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27 17:39

노매드랜드 극장전 (신작)


<노매드랜드>는 대중적 에센스를 더한 테렌스 멜릭의 영화처럼 보이고, 더불어 유랑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한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까 간단히 정리하자면 자연 풍경을 담는 상황에서는 영상 시인 테렌스 멜릭의 그것, 그리고 그 대자연 안에 결부되어 있는 인간의 모습을 담는 상황에서의 연출론은 다큐멘터리의 그것과 마찬가지라는 것. 때문에 이 둘 모두에서 눈여겨 볼 수 밖에 없는 것은 영화의 카메라다. 촬영이다.

국내의 쿠팡 만큼이나 노동환경이 열악 하기로 소문난 아마존 내부 모습이 드러나는 오프닝. 여기에 마치 그를 수식 하기라도 하려는 듯한 석고 공장 폐업 관련 자막 덕택에, 초반부엔 영화가 일종의 사회 고발물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주인공과 더불어 영화가 담고 있는 각 캐릭터들의 실제 이야기 역시 2008년 벌어졌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미국 경제 붕괴에 그 근간을 두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고. 그러니까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의 오류로 인해 제도권 밖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이야기. 게다가 앞서 말했듯 다큐멘터리적인 시선까지 확보하고 있으니 이건 뭐 정적인 아담 멕케이 영화인가-하며 오해 하기도 했다. 그러나 클로이 자오가 관찰하는 건 내몰린 사람들이 맞되 그들을 그렇게 만든 시스템에 대한 비판과 고발은 아니다. 그녀는 그저 그렇게 살아가고 있고, 살아가야만 하고, 살아가고 싶어하는 그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을 탐구할 뿐이다. 

그러다보니 다른 작가, 다른 감독이었다면 굳이 넣지 않아도 되었을 묘사들이 속출한다. 우리의 주인공 펀이 좁아터진 밴 안에서 식사 하다가 바로 대변 배출에 몰두하는 장면이 대표적. 사실 제아무리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주인공을 묘사하는 영화라 하더라도 꼭 그들이 똥 싸는 장면까지 보여주진 않지 않나. 그러나 <노매드랜드>는 그런 장면들가지 보여줌으로써, 실재적인 삶을 더 현실적으로 그리고 그로인해 유랑하는 그들을 관객들인 우리 곁으로 데려온다. 소변을 보기 위해 탁 트인 황무지에 차를 대고 내리는 장면과, 편히 잘 곳을 찾아 후미진 곳 이곳 저곳을 전전하는 이미지 등 역시 그들의 현실적인 삶을 제대로 보여주고.

그리고 이 모든 게 핸드헬드나 스테디캠의 방식으로 항상 움직이며 촬영된다. 카메라는 과한 커버리지 샷을 허용하지 않으며, 그저 마스터 샷 한 셋팅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니 관조적인 태도로 그들의 삶을 가만히 응시하는 <노매드랜드> 특유의 촬영이 완성된다. 여기에 배우들의 연기는 또 어떠한가. 이 영화에서 유명한 배우라고 해봤자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데이빗 스트라탄 이 둘 정도 뿐일 텐데, 이 둘이 엄청나게 현실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그외 대부분의 다른 배우들이 모두 실제 유랑하는 삶의 일반인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 역시 이 영화 특유의 현실성에 대한 집착을 반증 해준다. 

여기에 광활한 북미 대륙의 자연 풍광이 쑥하고 들어온다. 영화가 드넓은 황무지와 길고 긴 자동차 도로를 담는 와이드한 방식, 그리고 선인장이나 우뚝 선 나무를 담아내는 타이트한 쇼트 사이즈 방식 등이 테렌스 멜릭을 절로 떠올리게 만든다. 그 자체로 시적인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는. 이렇게 넓고 또 넓기만 한 자연 환경 속에서 오롯이 서 있거나 달리고 있는 인물들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영화는 우리네 삶속 고통을 아무것도 아닌 일종의 먼지 같은 것으로 묘사한다. 밴 안에서 화장실을 해결하고, 좁고 추운 매트리스 위에서 가까스로 잠드는 거? 대단히 고된 일이긴 하지만 이 크고 넓은 세상 속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 말이지. 칼 세이건이 처절한 긍정주의자라면 이런 느낌이 날까 싶기도 하고.

아쉬운 건, 영화가 너무 동어반복한다는 것이다. 메시지도 뭔지 대략 알겠고, 그걸 수식하는 영상들도 훌륭하다. 그러나 영화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하고 또 한다. 심지어는 거의 결말부 들어서 아예 직접적인 대사로 관객들에게 직접 던져주기까지 한다. 그 친절함이 감사하다고 하면 할 말 없으나, 내게는 남은 런닝타임을 억지로 꽉꽉 채워넣기 위해 가까스로 집어넣은 변명들 같아 보여 마냥 좋게 보이지 만은 않았다. 

좋은 영화인 건 팩트임. 이번 아카데미에서 주요 부문 상 다 털어먹은 것도 합리적인 결정처럼 보임. 그러나 내 마음 아주 깊은 곳까지 비집고 들어오진 못했던 영화. 개인 취향으로는 서사가 있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그런 부분 보다는 이미지 나열에 더 중점을 둔 영화이기도 했고. 

뱀발 - 이 영화 보기 전까진 클로이 자오의 다른 작품들을 본 게 없어서 <이터널스>가 어떻게 나올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는데, <노매드랜드>를 보고나니 대략 어떤 방식으로 <이터널스>가 나올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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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ID U MISS ME ? : 이터널스 2021-11-10 15:12:40 #

    ... 만으론 그 피로도가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다. 그러니까 매번은 아니더라도 이렇게 가끔은, 좀 색다른 작가주의적 선택을 하는 마블 영화가 보고 싶다 이거지. &lt;노매드랜드&gt;는 재미없어서 기겁했었는데 &lt;이터널스&gt;는 또 잘 찍어놨네. 속편도 클로이 자오가 맡아줬으면 좋겠다. 뱀발 - 다양성 측면에서 할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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