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3 15:25

스파이럴 극장전 (신작)


3편까지 보다 그 괴로운 피칠갑 쑈에 질려 버린 나머지 이후 나온 시리즈들에 대한 감상을 완전히 포기해버린 <쏘우> 프랜차이즈. 그렇게 공포 영화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지는가 했는데 시리즈가 선택한 생명 연장의 방법은 리부트도, 프리퀄도 아닌 스핀오프다. 직쏘의 살인 행각으로 부터 깊은 감명을 받은 누군가가 이른바 뉴 직쏘가 되어 그 게임을 계승한다는 이야기. 고로 주인공들은 싹 다 갈린 외전인 동시에, 아직도 직쏘의 사상과 그 방법이 유전 되듯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선 속편이라고 볼 여지도 있겠다. 


장르 특성상 스포일러를 안 할 수는 없으니...


주연을 맡은 크리스 록과, 감독이자 각본가인 대런 린 보우즈만 사이의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다고 들었다. 평소 <쏘우> 시리즈의 팬이었던 크리스 록이, 우연히 대런 린 보우즈만을 만나 이 시리즈를 이어갈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다고 입 털었다는 이야기. 그렇게 제작된 게 바로 이 <스파이럴>인 것. 그 인터뷰로 말미암아 보았을 때 결국 이 시리즈는 크리스 록의 어떤 사상이나 개념, 또는 정체성이 어느정도 투영될 수 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아무래도 그건 작년 한 해 북미 지역을 뜨겁게 달구었던 'Black lives matter' 운동에 대한 것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주인공은 흑인이고 당연히 그의 아버지도 흑인이다. 이 둘이 결국 영화 끝까지 간다. 여기에 이 영화에서 새로 제시하는 자칭 직쏘의 후계자 역시 전형적인 백인 아메리칸 타입의 모습에서 멀어 보인다. 애초 'Black lives matter' 운동이라는 게 흑인 용의자를 강경 진압하다 결국 죽게 만든 경찰들로부터 촉발된 것이었잖나. 그 점에서 본다면 영화의 결말과 범인의 동기 모두 크리스 록이 가진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에 기인한 것처럼 보인다. 백인 경찰은 유색인종 범인의 유색인종 아버지를 쏴죽인 전력으로 단죄 당하고, 영화의 결말부 벌어지는 오해로 인해 결국 죽음을 맞는 주인공의 아버지 역시 흑인이었다. 그리고 그 역시 경찰 특수부대원들의 총격에 의해 죽지. 게다가 영화의 메인 테마는 경찰들의 자정 능력 부재와 그 부패로 인한 죽음.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이 가진 힘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영화가 바로 <스파이럴>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흥미로운 것은, 주인공의 흑인 아버지 역시 이 부패한 시스템의 한 축이었다는 데에 있다. 게다가 부패 경찰이었다는 말이 곧 그들을 마구잡이로 죽여도 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은 아니잖아? 어쨌거나 유색인종 범인은 죄가 있었든 없었든 그 유무를 떠나 경찰들을 자경단 마냥 학살했다. 뭐, 영화라는 매체에서 사적 복수와 그 폐해를 다루었던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니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하여튼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들 역시 무조건적으로 수호의 대상으로 보는 영화는 또 아니라는 거지. 다시 말하면, 'Black lives matter' 운동의 방아쇠를 당긴 공권력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도 그게 무조건적인 태도가 아니라는 것. 인종적인 걸 떠나 악과 부패에 가담하면 결국 단죄 당한다는 메시지. 물론 그 단죄가 제대로된 법 체계 위에서 이뤄진 건 아니지만 그거야 장르적인 맥락에서 이해해야지... 하여튼 좀 웃겼던 건, 크리스 록 이 양반 과거 아카데미 시상식 호스트 하면서 아시안에 대한 인종차별 드립을 친 적이 있었다는 거. 그러면서 이번 영화에서는 유색인종들이 겪은 피해를 소리쳐 반대하고 나섰음. 물론 그 사이 비판적인 태도들을 견지해 배우 자체가 반성했다고 하면 할 말 없지만 말이다.

메시지 먼저 이야기 하느라 바빴는데, 이런 종류의 고문 포르노를 안 좋아하면서도 은근히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그건 영화가 고문 포르노를 어느정도 가미했되, 기본적으로는 <세븐> 류의 형사물 내지는 수사물이었기 때문. 이런 종류의 영화 최근에 좀 보고 싶었기도 했고, 무엇보다 극장 개봉작이 많지 않았잖아. 그래서 재밌게 본 것도 있었다. 중간중간의 화면 구성이나 톤 앤 매너가 일요일 아침의 서프라이즈 영상 보는 것 같긴 했지만 그건 그냥 그거대로 넘길 수 있는 거였고...

존나 웃긴 건 반전이 실패했다는 데에 있다. 시리즈가 거듭될 수록 서서히 망해 갔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반전의 신선함과 그 충격으로 유명했던 게 <쏘우> 아니었나? 근데 왜 <스파이럴>은 반전에서 이토록 실패한거지? 주인공에게 새로 들어온 신참 파트너가 배당 되면서부터 영화 결말까지 싹 다 유추 가능 하더라. 너무 쉬워보이길래 오히려 뒷통수 칠 각 재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게 그냥 반전이고 또 결말이었음. 내참, 이건 눈치 좀 없는 관객들도 다 알아차릴 수 있겠더라고. 반전과 결말이 중요한 스릴러 장르 영화로써는 그냥 난이도 하.

여기에 존나 정성스러운 트릭들도 산통을 깬다. <세븐>의 존 도우 역시 정성스러운 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의 공학자 타입은 아니었잖아. 허나 여기 범인은 직쏘 후계자 아니랄까봐 별 해괴한 기계 트릭들에 온갖 정성을 쏟아놨음. 그게 이 장르의 맛이라고 해도 하여튼 몰입 깨진 건 깨진 거다. 지하철 선로에, 웬 빈 공장 창고에, 심지어는 경찰서 내부에 그런 복잡한 함정들을 설치해두다니. 누군지는 몰라도 시간이 존나 남는 놈이구나 싶었다. 누군지 알았잖아

결론. 본격 고문 포르노 보다는 수사물에 더 가까워서 생각했던 것보다 재밌게 보기는 했다. 특유의 톤 앤 매너도 뭔가 짜치면서 그게 또 매력이었고. 기대를 너무 안 해서 오히려 재밌게 봤던 영화. 그럼에도 장르 역사에 큰 방점을 찍기엔 아직 부족하다. 새로운 시작이라고 지껄여 놓은 게 있으니 차기작에서는 좀 더 나은 모습 보여줄지도 모르겠다.

뱀발 - 그나저나 그 유리 파쇄기. 그런 기계는 세상에 왜 존재하는 거임? 파쇄 했으면 그냥 조용히 흘려 보내야지, 뭔 최종 결전 무기처럼 그걸 파동포 마냥 쏘아대고 앉아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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