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존했던 누군가의 죽음과 그 유족들의 노력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라면, 감상할 때 아무래도 겸허한 마음이 드는 게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극영화 속 등장인물들처럼 누군가의 펜 끝이나 키보드로부터 탄생한 것이 아닌, 이 현실 지구 속에서 진짜 삶을 살았고 또 죽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니까. 그럼에도, 솔직히 말해 한 편의 작품으로써 그 완성도를 비판할 수는 있지 않은가. 소재의 무게에 비해 여러모로 아쉬운 완성도를 가진 작품들을 보면 아무래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게 또 어쩔 수 없는 현실이고.
다큐는 2006년 실제로 벌어졌던 한 사건을 탐구한다. 한 여자가 죽었고, 총을 쏜 범인은 잡히기는 커녕 특정 되지도 않았다. 경찰은 길을 잃었고 사건은 대중에게서 잊혀져 갔다. 그리고 여기서, 남은 유족들이 벌인 특이한 수사 방식이 끼어든다. 다름 아닌 SNS 신상 털기식 조사. 아니, 신상 털기라고 하기 보다는 첩보 작전이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유족들은 죽은 가족의 사진으로 당시 유행하던 SNS인 '마이 스페이스' 계정을 만들었고, 채팅을 통해 그녀인 것처럼 행세를 하며 주요 용의자들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던 남자는 끝내 그 가짜 계정과 사랑에 빠지고야 말았다. ......이거 그 자체로 하나의 영화인데?
유족들과 담당 형사의 증언을 토대로 재현되는 사건 현장의 미니어쳐. 장난감으로 표현된 사람과 자동차들을 직부감으로 훑는 카메라의 움직임에, 나는 '아, 이것은 <소셜 네트워크>의 내용을 <조디악>의 테크닉으로 담아낸 다큐인가?'하는 오해를 했다. <소셜 네트워크>와 <조디악>이라니. 어찌보면 이 두 영화가 <왜 나를 죽였지?>의 분위기를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그러니까, 마치 데이비드 핀쳐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보는 느낌이었달까?
문제는 영화가 그 흥미로운 설정을 지레 그만둬 버린다는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은 극영화가 아니고 다큐이기에, 실제 사건이 그런 방향으로 흘러 갔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는 순전히 내 개인적인 아쉬움이었음. 죽은 딸의 얼굴로 SNS 계정을 만들어 주요 용의자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주요 용의자가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그럼 이건 살인자가 피해자의 영혼과 마치 독대하는 느낌의 이야기인 거잖아? 영화적으로는 쩐다. 허나 어쩔 수 없는 현실의 서사가 이 흥미로운 전개를 가로막는다. 이렇게만 쓰니까 내가 인간 쓰레기처럼 느껴져 굳이 변명해보는데, 나 하나 재밌자고 실제 있었던 사건의 이야기 구조를 다 틀어버리자는 말은 아니다. 재밌는 전개로 가다가 갑자기 재미없어져 실망했다는 소리도 아니다. 아니, 애초에 실재했던 누군가가 죽은 사건인데 그걸 가지고 '재밌다'라는 표현 쓰는 게 옳지도 않은 거고.
진짜 영화적으로만 이야기한 거다. 그러니까 영화 잘못이 아니고 기대 포인트를 잘못 짚은 순전히 내 잘못 맞다고.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SNS로 범인 추적하는 이야기인줄 알고 고른 작품이었거든. 근데 영화는 전혀 반대의 전개를 보여주니까, 나로서는 실망할 수도 있었던 거지. 실제 사건이 결과적으로는 잘 해결되어서 다행이었지만, 한 편의 작품으로써 이 다큐를 관람한 관객 입장에서는 다소 아쉬웠다는 거. 이 두 개는 반드시 구분되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중반부부터 무척이나 산만해지기도 하거든.
딸을 잃고 노쇠한 엄마는 범 무서운 줄도 모른채 잔혹한 복수를 계획했다. 다행히 실행에 옮기진 못했지만 말이다. 그걸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범인을 체포하고 그 죄에 걸맞는 처벌을 내리는 것은 중요하지. 그리고 그 과정은 굉장히 이성적으로 봐야하고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다. 사사로운 감정들로 점철된 인간. 그 모든 일에 서려있는 사사로워서 큰 감정들. 그런 감정을 느끼고도 이 사회의 이성에 온전히 기댈 수 있을까. 끝내 실행에 옮기지 못해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죽은 딸의 엄마가 세웠던 그 계획에 어쩔 수 없이 공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나도 한낱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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