌고 훌륭한 영화란 생각은 안 든다. 우습게도, 난 이 영화 별로 재밌게 보질 못했거든. 그러다보니 전체적으로 훌륭하단 생각도 잘 안 드는 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으로서 이안의 힘만은 제대로 느껴지는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어떤 면에서? 나는 다른 거 다 떠나서, 이안이야말로 탁월한 비주얼리스트라고 보는 편이다. 특히 그가 <와호장룡>에서 빚어낸 이미지들의 향연은 그야말로 모던 클래식이라 생각한다.
<와호장룡>의 액션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진귀한 볼거리인 동시에 마치 시 같은 아름다움이 있다. 기존 할리우드의 숱한 액션 영화들처럼 마냥 과격 하지도, 기존 중국의 정통 무협 영화들처럼 마냥 허무맹랑 하지도 않다. <와호장룡>은 그 중간 어딘가에 절묘하게 놓인 것처럼 느껴진다. 인물들이 경공술로 벽과 지붕, 심지어는 수면 위를 달리며 대결을 펼치는 부분들은 분명 허무맹랑 하게 보이긴 한다. 그러나 기존의 중국 무협 영화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새발의 피지. 그리고 무엇보다, <와호장룡>의 그것들은 일단 우아하다. 달리는 몸짓에서 부터 서로의 합을 주고 받는 몸부림들에도 기품이 베어있다. 그러는 동시에 힘이 있다. 설명하기 어려운데, 힘이 있으면서도 유연하다. 당연히 이안 만의 공은 아닐 것이다. 무술감독으로 참여한 원화평의 덕도 있겠지. 그러나 어찌되었든, <와호장룡>의 액션에는 고요한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단순히 몸짓 발짓만 아름다운 영화는 또 아니다. 대결이 벌어지는 스산하면서도 푸르른 대나무 숲, 안개가 자욱하게 낀 마을의 모습 등 배경 역시 아름답고 또 그 안에서 켜켜이 쌓여가는 인물들의 감정 표현도 매끄럽다. 사실 멜로 드라마적 요소를 짙게 품고 있는 영화치고는 그 표현이 풍부한 편은 아니다. 그러나 이안은 언제나 그래왔지 않은가. 인물들이 말과 대사로 사랑을 읊는 것보다도, 그들의 표정과 주위 배경을 통해 사랑을 전하는 것으로. 그러니까 액션에서 뿐만 아니라 감정적 측면에서도 이안의 장기가 그대로 드러나는 영화인 것.
그럼에도. 이야기의 산만함이 기어코 날 붙잡고 만다. <화양연화>를 봤을 때랑 비슷한 느낌인데, 걸작으로 평가받는 그 영화도 나는 그냥 연출과 이미지로 조지고 부신 영화라 생각 하거든. 내용적 측면은 사실 별 거 없잖나. <와호장룡>이 나한테 딱 그런 느낌이다. 액션도 좋고 배우들 연기도 좋은데, 이야기가 썩 훌륭하게 느껴지지는 않는. 일단 이야기의 대전제가 뻔한 건 그렇다치더라도, 누구 하나 제대로 주인공 자리를 틀어쥐고 있지 못하다는 인상이다. 이무배와 수련은 단 몇 장면만을 통해 멜로 드라마가 표현되는데 일단 그게 너무 적게 느껴지기도 하고, 장쯔이의 용은 길고 긴 플래시백을 통해 전사가 소개 되긴 하지만 그게 또 효과적이었는진 잘 모르겠다. 푸른 여우 역시 느닷없이 나타나 활약하는 느낌이고... 인물들이 엄청 많은 영화는 아닌데, 그 각 인물들마다 또 방점을 엄청 찍고 있는 느낌이라 정확히 누굴 따라가야하는지 갈피를 못 잡겠음.
보는내내 좀 빡치더라. 용은 왜 이렇게 깝쳐대는 거야? 그래서 그 검을 원하는 거야, 뭐야? 푸른 여우가 좋은 거야? 아니면 이무배한테 점점 더 마음이 가는 거야? 향 피운 것의 영향이었다곤 하지만 뜬금없이 이무배를 유혹 아닌 유혹 하지 않나... 강호를 떠돌아다니며 다 패고 다니고, 그 옛날에도 빗 하나 때문에 가마에서 뛰쳐나온다는 게... 세상 모든 어그로를 이 캐릭터에만 박아넣은 느낌. 그냥 얘 죽이면 안 되는 건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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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GA 2021/02/18 00:12 # 답글
CINEKOON 2021/03/17 13: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