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스피라시>는 바다 생물 학대와 해양 오염의 책임을 인간에 두고 그것을 순차적으로 따져가며 비판하는 다큐멘터리다. 고로 나는 이게 결국엔 "플라스틱 빨대를 비롯한 일회용품 사용을 줄입시다" 내지는 "고래 등의 바다 생물에 대한 무분별한 학살을 멈춥시다" 정도의 스탠스를 취하며 끝날 줄 알았다. 근데 결국 영화가 최종적으로 제시하는 결론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불편한 진실이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고래 및 돌고래 학살을 다룬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더 코브 - 슬픈 돌고래의 진실>과 페어를 이루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다만 <더 코브>가 일본 타이지 지역의 돌고래 학살을 중점으로 좁되 깊은 탐구를 보여주었던 작품이라면, <씨스피라시>는 그로 시작해 전세계의 대양 곳곳을 돌며 좀 더 다양한 문제들을 읊어대고 있다는 점에서 얕되 넓은 탐구를 지향하는 작품이다. 어쨌거나 언제라도 함께 보면 좋을 자매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더 코브>에 출연했던 해양 포유류 전문가이자 사회 운동가인 리처드 오베리가 <씨스피라시>에도 등장 하는 등 직접적으로 여러가지 공통점이 있는 두 영화다.
결론으로 얼른 넘어가보자. 결국 영화의 주장은, "우리 모두 해산물 구매 및 섭취를 줄입시다!"가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해양 생태계 오염과 착취에 전세계 곳곳에서 당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어업이 큰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 지금까지 우리는 해양 오염의 절대적 지분을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와 빨대가 차지하고 있다 배웠고 또 믿었다. 그러나 <씨스피라시>가 제시하는 통계는 전혀 다른 것이다. 해양 오염에 있어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와 빨대가 차지하고 있는 지분은 1%도 되지 않는다고, <씨스피라시>는 말한다. 오히려 그에 큰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은 어업 도구들이었던 것이다. 다 쓰고나서 아무렇게나 버린 그물과 통발 등이 바다 표면을 둥둥 떠다니며 오염을 부추긴다. 더 심각한 것은 그 도구들이 그 자체로 바다 생물들에게는 죽음의 함정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물 같은 것들은 애초부터 물고기를 잡아내기 위한 도구들이었잖아. 그런 어업 도구들을 바다에 마구 버렸으니, 분해가 되지 않아 바닷물이 오염되는 것은 물론이고 근처의 물고기들을 엉키게 하고 붙잡아 결국엔 죽게 만드는. 그런 죽음의 함정이었던 것이다.
더불어 다른 이유도 있다. 샥스핀을 위해 상어를 무분별하게 잡아대면, 생태계의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 최상위 포식자인 상어의 무분별한 남획은 그 아래 생태계 주자들에게 포식의 권력을 넘겨주게 되고, 그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오히려 모든 먹이 사슬 시스템이 붕괴된다는 것. 게다가 비싸게 팔리는 지느러미만 잘라낸뒤 값어치 떨어지는 몸뚱아리는 다시 바다로 던져넣어 상어가 그저 죽음 만을 기다리는 상태로 해류에 휩쓸리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비인간적이기도 하고 말이다.
얕되 넓은 관점의 다큐멘터리라고 소개한 만큼, <씨스피라시>가 제시하는 문제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단순한 바다 생태계의 오염 뿐만 아니라, 인간의 경제 시스템과 인권 문제도 그로인해 부서질 수 있음을 영화는 경고하고 있다. 비싼 새우를 만들기 위해 값싼 노동력으로 바다의 노예가 되는 사람들. 피싱 카르텔에 붙잡혀 대양 한가운데에서 잔인하게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 여기에 타국 영해를 침범해 불법적으로 물고기를 잡아들이는 범죄 행태 때문에 자신의 일자리와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까지. 인생 전반에 있어 언제나 놀라는 사실이지만, 우리 모두와 모두는 너무나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물고기 좀 잡는다고 사람 죽겠어? 그러나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사회가 무너지고 나라가 무너질 수도 있다. 그리고 결국엔 우리가 탑승하고 있는 이 행성마저 망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더 코브>가 한가지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 들어감으로써 진득한 성취와 그로인한 감동을 전달해내는 다큐멘터리였다면, <씨스피라시>는 다양한 소재를 한가지 주제에 묶어 비교적 산만하지만 또 그로인해 덜 지루한 다큐멘터리다. 그게 극영화이든 다큐멘터리이든 간에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의 폭력 및 고어 묘사는 나를 언제나 힘들게 하지만, <씨스피라시>의 그것은 마치 촌철살인 같은 느낌을 준다. 누군가에게 최소한의 경각심을 심어주기에, 남의 피 만큼 확실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들의 그 피는 곧 우리의 피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을 살리는 일은 곧 우리를 살리는 일이 된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당장 해산물을 끊을 수는 없는 게 당연한 우리네 현실이겠지만, 그럼에도 최소한 사람들이 알고나 있으면 하는 불편한 진실. <씨스피라시>의 감독과 제작진이 행한 꼼꼼한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덧글
구구 2021/04/20 12:16 # 삭제 답글
축산업이 환경오염에 크게 일조하는 것은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조차 없고..
농업도 농약으로 인한 토양오염과 비닐하우스 농기구들.. 막대한 물과 에너지가 소비되죠.
그런걸 다 제외해도 농지 개간만으로도 생물의 서식지가 사라지니 생태계 파괴는 필연적입니다.
'물고기 좀 잡는다고 사람이 죽겠어? 그러나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식량생산이 중단되면 반드시 죽겠죠.
위의 다큐멘터리가 어업이 환경을 오염 시키니 해산물을 먹지말자는 이야기를 하고있는 것이 맞다면..
같은 논리로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은 환경보호를 위해 지구상에서 인간이 없어져야 한다는 것 입니다.
어업의 폐해가 우리가 인지하는 것 보다 훨씬 크니 윤리적이고 친환경적인 방법을 도입해야한다 라는 주장이었으면
합리적이었을 것인데 극단적인 내용이 되어버렸군요.
CINEKOON 2021/04/20 15:34 #
언급해주신 '물고기 좀 잡는다고 사람이 죽겠어? 그러나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라고 제가 쓴 맥락은 같은 문단의 앞선 글과 연관 지어서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인생의 모든 부분들이 그렇듯이 우리들은 다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요, 어업으로 인해 우리가 죽을 수도 있다-라는 것 역시 영화에 언급되는 어업 카르텔들의 살인에 좀 더 강한 악센트를 부여하고 싶네요.
구구 님 말씀대로 저 역시 어업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면 식량 생산량의 급격한 저하로 인류 문명이 붕괴될 거라 믿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겐 미안하지만, 저 역시도 바로 해산물을 끊을 수는 없겠죠. 어업으로 삶을 꾸리시는 분들도 엄청나게 많을 테니까요. 그래서 마지막 문단에 역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당장 해산물을 끊을 수는 없는 게 당연한 우리네 현실이겠지만'이라는 워딩으로 나름의 현실 감각을 제시 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어업이 해로운 만큼 축산업이나 농업도 해로울 테니까요. 세상에 100% 친환경적인 산업이 어디있겠어요, 인간의 이익이 단 1%라도 관여된 순간 지구는 아플 테니까요.
어쨌거나 <씨스피라시>의 어조가 다소 극단적인 것은 사실인데, 제 개인적으로는 최소한의 경각심을 불어넣어주기 위해선 최대한의 극단성을 띄는 게 오히려 더 유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100만큼 이야기해도 사람들은 10만큼만 와닿게 되니까요. 그러니까 1000만큼 이야기하면 최소한 100만큼은 가 닿을 수도 있겠죠.
구구 님의 덧글로 참 여러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더불어 본문 글에 다소 부족했던 설명들을 이 덧글 통해 그나마 또 보충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고요. 이제 슬슬 더워지는데 푸른 녹음 가득한 하루 보내세요, 구구 님.
구구 2021/04/20 20:11 # 삭제 답글
그런데 제 덧글에서 잊어먹고 적지않은 내용이 있었네요.
다큐멘터리 '씨스피라시' 를 소개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덕분에 좀 극단적 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새로운 관점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럼 씨네쿤님께서도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