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29 15:22

고질라 vs 콩 극장전 (신작)


괴상하다면 괴상하게도, 나는 2014년작 <고질라>와 그 속편인 <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를 모두 재밌게 보았다. <콩 - 스컬 아일랜드>는 좀 묘하게 본 입장이고. 하여튼 나는 리부트 된 기존 <고질라> 시리즈를 썩 좋게만 봤었는데, 나 빼고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은 그 두 영화 별로 안 좋아하더라고. 특히 <킹 오브 몬스터>. 그러던 와중에 개봉된 <고질라 vs 콩> 세계관 최강자들의 빅 매치. 아니, 리매치. 이 영화는 또 관객들 평이 좋더라 이 말이야. 그래서 기대하고 봤는데...... 아니, 진짜 내가 특이한 건가 보다. 나는 이 영화 시리즈 중에서 가장 최악이던데.


스포일러 브레스!


내가 기존 <고질라> 시리즈를 좋아했던 것은 특유의 그 육중함 때문이었다. 이전에도 몇 번 밝힌 적이 있었지만, 기존 시리즈는 거대 괴수의 양감과 그 압도적인 풍채에서 나오는 아우라를 제대로 그릴 줄 알았다. 괴수들의 움직임은 느림과 동시에 태산처럼 무거웠고, 또 그들을 담는 앵글들은 대부분이 다 앙각이었다. 여기에 한없이 작은 인간들의 시점에서 올려다보는 쇼트들이 추가되어 그 거대 괴수들의 굉장한 크기가 더 체감될 수 있었지. 바로 여기에서, <고질라 vs 콩>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이 영화에서의 고질라와 콩은 둘 다 너무 날래다. 거대 괴수와 거대 괴수가 맞붙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성룡이랑 이연걸이 맞다이 까는 느낌에 더 가깝다고 해야하나. 물론 거대 괴수 장르의 역사에서 따져봤을 땐, 이제 한 번쯤 이런 묘사를 하는 영화가 나와줘도 괜찮은 타이밍이긴 하다. 그래서 일반 관객들이 느끼는 신선함과 액션에 대한 만족감 역시 이해한다. 허나 기존 시리즈의 묵직한 육박감을 기대했던 나에겐 영화가 너무 경거망동하는 인상이었다. 

여기에 두 괴수의 얼굴을 화면에 가득 남는 클로즈업 쇼트와 내려다보는 부감 앵글이 많이 활용된 것도 그들의 양감을 강조하지 못하는 요인. 심지어 인간 캐릭터들이 그렇게나 많이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괴수와 인간 사이의 사이즈 크기를 체감케하는 장면들이 적은 것도 아쉽다. 막말로 홍콩에서 벌어지는 2차전은 높은 빌딩들이라도 있으니 그 크기 체감이 어느 정도 되는 모양새인데, 바다 한 가운데에서 맞붙은 1차전은 그마저도 없는 망망대해라 좀 난감 하더라. 그나마 항공모함 위에서 서로 죽탱이 날리던 장면은 낫지만 둘이 잠수해 엉겨붙는 장면은 그냥 일반 사이즈의 고릴라와 도마뱀이 싸우는 것만 같이 느껴져서... 타이탄 월드로 건너간 콩이 신전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 역시 그러하다. 콩의 크기가 어마무시한 만큼 그 신전의 규모도 장난 아닐 거 아냐. 근데 지금은 그냥 일반 사이즈의 고릴라가 동물원 우리 실내로 들어서는 느낌이라 아우라가 팍 죽음.

개연성과 당위성의 문제가 있다. 물론 이런 종류의 거대 괴수 영화에서 현실성을 따진다는 거, 별로 의미 없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까본다. 일단 이 세계관의 과학적 비약이 너무 심한 것 같다. 거대 괴수 콩을 가둘 수 있는 인공우리? 두 거대 괴수를 태울 수 있는 항공 모함? 반중력 장치로 운영되는 최신 비행선? 물론 이것들 다 SF 영화에서 충분히 써먹을 수 있는 것들이지. 근데 기존 시리즈의 세계관에는 이런 거 다 없었잖아? <고질라>, <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 <콩 - 스컬 아일랜드> 셋 다 이런 과학력 없었다고. 그러다가 갑자기 여기서 툭 튀어나옴. 시리즈의 팬으로서 이건 좀 당황스럽더이다.

여기에 원격 충전되는 고효율 에너지의 묘사도 실소를 자아낸다. 원격으로 데이터를 옮긴 거라면 가능하지. 그러나 이건 에너지잖아. 고효율 에너지가 필요해서 타이탄 월드로 조사관들 보낸 건데, 거기서 발견하자마자 원격으로 그 에너지를 홍콩으로 전송한다고...? 이거 그럼 우리 집에 놔두고 온 보조 배터리로 내가 지금 밖에서 들고 있는 스마트폰을 충전할 수 있다는 거잖아? ...... 이게 가능함? 제아무리 SF 속성을 띈 영화라 해도 그렇지, 최소한의 현실성은 담보해주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 그래도 과학력에 대한 불만 싹 다 빼자. 그럼에도 여전히 불만들은 남는다. 타이탄 월드엔 타이탄들만 사는 거 아냐? 그럼 그 콩 일족의 신전은 누가 만든 거야? 그 규모로 보았을 때 하찮은 인간들이 만든 것은 아닐 테고... 그렇다고 콩의 종족들이 그런 건축물을 만들 만큼 지능이 뛰어난 것 같지도 않던데... 그리고 에이펙스는 타이탄 월드로 가는 안내자가 필요해서 콩을 스카웃한 거 아님? 철새들이 계절에 맞춰 고향 땅을 찾아 가듯이, 콩도 자연스럽게 타이탄 월드로 가는 길을 우리에게 안내할 거라며? 근데 막상 콩 데리고 남극 가보면 이미 타이탄 월드의 입구엔 진한 인간들의 향기가. ...... 이미 가는 길 다 알고 있었네... 그럼 콩이 왜 필요해...? <퍼시픽 림>처럼 타이탄들의 DNA 코드로만 입장할 수 있는 문도 아닌 거잖아...? 이미 그 반중력 비행선 히브도 갖고 있는데 대체 콩은 왜 데려간 거냐고... 

콩을 데려간 것도 사실 존나 웃기게 묘사된다. 콩은 모나크의 관리를 받고 있었다. 모나크는 어쨌든 국가에 의해 운영되는 기관이고. 근데 그걸 웬 공신력 없는 사이비 과학자의 말 재간 하나에 옮긴다? 모나크엔 관료주의가 없나보다. 콩 담당 과학자가 "옮기자"라고 하면 알 게 뭐야, 그냥 하는 거임. 상관의 허락이나 그 과정 따위 싹 다 프리패스. 물론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그런 거 다 묘사할 필요는 또 없지... 그냥 최소한의 시늉 만이라도 해줬으면 어느정도는 납득하고 넘어갔을 거란 이야기지...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임무에 굳이 자신의 친딸을 파견한 에이펙스의 두목도 웃기고, 전작 세리자와 박사의 아들이라는 상징적인 타이틀로 나와놓곤 정작 별로 활약도 못한채 눈만 뒤집어 깐 오구리 슌의 캐릭터 역시 안습. 하지만 가장 최악은 밀리 바비 브라운의 메디슨 러셀 파티였다. 기껏해야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정도일 텐데, 애 둘이 표백제와 차이나타운이라는 힌트 두 개만으로 은둔해있는 한 성인 남자를 찾아낸다? 그것도 말이 안 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약과였다... 아무런 보안 인가도, 특급 능력도 없는 세 명이 그 초특급 기밀 시설에 별 제지도 없이 다 들어갈 수 있다고? 그렇게? Just like that? 게다가 메카 고질라 끄는 법은 컴퓨터에 술 붓는 거야.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이러면 안 됐잖아... 영화의 최종 보스를 이런 식으로 취급하면 어떻게 해...

그래, 메카 고질라가 나온다. 등장 자체는 어느 정도 예견했던 것이고 또 반갑기도 하지만, 디자인은 마음에 안 듦. 차라리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나왔던 디자인이 더 나아보인다. 근데 이거야 개인 취향인 거고. 디자인 빼고 보면 그 화력과 완력은 최강. 매우 만족스러움. 그러나 또 그 최후는... 기도라 연결해놓고 잠식 당한 거 제대로 보여주지도 않을 뿐더러, 이제 막 새 몸의 통제권을 얻은 기도라가 그 많은 미사일과 무기들 어떻게 그리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건지도 의문. 이 영화는 뭐 이렇게 그냥 던지는 게 많냐... 관객들이 알아서 납득하고 추리 하라고 무리수 던지는 게 진짜 한 두개가 아님.

워낙 기대작이었다보니 횡설수설 주절주절 쓴 느낌인데, 하여튼 여러 이유로 내게는 영 불만족스러운 영화가 되었다. 그러나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 좋아들 하는 것 같으니, 밖에서는 그냥 닥치고 있어야지... 내 블로그에서나 이렇게 까야겠다.


뱀발 - 고질라의 팬으로서 내심 고질라가 이기길 바랐는데 실제로 그렇게 된 것 같아 그 부분은 만족. 아무래도 고질라보다는 콩의 서사에 좀 더 집중되어 있는 경향이 있는데, 이건 어쩔 수 없었다고 본다. 애초 고질라는 파괴신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고, 킹콩은 멜로 드라마의 화신이잖나. 드라마 넣기엔 표정 있는 영장류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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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도에서 만들어진 시리즈는 말할 것도 없고, 이제 미 대륙에서 만든 '고질라' 관련 컨텐츠만 해도 벌써 수십 편이다. 그중에는 몬스터버스의 작품들도 있었고, 물론 그전에 존재했던 롤랜드 에머리히의 괴이한 리메이크판도 있었지. 그리고 또 그 롤랜드 에머리히의 비전을 그대로 이어받았던 애니메이션 시리즈도 있었고.. ... more

덧글

  • rumic71 2021/03/29 15:27 # 답글

    * 킹콩도 고질라도 출발점은 '자연 속의 신'이었는데...
    * 원조 고질라 시리즈도 날이 갈수록 살 빠지고 날렵해졌으니 예측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옛날부터 불만스러웠죠.
  • CINEKOON 2021/04/02 12:40 #

    그런데 킹콩은 좀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분명 자연 속의 신인 것은 맞는데, 33년작 오리지널 영화든 피터 잭슨의 2005년작 리메이크든 간에 그 자연 속의 신을 굳이 인간 세계로 끌고 들어와 죽여버린다는 점 때문에...

    고질라 디자인은 적당히 다부진 게 2014년의 모습이 제일 멋진 것 같고, 메카 고질라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의 모습이 가장 좋았던 것 같네요. 본가 시리즈도 아닌데 어째 최고작은...
  • glasmoon 2021/03/29 19:57 # 답글

    말많은 킹오몬이지만 액션은 이보다 나았다는데 동의합니다.
    콩의 싸움 스타일이 다르다보니 바뀔거라 예상은 했지만 시리즈의 장점을 홀라당 버릴 줄이야~
    그 외의 자잘한(?) 문제들은 생각한다는것 자체가 스스로 바보만드는 꼴이니 깊게 파지 않으시는게;;
  • CINEKOON 2021/04/02 12:40 #

    하긴, 생각해보면 <콩 - 스컬 아일랜드>에서 콩의 액션들은 다 날랬었죠.
  • 포스21 2021/03/30 08:08 # 답글

    확실히 거대한 덩치에서 오는 무게감... 같은게 부족하기는 하더군요
  • CINEKOON 2021/04/02 12:40 #

    이것은 흡사 <퍼시픽 림>과 <퍼시픽 림 - 업라이징>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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