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29 14:07

고령화 가족, 2013 대여점 (구작)


감독이랍시고 찍은 영화는 망했고, 하나 뿐이던 아내는 바람나 내가 이혼 서류에 도장 찍기 만을 강요한다. 에라이, 망한 인생. 이럴 거면 그냥 콱 죽자- 결심하던 찰나, 너가 좋아하는 닭죽 끓여놨으니 집에 와서 먹고 가라는 엄마의 전화. 아, 죽을 때 죽더라도 엄마가 한 집밥은 못 참지. 그렇게 다 큰 둘째 아들은 집으로 조용히 기어들어온다. 근데 웬걸, 나보다 더 총체적 난국이었던 첫째 형은 이미 엄마랑 같이 살고 있었고, 여기에 두번째 결혼마저 파토낸 막내 여동생 역시 갈데가 없어 자기 딸 데리고 이리로 들어오겠다네? 이렇게 되면 엄마는 무슨 죄야.

소위 '막장'의 에센스를 첨가한 가족 드라마로써 분명 재밌을 수 있는 지점들이 있었다. 일단 제목답게 이미 다 커버린 성인 자녀 셋이 엄마 집으로 다시 기어들어왔다는 컨셉. 삼남매의 캐릭터가 워낙 제각각 개성있고, 여기에 윤여정의 엄마와 진지희의 조카 또한 그 성격이 확 잡혀있으니 이건 이대로만 굴려도 성공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좁아터진 집구석 안에서 이 다섯명이 서로에게 좆같이 구는 것만 보여주었어도 관객으로서 충분히 즐겼을 거란 이야기.

그러나 영화는 갑자기 바깥으로 겉돈다. 기껏 재밌을 구석을 다 만들어놓고도 정작 그걸 써먹기는 커녕 이상한 삼천포로 빠진다. 물론 이런 종류의 한국 가족 영화답게, 후반부에는 감동 코드가 산재해있다. 그렇지만 신파급은 아니다. 억지로 관객들 울리려고 화면 안의 지들 먼저 울고 자빠지는 그런 불상사는 적어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럼 뭐가 불만인 거냐고? 영화가 갑자기 장르화가 돼. 그저 콩가루 집안 이야기인 줄 알았던 영화가 소화불량까지 걸려가며 억지 억지로 느와르를 한다고. 첫째인 윤제문의 오한모가 전직 범죄자였다는 사실에는 불만이 없다. 대신 그 설정은 그저 캐릭터를 수식해주기 위한 설정으로만 남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영화는 그걸 기어코 본격적으로 써먹고야 만다. 뜬금없이 파칭코와 범죄조직의 이야기가 끼어들어오고, 이걸로 또 그 감동 눈물 코드를 뽑아낸다. 사실 그 장면에서의 박해일 연기가 좋았기에 망정이지, 객관적으로만 놓고 따지면 진짜 어이없는 꺾기라고 할 수 밖에.

안 하는 게 더 나았을 느와르 풍의 이야기를 애써 끌어다 쓰느라, 기껏 매력적으로 설정해놨던 캐릭터들은 그 설자리를 잃게 된다. 공효진의 셋째 오미연은 클라이막스에서 그대로 증발해버리고, 그녀의 딸이 겪는 가출 시퀀스는 말그대로 어설픔. 첫째와 둘째 아들 위주로 스토리 굴리지 말고 그냥 이 다섯명을 똘똘 뭉쳐버린 다음에 다 함께 굴려버렸으면 더 재밌지 않았을까.

같이 한 지붕 아래 사는 것, 그리고 함께 둘러앉아 밥을 먹는 것. 그게 식구이고 곧 가족이라는 이 영화의 정의는 썩 마음에 든다. 알고보니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는 설정 역시 재미있고. 그치만 왠지 모르게 그 과정이 뭔가 거칠거칠하다. 조개구이 집에서 벌어지는 한 판 싸움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그것이었다. 병신이지만 우리 병신이다!-의 요상한 가족주의적 정신을 좀 더 스무스하게 가져갔으면 어땠을까 싶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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