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9 11:20

노바디 극장전 (신작)


중년 남성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이른바 '누구도 몰랐던 그의 왕년에' 장르. 그게 소녀를 구하기 위해서든, 아니면 키우던 강아지의 복수를 위해서든 간에 이제 이런 종류의 영화도 앉아번호로 연병장 두 바퀴다. <레옹>으로 시작해 <테이큰>, <아저씨>, <드라이브>, <지옥에서 온 전언>, <더 포리너>, <시큐리티>, <이퀄라이저>, <성난 황소>, <존 윅> 등등. 별 볼 일 없는 것처럼 보여서 온갖 악한들에게 개나 소나 취급 받으며 무시 당하던 중년의 아저씨가, 알고보니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거대 뒷세계의 네임드였다는 설정. <노바디>는 그걸 아주 똑같이 리바이벌 한다. 그럼에도 <노바디>가 매력있는 이유는 뭘까? 그건 무엇보다 캐스팅 덕분이었다고 본다.

대체로 이런 이야기들의 주요 골자는, '평범한 아저씨가 그동안 눌러두었던 자신의 능력과 힘을 어쩔 수 없이 꺼내든다' 정도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무시받던 일반인이 각성해 다 때려눕히며 관객들에게 전달해주는 대리만족의 쾌감. 근데 <존 윅> 등등 대부분의 영화들은 그 주요 골자 중 '-그동안 눌러두었던 자신의 능력과 힘을 어쩔 수 없이 꺼내든다' 아래에만 밑줄을 긋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노바디>가 주목한 것은 그 앞부분이다. '평범한 아저씨가-', 바로 이 부분. 생각해보자. 그동안의 이 '왕년에' 장르 영화 속 주인공들 중 정말 진심으로 평범해보이는 사람은 몇 없었다. 그들은 대개 키아누 리브스의 얼굴을 했거나 채드윅 보우즈만의 얼굴로 특유의 정의감과 스타성을 마구 표출해냈다. 원빈은 말할 것도 없지. 그래도 <레옹>의 장 르노나 <테이큰>의 리암 니슨 정도면 어느정도 평범한 아저씨 얼굴 아니냐고? 천만에. 그 둘은 잘생겼던데다 그걸 떠나서도 위압적일 만큼 큰 키가 있었다. <더 포리너>의 성룡? 아, 그 정도의 캐릭터라면 나름 평범남이라고 할 만하네. 게다가 런던의 중국 이민자라니, 어쩌면 사회적 약자로서 보이기도 하잖아? 그거야말로 천만에 만만에다. <더 포리너>의 주인공은 '중국 이민자'로서의 아이덴티티 보다, 성룡이라는 '액션 스타'로서의 아이덴티티가 훨씬 더 컸거든. 세상에 대체 누가 성룡을 무시하고 또 건드릴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건 <이퀄라이저>의 덴젤 워싱턴도 마찬가지일 거고.

바로 그 점에서, <노바디>의 주인공이 밥 오덴커크라는 사실은 정말 큰 장점이 된다. 여러 드라마들을 통해 한국 관객들에게도 어느 정도 이미 눈도장을 찍은 배우긴 하지만, 그럼에도 키아누 리브스나 성룡에 비하면 아직은 초면에 가까운 것처럼 느껴지는 배우잖나. 게다가 원빈처럼 잘 생긴 것도 아니고미안합니다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어요, 리암 니슨처럼 키가 큰 것도 아니지. 밥 오덴커크는 그야말로 '평범한 아저씨'에 진정으로 가까운 배우인 것이다. 키아누 리브스 얼굴을 한 평범한 아저씨가 빡 돌아서 다 쓸어 버리고 다닌다는 것과, 밥 오덴커크의 얼굴을 한 '진짜' 평범한 아저씨가 성질 뻗쳐서 다 부수고 다닌다는 것은 정말이지 천지차이인 거라고.

주연배우의 얼굴, 딱 그거 하나 때문에 영화가 더욱 더 신선해지고 활력을 얻는다. 게다가 현실성도 붙지. 또 여기에 어느정도 온전해보이는 가족이 존재한다는 설정 역시 빛을 발하고. 따지고보니 이 쪽 장르 이야기 속 주인공들 중 이토록 온전한 가족을 누리고 살았던 인물들이 거의 전무 했던 것 같은데? 레옹은 혼자 살았고, 브라이언 밀스와 차태식, 콴 모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었잖아. 키아누 리브스도 그건 마찬가지고. 모두가 그 상실감과 복수심을 동력으로 삼아 움직이던 인물들이었지. 허나 <노바디>의 허치에게는 여러 감정들이 덧대어져있다. 그건 기본적으로 가족이 위협당한 가장의 책임감이기도 하지만, 사회와 늙어버린 자신에 대한 분노, 자신의 왕년을 되찾은 것만 같은 만족감과 활력과 쾌감 등도 포함이다. 그러니까, 단순했던 첫인상보다는 좀 더 디테일한 변화를 추구 했던 작품이라고 할 수 밖에.

본격적인 액션까지 끓어오르는 데에 예열 시간이 좀 걸리긴 하고, 또 <존 윅> 같은 동종업계 최강의 영화와 비교해 그 액션의 물리적 양이 많지도 않긴 하지만 그럼에도 질적으로는 만족이다. 현실성있는 평범남의 얼굴을 했으니, 존 윅 보다야 허치가 훨씬 더 많이 맞기도 한다. 진짜 존 윅이었으면 별로 안 맞았겠지. 그냥 깔끔하게 다 끔살시켰을 텐데, 우리의 허치 멘셀은 기본적으로 평범한 아저씨 컨셉이라 훨씬 더 많이 맞는다. 덕분에 그 육박감의 밀당이 좋다. 후반부는 <스카이폴>이 그랬던 것처럼 사실상 <나홀로 집에> 컨셉의 트랩 액션 위주로 돌아가는데 그것도 나름 만족스럽고.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많이 죽어나가고, 또 주인공이나 영화가 그에 대해 별다른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쿨한 태도만을 보여서 거기에 혐오감이 들 수는 있지만 어차피 이런 장르의 영화들이 다 바로 그런 배덕감을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닌가-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나 역시도 쿨하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라 상관없고.

다만 메인 악당 캐릭터가 다소 허술하게 조형된 점, 신나기는 하지만 배경음악으로 너무 많은 노래들이 쓰인 점 등은 아쉽다. 그리고 좋은 소리를 많이 하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막 열광할 정도로 잘 만든 영화는 또 아님. 그냥 딱 기대치 만큼을 제대로 해준 액션 영화 정도로 생각하면 편하다. 그나저나 <아저씨>의 초기 기획이 그랬다던데, 원빈 같은 젊고 잘생긴 배우가 아니라 최민식 느낌의 평범한 중년 아저씨로 원래는 생각했었다고. 어쩌면 <노바디>가 <아저씨>의 그런 초기 기획의 매력을 정말 잘 보여준 것 같다. 

뱀발 - 우리들의 영원한 브라운 박사, 크리스토퍼 로이드가 주인공 허치의 아버지로 나온다. 그런데 캐스팅이 캐스팅이다보니 역시 비범한 모습들을 보여줌. 근데 생각해보니 이 아저씨는 <빽 투 더 퓨쳐> 때도 이미 할아버지 느낌이었는데 아직까지도 할아버지 역할로 활동 하시네. 이 정도면 거의 할리우드의 김수미 선생님.

뱀발2 - 감독이 <하드코어 헨리> 만든 사람이었네. 역시, 1인칭 시점 영화는 그냥 만들기 어려운 거지.

덧글

  • 로그온티어 2021/07/30 04:55 # 삭제 답글

    [아저씨]가 아저씨를 이름만 썼다면 [노바디]는 어떤 아저씨들의 세계를 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상사와 회사와 삶에 치여 기죽은 아저씨가 되었지만 성공하고 맘껏 떵떵거리고 다시금 프로테스테론을 열렬히 표출하는 삶을 살고픈 로망과 "지금은 배나왔지만 나도 한때는 존나 셌다!" 라는 외침을 받아주는 영화인 것이죠.
  • CINEKOON 2021/08/09 13:21 #

    바로 그 때문에 캐스팅이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밥 오덴커크 배우답게 잘 생긴 배우지만 그래도 키아누 리브스 같은 수퍼 스타에 비교하면 어쨌거나 평범한 인상인 거잖아요. 중년 남성 관객들이 감정이입하기엔 이쪽이 더 편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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