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08 17:06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극장전 (신작)


테일러 쉐리던의 신작으로써 갖는 위치가 큰 영화일 것이다. 나로서도 애초 그 때문에 기대했었던 거고.

<스타워즈> 같은 스페이스 오페라나 MCU로 대표되는 수퍼히어로 장르 등, 거대한 규모의 영화들을 좋아함에도 언제나 마음에 더 끌렸던 것은 작은 규모의 이야기들이었다.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의 결코 크지 않은 그 이야기 규모는 딱 내 취향이었던 것. 규모를 줄일수록, 아무래도 이야기의 밀도는 촘촘해지기 마련이잖나. 사건의 양감 대신 그 안에서 인물들이 느끼는 미시적인 상황과 감정들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기도 하고. 

일단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의 기초 셋팅은 나쁘지 않아 보인다. 누군가를 지키지 못했다는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거의 죽기 만을 기다리고 있는 주인공. 그리고 바로 이런 주인공 앞에 나타난 지켜야할 존재. 이 두 캐릭터의 셋팅은 다소 상투적이지만, 그럼에도 이들을 위협하는 게 두 명의 킬러와 거대한 산불이란 점은 매우 효과적이다. 이른바 투 트랙 신공. 딱 여기까지만 들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쫙 나열되는 것이다. 넓은 숲에서 불길을 피해 도망 다니다가도, 킬러를 맞닥뜨리면 얼른 숨어야 하는. 액션을 만들기에도 좋고 긴장감을 흩뿌려 나가기에도 유리한. 게다가 주인공의 직업은 또 소방관이잖나. 그럼 이야기 실타래를 엮기에 썩 좋은 조건이란 말이지.

그러나 영화가 그걸 잘 해냈는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든다. 일단 영화의 런닝타임이 너무 짧다. 대략 1시간 20여분 정도 되는 길이인데, 정작 두 주인공이 산불과 본격적으로 만나는 건 영화가 끝나기 대략 15분 전쯤. 거기다 킬러와의 제대로된 대결 역시 그 즈음부터 시작된다. 그러니까 영화의 런닝타임 2/3동안은 상황과 캐릭터 셋팅만 해놓고, 나머지 1/3이 겨우 남았을 때나 되어서야 부랴부랴 갖고 있던 가능성의 불씨를 태워낸다는 것. 이 재밌어보이는 상황 설정이 정작 별로 쓰이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그 나머지를 몽땅 일견 쓸데 없어 보이는 장면들로 채운다. 과거의 트라우마에 갇혀 현재를 버티지 못하는 주인공? 이거 많이 봤던 인물 유형이잖아. 그럼 새롭고 신선한 방식으로 묘사해내든지, 그게 자신 없었으면 그냥 대충 퉁치고 넘어갔어야지. 그러나 영화는 이를 초반부와 중반부에 한 번씩 총 두 번이나 반복되는 플래시백 묘사로 뻔하고 재미없게 설명 해낸다. 여기에 그 악몽 꾸고 땀에 잔뜩 절은채 비명 지르며 깨어나는 주인공의 모습은 덤. 이건 너무 뻔하지 않나?

악당 킬러들도 문제다. 물론 이들도 설정은 재미있다. 사수와 부사수로 이루어진 팀. 노련한 베테랑처럼 보이는 사수 옆에서, 젊은 신참 느낌의 부사수가 동분서주한다. 영화의 분위기상 유머를 보여주는 콤비는 아니지만, 그 자체로 여러가지 가능성들을 품고 있는 콤비인 건 사실이잖아. 딱 들어도 재밌잖아, 좀. 하여튼 이런 기조가 보이니, 나로서는 '이 두 악당의 인간적인 면모가 강조되나 보다'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허나 그건 또 아니었음. 그러니까 이 둘이 너무 애매하다. 둘 중 하나의 스탠스를 확실하게 취했어야 했다고 본다. 첫째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사연 있는 인간적인 악역으로서 그저 그것이 직업이고 또 업무이기 때문에 이 모든 일들을 벌일 수 밖에 없는 상황. 그리고 둘째는, 아예 그냥 안톤 쉬거처럼 가는 거. 사연이나 감정 이딴 거 다 집어치우고 그냥 절대악으로서만 묘사하는 거. 그럼 최소한 무섭기라도 했지. 하지만 영화는 그 사이 어딘가 어중간한 지점에 이 악당 둘을 그저 던져놨다. 무섭지도 않고 마음이 가지도 않음.

더불어 반쯤은 죽고 싶어하는 주인공이 술에 취한채 달리는 차에서 낙하산으로 장난치는 장면이라든지, 주인공의 전 남친 관계 설정이라든지 굳이 안 해도 되었던 묘사들 한 바가지. 그러는 와중 주인공 꼬마와 아버지 사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휘발된다. 애초 이 꼬마의 아빠라는 작자가 갖고 있던 비밀, 킬러들이 한사코 막으려했던 그 비밀이 무엇인지도 알려지지 않고. 이건 아예 그냥 맥거핀으로 소모됨. <미션 임파서블 3>의 토끼발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여기에 그 두 킬러의 고용주처럼 보이는 인물 역시 내가 봤을 땐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존재였다. 영화에 아예 등장할 필요가 없었다고.

쓰다보니 어째 단점들만 주르륵 이야기하긴 했는데, 그럼에도 한 줄기 희망을 발견한 부분도 있었다. 말 그대로 희망. 테일러 쉐리던의 영화들은 항상 그랬다. 우리들의 희망이라고 은유할 수 있을 다음 세대에 대해 항상 비관적이었다고. 요즘 젊은 것들은 정신이 죄다 썩어빠졌다- 이랬다는 게 아니라, 어른으로서의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는 그 비참함과 안타까움을 항상 그려왔다고.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는 총성으로 대표되는 폭력이 일상화 된 곳에서 그저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으로 끝을 맺었고, 속편인 <시카리오 - 데이 오브 솔다도>는 한 술 더 떠 아이에게 당했던 어른이 그걸 다시 돌려주기 위해 찾아가는 상황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럼 <윈드 리버>는? <윈드 리버>는 더 하지. 이 비정한 세상 속에서라도 한사코 살고 싶어 죽을 힘을 다해 뛰었던 아이를 결국 구해내지 못하고, 그저 남겨진 어른들끼리 서로를 위로하는 뒷모습으로 종결되는 영화이지 않나. 테일러 쉐리던은 그렇게 항상 씁쓸함 만을 남겨왔다. 그러나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은 다르다. 우리의 주인공 한나는 결국 소년을 지켜낸다.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연루되면 오히려 자기 스스로도 위험해지는 상황 속에서 결국 아이를 보호 해낸다. 어른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던 것이다. 물론 그 와중 겸사겸사 자신의 트라우마도 좀 극복하고. 근데 그건 또 달리 말하면, 다음 세대를 구하는 게 곧 우리 자신을 구하는 일과도 일맥상통한다는 뜻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장르적으로 더 큰 재미를 가져갈 수 있었을 텐데 그걸 하지 못해서 아쉬운 영화. 그러나 뭔가 달라진 테일러 쉐리던의 태도를 보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히 의미있었다. 드디어, 다음 세대의 손을 놓지 않기로 작정한 그의 모습을 본 것 같았달까. <윈드 리버>랑 이 영화 사이에 득남득녀라도 했나, 왜 이렇게 사람이 주체적으로 바뀐 것 같지?


뱀발 - 극장에서 안젤리나 졸리 정말 오랜만에 보는데 그래서 그런가 너무 반가웠다. 스타는 스타인가 보다. 

뱀발2 - 존 번설 나오길래 일찍 죽을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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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로그온티어 2021/05/21 02:22 # 삭제 답글

    작가분의 태도가 변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가 5월 5일 개봉했잖아요
    테일러 쉐리던도 이 날이 어린이날인 걸 알았던 겁니다.
    이 영화는 어린이날 기념 영화이기 때문에 어린이에게 관대한 작품이 되었던 거죠.
  • CINEKOON 2021/05/24 14:01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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