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17 13:44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 1998 대여점 (구작)


전도유망한 네오 나치의 꿈이라도 꾸는 것인지, 모범생 토드 보든은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히틀러와 그 일당들의 이야기에 탐닉한다. 근데 웬걸, 그 오래된 자료에서만 보아왔던 나치 고위 간부의 얼굴이 우리 동네 시내버스에서 발견 됐네? 왕년의 정체는 숨긴채 홀로 조용히 살아가는 할아버지가 알고보니 내가 존경하는 히틀러의 추종자!? 뭔가 이세계물 제목같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토드 앞에 펼쳐지고, 비로소 그는 생각한다. 마침 나치 추종자로서 공부하고 싶던 차였는데, 이 할아버지면 내게 최고의 과외 선생님이 될 수도 있겠는 걸?

개인적으로 말도 안 되는 확률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정체를 숨기고 살던 왕년의 나치가 나치 장학생 눈에 띌 확률이 대체 얼마나 되겠나? 근데 영화라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이를 영화적 허용으로 에둘러 넘어갈 수만 있다면 존나 좋은 설정인 건 또 사실이야. 전직 나치에게 배우는 나치 교육이라니. 풀어갈 여지가 일단 다양한 설정이다. 블랙 코미디를 가장한 둘의 끔찍한 우정으로 풍자해 풀어갈 수도 있고 아니면 본격 우당탕탕 코미디로 가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저그런 호러 스릴러로 풀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의 감독은 브라이언 싱어다. 왕년의 브라이언 싱어. 거기서 이 영화의 지향점이 드러난다. <엑스맨> 시리즈에서 발현 됐던 그의 재능은 이 영화에서도 번쩍번쩍 한다. 물론 순서상으론 이 영화가 더 먼저지만 이른바 정체성을 깨달아가는 이야기. 종국에 토드 보든은 새로운 괴물로서 스승의 뒤를 잇는다. 그러나 난 그게 애초 無에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토드 보든에겐 분명히 나치로서의 기초적 재능이 있었다. 순수하지만 순수하지 않은 호기심과 탐구력이 있었고, 그 주제에 대한 흥미도 존재했다. 스승인 커트 듀센더는 그저 그걸 틔워내기만 한 것일 뿐, 토드의 괴물 같은 면모는 이미 그의 마음 어느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것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최고의 스승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제자가 자신의 뒤를 따를 수 있게끔 만들고, 결국엔 청출어람의 떡잎까지도 피워내게 만들었으니. 그 과목이 나치학개론이었다는 게 문제지. 스승에게 배울대로 배운 토드가 실전예제 삼아 협박하는 대상은 자신의 상담교사. 그 캐스팅이 실제 유대인인 데이비드 슈위머다. 여기에 커트가 죽이는 건 결국 또 동성애자고. 나치 입장에서 보면 토드 보든은 존나 교육 잘 된 케이스라니까.

브라이언 싱어의 초기 연출력이 빛을 발하는 영화다. 이후 <엑스맨> 초기 시리즈까지 유지되는 특유의 건조하면서도 클래식한 톤 앤 매너가 그렇고, 인물들의 집착하는 순간을 잡아내다 못해 부채질해 강조하는 연출이 유려하다. 무엇보다 학교 샤워실에서 유대인 수용소의 샤워실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장면 편집이 좋고. 아, 화면의 투명도를 조절해 디졸브 시키는 연출을 많이 하기도 했는데, 사제지간인 토드와 커트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썩 알맞은 연출일 것이다. 점차 스승에게 물들어가는 제자의 이야기를 하는 영화인 거니까.

이안 맥켈런은 이 때부터도 할아버지였다. 근데 연기가 정말로 파워풀. 역시 롱런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주인공 토드 보든을 연기한 브래드 렌프로. 아역 임에도 불구하고 이안 멕켈런에게 꿇리지 않는 연기를 보여준다. 확실히 두 배우의 연기 합을 보는 맛이 있고, 그걸 또 브라이언 싱어가 잘 서포트 해준 영화. 아니, 싱어 양반. 이렇게 영화 잘 찍으면서 대체 왜 그딴 짓거리들 해가지고 퇴출된 거야... 아이구, 이 어리석은 양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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