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기 전에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난 또 <사무라이의 시대>라길래 사무라이들이 종횡무진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그들의 문화와 생활 양식 등을 심도 깊게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로 생각하고 있었거든. 그러나 그런 건 대부분 다 스킵하고 그냥 전국시대의 역사적 흐름만을 큰 관점 내에서 다루는 다큐멘터리에 더 가깝더라고.
물론 사무라이들이 종횡무진하던 그 시기라는 게 전국시대였다는 것은 안다. 다만 내가 생각했던 포커스는 그 당시 개별 사무라이들의 모습에 좀 더 집중하는 것이었지, 지금처럼 그저 일반적인 역사물로써의 관점을 바랐던 것은 아니라서 약간 김이 샌 것도 있었다.
결국엔 세 명의 핵심 사무라이들로 서술이 전개된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도쿠가와 이데야스. 일본의 전국시대라는 게 애초부터 구전 아닌 구전으로 전해진 에피소드들이 더 많아서 대략의 개요만 알지 그 디테일에 대해서는 지식이 전무 했었다. 다행히 그래서 더 흥미롭게 본 구석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이 서술자로 나오는 사학자들이 대체 얼마 만큼이나 전문적인지를 또 몰라 이상하게 믿음이 안 가는 다큐멘터리이기도 했음. 근데 다큐멘터리가 신뢰를 얻지 못했다면 그걸로 끝인 거 아니냐고.
고증의 문제가 있다. 일단 내가 그 당시 사무라이들의 의복이나 무기, 전기 등에 대해 잘 모르니 그것까지 지적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작품 내에서 묘사하는 조선과 조선인들의 의복 관련해서는 비 전문가인 내가 봐도 딱 견적 나오더라. 당시 조선 사람들의 의복은 거의 기모노에 가까우며, 심지어 조선의 왕궁은 무슨 서프라이즈 세트 보다도 더 허접했다. 그 규모야 한정된 제작비 내에서 구현하는 게 어려웠다 치더라도, 최소한의 양식 고증은 지켰어야지. 제아무리 일본 전국시대 중심의 다큐멘터리였다 할지라도 어쨌거나 임진왜란까지 다룰 것이었다면 그 정도는 신경 썼어야지. 조선의 고증도 이러한데 하물며 일본 양식에 대한 고증은 어땠겠는가. 그 자체로 별로 신빙성이 안 생기는 다큐멘터리가 된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게임 끝.
사학자들의 인터뷰와 병행해 당시 전투를 재현한 영상들이 교차편집되는 구성인데, 아무래도 서양권에서 만든 다큐라 일본어 대사가 별로 없다. 있어도 길지 않다. 그러다 보니 여기서도 신뢰도 하락. 정작 재연 배우들은 당연하게도 일본인 배우인지라, 영어권 시청자 대상으로 영어 대사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거. 결국엔 연기 자체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진다. 일본인 배우들 데려다가 일본어 많이 못 쓰게하니 결국 할 수 있는게 감탄사나 극단적인 감정 연기 정도 뿐. 오다 노부나가는 나와서 빡치거나 웃거나 둘 중 하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알듯 모를듯한 표정 짓는 거 그게 다다.
그렇다고 전투 묘사가 재밌는 것도 아님. 차라리 이거라도 돈 들여서 제대로 했다면 보는 맛이라도 있었을런지. 객관성과 신뢰도 이미 잃은 마당에 다큐로써 할 수 있는 게 뭐가 더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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