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11 15:05

리스타트 극장전 (신작)


죽고 죽고 또 죽어야만 하는 타임루프 액션물. 평소 <사랑의 블랙홀>이나 <엣지 오브 투모로우> 같은 작품들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게 타임루프를 다루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고로 타임루프물이라고 해서 그닥 새롭게 구미 당기진 않는단 소리. 그럼 어느 부분에서 영업 당한 거냐...... 다름 아니라 감독이 조 카나한이었기 때문이다. <나크>, <스모킹 에이스> 같은 작품들을 재밌게 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A-특공대> 그거 내가 진짜 좋아하는 영화거든. 어쨌든 감독이 조 카나한이었기 때문에 봤던 영화란 말씀.

일단 영화의 키치한 감각은 마음에 든다. 포스터부터 뭔가 B급 비디오용 영화 냄새가 풍겼는데, 실제로 그런 영화들을 좋아하는지라 차라리 그쪽으로 컨셉 잡고 더 밀었으면 어땠을까 싶긴 하다. 그럼에도 아직 곳곳에 키치한 설정들이 남아있어 여전히 마음을 끌긴 함. 구구절절 설명따위 다 집어치우고 그냥 밑도 끝도 없이 우당탕탕 소개되는 킬러들. 80년대 액션 영화 속 전형적인 악당 느낌의 킬러도 있고, 오리엔탈리즘이 잔뜩 가미된 중국인 여성 검객도 있다. 하나같이 그 자체로 죄다 B급스러운데, 대사로 자조적인 유머치는 부분도 많아 취향 저격 당함. 그 검 카타나 맞냐고 묻는 상대에게 그건 일본 검이고 이건 중국 검이야-로 응수하는 대사라든지, 직접적으로 활용되는 <인디아나 존스> 드립부터 캡틴 아메리카의 "하루종일도 할 수 있어" 패러디까지 내 마음 깊게 뚫고 들어오는 유머들이 많아 좋았다는 이야기.

그리고 애초 영화가 B급을 지향하고 있다보니 줄거리나 설정들이 좀 덜컹거려도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된다. 예컨대 양자경이 연기한 캐릭터 같은 경우는 진짜 존나 뜬금 없잖아. 다른 영화였으면 이거 개연성 해치는 설정이었지. 근데 이 영화에선 그냥 용납 쌉가능. 혓바닥은 존나 긴데 정작 활약은 별로 없는 멜 깁슨의 캐릭터? 이해 쌉가능. 씨팔, 때로는 장르와 컨셉이 치트키처럼 느껴질 때도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이 타임루프의 이유조차 별로 궁금해지지 않잖나. 따지고보면 지금까지의 타임루프물들이 죄다 그랬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이유가 뭐가 중요해, 마코토가 창공을 가르는 그 이미지가 더 중요하지. <엣지 오브 투모로우>? 외계인 종특 기술이라고? 말도 안 되지만 영화가 존나 재밌잖아. 그리고 <사랑의 블랙홀> 봐라, 그건 애초에 신의 장난질 같은 컨셉인데. 그러니까 <리스타트> 역시 최소한의 설명만 받쳐주면 이 타임루프가 어떤 빌어먹을 원리로 가동되는 건지 내 알 바 아니라고.

문제는 타임루프물에서 꼭 잘 해냈어야만 했던 부분을 실패했다는 데에 있다. 다름아닌 변속. 타임루프물이라는 게, 필연적으로 똑같은 장면이나 상황 등을 반복해서 보여줄 수 밖에 없다보니 그걸 어느 타이밍에 어느 속도로 변속 해낼 것인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리스타트>는 그 점에서 좀 늘어진다. 빨리 빨리 넘어가야 할 것 같은 부분에서는 갑자기 질질 끌고, 오히려 액션과 유머가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은 장면에서는 갑자기 빨리 빨리다. 보다보면 어느 장단에 맞춰야할지 모르겠음. 

여기에 막판 뜬금없는 결말은 그야말로 충공깽. 후속편을 염두에 둔 건지, 아니면 존나 허무주의적 연출로 냅둔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애초 B급 쾌감을 지향했던 영화치고는 갑자기 심오 해져서 되려 관객인 내가 민망. 세상의 멸망이고 나발이고 일단 해결한 다음에 아들이랑 꿀 빠는 주인공 모습으로 마무리 했으면 더 좋았잖아. 

캐스팅은 낭비처럼 느껴질 정도로 꽉 차 있는데, 오히려 그게 또 이쪽 계통의 맛이라 차라리 좋음. 멜 깁슨이랑 나오미 왓츠랑 켄 정이랑 양자경이 맘껏 소모되는데 평소 아껴먹기만 했던 아이스크림을 녹을새라 급하게 다 먹을 수 밖에 없는 느낌이라 좋았다. 뭔 소리야, 이거. 그냥 길티 플레져였단 소리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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