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 스릴러' 정도로 홍보되고 있는 모양새인데, 사실 장르 특유의 지적인 면모는 평균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영화라 생각한다. 다만 그럼에도 좋았던 이유는, <스파이 게임>이나 <공작>이 그랬던 것처럼 이 예측불가하고 신뢰불가능한 첩보의 세계에 인간의 마음을 담았다는 것. 바로 그 점에서, <더 스파이>를 인본주의적 관점을 지닌 에스피오나지 영화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더 스포일러!
아닌 게 아니라 윤종빈의 <공작>과 꽤 공통점이 많은 영화다. 이 영화를 제작할 당시에 <공작>을 주요 레퍼런스로 삼지 않았을까 싶었을 정도. 영화의 건조 하면서도 갈색으로 정립된 톤 앤 매너가 특히 그렇고, 도무지 신뢰와 의리가 존재하기 어려운 첩보 세계에서 인간 대 인간의 우정과 신의를 말하고 있다는 점 또한 그렇다. 물론 <공작>의 주인공은 전문 첩보요원이었고, <더 스파이>의 주인공은 애시당초 비전문 요원이었다는 점 정도는 핵심적으로 다름. 그리고 이 영화에 끌렸던 점도 바로 그러한 설정 때문이었다. 애초 첩보원 교육은 커녕 위험한 일들과는 담 쌓고 지냈던 양반인데 핵전쟁의 위기 한 가운데에 놓여있었다는 점. 바로 그게 흥미를 끌었다.
그렇게 초장부터 비전문 요원을 주인공으로 끌어다 쓴 영화이기에, 상술했던 것처럼 장르 특유의 대단한 지적 면모나 손기술 따위가 전시 되지는 않는다. 주인공인 그레빌 윈은 총도 못 쏘고 또 총을 쏠 일도 없는 첩보요원이다. 뛰어난 감청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임스 본드 마냥 멋진 비밀무기들을 갖고 다니는 것도 아님. 첩보원으로서 그레빌 윈의 가장 큰 능력은 '난 아무 것도 몰라요'라고 이야기하는 듯한 표정과 그 연기고, 거기서 부터 발산되는 평범함이다. 이 인물이 맡은 임무들도 모두 그저 조그마한 무언가를 밀반출해 옮기는 것 정도이고.
때문에 영화가 더 관심을 갖는 것은 인간 드라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위험한 순간의 한 가운데에서 모든 것을 걸고 희생 했음에도 남들은 그걸 알지 못한다. 이전에 저질렀던 한 번의 불륜으로 아내는 자신을 더 이상 믿지 못하고, 세상의 모든 짐을 홀로 지고 있음에도 그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해 끝내 아들에겐 소리를 지른다. 정신적으로 고통 받고 있는 한 평범한 인간의 삶에 침투해 들어온 깊은 딜레마. 그리고 역사는 그레빌을 한 번 더 선택의 순간으로 밀어넣는다. 첩보의 세계에서 만났던 상대편. 한 명의 첩보원. 한 명의 인간. 그리고 한 명의 친구. 그를 구하기 위해서 그는 한 번 더 적진으로 성큼성큼 들어가고야 만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고, 자신에게 하달된 임무 역시 아니었음에도 그는 오히려 상부를 설득해 자신의 고집을 관철시킨다.
안쓰럽게도 그는 발각 되었고, 친구를 구하기는 커녕 그 스스로도 이역만리 타국의 감옥에 갇혀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2년여를 보낸다. 그러나 정말 놀랍게도, 그는 그 친구를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핵전쟁을 막는 데에 이바지 했음을 알리고 또 기리며 감사해 한다. 그는 끝까지 그를 친구로 대한 것이다. 어쩌면 '핵'이나 '전쟁' 따위의 큰 단어들 앞에서 '우정'이나 '의리' 같은 단어들은 한없이 작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인류의 운명과 그 존망에 비해서 '우정'과 '의리'라는 단어들이 주는 어감은 너무나 사사롭게만 느껴진다.
허나 딱 한 치 앞만을 걱정하던 인간의 그 사사로운 마음이 결국 세상을 구했다. 그레빌 윈의 마지막 선택에는 그리 큰 이유가 없었다. 그는 그저 친구를 구해내고 싶었을 뿐이었다. 친구를 구하려다가 결국엔 핵전쟁을 물러나게 했던 그 마음. 느닷없지만, <쉰들러리스트>의 그 유명한 어구를 가져다 쓰며 마무리하고 싶다.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은 온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의 마음으로 지켜낸 인간의 세계. 그 사사로운 한 치 앞의 감정들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덧글
SAGA 2021/05/05 10:43 # 답글
CINEKOON 2021/05/09 14: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