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년 남성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이른바 '누구도 몰랐던 그의 왕년에' 장르. 그게 소녀를 구하기 위해서든, 아니면 키우던 강아지의 복수를 위해서든 간에 이제 이런 종류의 영화도 앉아번호로 연병장 두 바퀴다. <레옹>으로 시작해 <테이큰>, <아저씨>, <드라이브>, <지옥에서 온 전언>, <더 포리너>, <시큐리티>, <이퀄라이저>, <성난 황소>, <존 윅> 등등. 별 볼 일 없는 것처럼 보여서 온갖 악한들에게 개나 소나 취급 받으며 무시 당하던 중년의 아저씨가, 알고보니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거대 뒷세계의 네임드였다는 설정. <노바디>는 그걸 아주 똑같이 리바이벌 한다. 그럼에도 <노바디>가 매력있는 이유는 뭘까? 그건 무엇보다 캐스팅 덕분이었다고 본다.
대체로 이런 이야기들의 주요 골자는, '평범한 아저씨가 그동안 눌러두었던 자신의 능력과 힘을 어쩔 수 없이 꺼내든다' 정도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무시받던 일반인이 각성해 다 때려눕히며 관객들에게 전달해주는 대리만족의 쾌감. 근데 <존 윅> 등등 대부분의 영화들은 그 주요 골자 중 '-그동안 눌러두었던 자신의 능력과 힘을 어쩔 수 없이 꺼내든다' 아래에만 밑줄을 긋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노바디>가 주목한 것은 그 앞부분이다. '평범한 아저씨가-', 바로 이 부분. 생각해보자. 그동안의 이 '왕년에' 장르 영화 속 주인공들 중 정말 진심으로 평범해보이는 사람은 몇 없었다. 그들은 대개 키아누 리브스의 얼굴을 했거나 채드윅 보우즈만의 얼굴로 특유의 정의감과 스타성을 마구 표출해냈다. 원빈은 말할 것도 없지. 그래도 <레옹>의 장 르노나 <테이큰>의 리암 니슨 정도면 어느정도 평범한 아저씨 얼굴 아니냐고? 천만에. 그 둘은 잘생겼던데다 그걸 떠나서도 위압적일 만큼 큰 키가 있었다. <더 포리너>의 성룡? 아, 그 정도의 캐릭터라면 나름 평범남이라고 할 만하네. 게다가 런던의 중국 이민자라니, 어쩌면 사회적 약자로서 보이기도 하잖아? 그거야말로 천만에 만만에다. <더 포리너>의 주인공은 '중국 이민자'로서의 아이덴티티 보다, 성룡이라는 '액션 스타'로서의 아이덴티티가 훨씬 더 컸거든. 세상에 대체 누가 성룡을 무시하고 또 건드릴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건 <이퀄라이저>의 덴젤 워싱턴도 마찬가지일 거고.
바로 그 점에서, <노바디>의 주인공이 밥 오덴커크라는 사실은 정말 큰 장점이 된다. 여러 드라마들을 통해 한국 관객들에게도 어느 정도 이미 눈도장을 찍은 배우긴 하지만, 그럼에도 키아누 리브스나 성룡에 비하면 아직은 초면에 가까운 것처럼 느껴지는 배우잖나. 게다가 원빈처럼 잘 생긴 것도 아니고미안합니다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어요, 리암 니슨처럼 키가 큰 것도 아니지. 밥 오덴커크는 그야말로 '평범한 아저씨'에 진정으로 가까운 배우인 것이다. 키아누 리브스 얼굴을 한 평범한 아저씨가 빡 돌아서 다 쓸어 버리고 다닌다는 것과, 밥 오덴커크의 얼굴을 한 '진짜' 평범한 아저씨가 성질 뻗쳐서 다 부수고 다닌다는 것은 정말이지 천지차이인 거라고.
주연배우의 얼굴, 딱 그거 하나 때문에 영화가 더욱 더 신선해지고 활력을 얻는다. 게다가 현실성도 붙지. 또 여기에 어느정도 온전해보이는 가족이 존재한다는 설정 역시 빛을 발하고. 따지고보니 이 쪽 장르 이야기 속 주인공들 중 이토록 온전한 가족을 누리고 살았던 인물들이 거의 전무 했던 것 같은데? 레옹은 혼자 살았고, 브라이언 밀스와 차태식, 콴 모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었잖아. 키아누 리브스도 그건 마찬가지고. 모두가 그 상실감과 복수심을 동력으로 삼아 움직이던 인물들이었지. 허나 <노바디>의 허치에게는 여러 감정들이 덧대어져있다. 그건 기본적으로 가족이 위협당한 가장의 책임감이기도 하지만, 사회와 늙어버린 자신에 대한 분노, 자신의 왕년을 되찾은 것만 같은 만족감과 활력과 쾌감 등도 포함이다. 그러니까, 단순했던 첫인상보다는 좀 더 디테일한 변화를 추구 했던 작품이라고 할 수 밖에.
본격적인 액션까지 끓어오르는 데에 예열 시간이 좀 걸리긴 하고, 또 <존 윅> 같은 동종업계 최강의 영화와 비교해 그 액션의 물리적 양이 많지도 않긴 하지만 그럼에도 질적으로는 만족이다. 현실성있는 평범남의 얼굴을 했으니, 존 윅 보다야 허치가 훨씬 더 많이 맞기도 한다. 진짜 존 윅이었으면 별로 안 맞았겠지. 그냥 깔끔하게 다 끔살시켰을 텐데, 우리의 허치 멘셀은 기본적으로 평범한 아저씨 컨셉이라 훨씬 더 많이 맞는다. 덕분에 그 육박감의 밀당이 좋다. 후반부는 <스카이폴>이 그랬던 것처럼 사실상 <나홀로 집에> 컨셉의 트랩 액션 위주로 돌아가는데 그것도 나름 만족스럽고.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많이 죽어나가고, 또 주인공이나 영화가 그에 대해 별다른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쿨한 태도만을 보여서 거기에 혐오감이 들 수는 있지만 어차피 이런 장르의 영화들이 다 바로 그런 배덕감을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닌가-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나 역시도 쿨하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라 상관없고.
다만 메인 악당 캐릭터가 다소 허술하게 조형된 점, 신나기는 하지만 배경음악으로 너무 많은 노래들이 쓰인 점 등은 아쉽다. 그리고 좋은 소리를 많이 하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막 열광할 정도로 잘 만든 영화는 또 아님. 그냥 딱 기대치 만큼을 제대로 해준 액션 영화 정도로 생각하면 편하다. 그나저나 <아저씨>의 초기 기획이 그랬다던데, 원빈 같은 젊고 잘생긴 배우가 아니라 최민식 느낌의 평범한 중년 아저씨로 원래는 생각했었다고. 어쩌면 <노바디>가 <아저씨>의 그런 초기 기획의 매력을 정말 잘 보여준 것 같다.
뱀발 - 우리들의 영원한 브라운 박사, 크리스토퍼 로이드가 주인공 허치의 아버지로 나온다. 그런데 캐스팅이 캐스팅이다보니 역시 비범한 모습들을 보여줌. 근데 생각해보니 이 아저씨는 <빽 투 더 퓨쳐> 때도 이미 할아버지 느낌이었는데 아직까지도 할아버지 역할로 활동 하시네. 이 정도면 거의 할리우드의 김수미 선생님.
뱀발2 - 감독이 <하드코어 헨리> 만든 사람이었네. 역시, 1인칭 시점 영화는 그냥 만들기 어려운 거지.
덧글
로그온티어 2021/07/30 04:55 # 삭제 답글
CINEKOON 2021/08/09 1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