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24 12:41

랜드 오브 데드, 2005 대여점 (구작)


좀비들의 아버지, 앞으로 해도 뒤로 해도 같은 이름인 로메로 옹의 2005년작. 이 꼬리표가 정말 묘한 게, 만약 그가 감독이 아니었다면 <랜드 오브 데드>는 그저 뻔하다 못해 괴랄한 맛의 B급 좀비 영화로만 기억 됐을 것이란 점이다. 동묘에서 몇 백 원 주고 산 티셔츠에 나이키 로고가 붙어 있으면 그게 달리 보이는 것처럼... 아니, 잠깐만. 어차피 조지 로메로 이 사람 원래도 B급 감성 충만한 사람이었잖아? 그럼 뭐 달라진 게 없는 거네?

보통 좀비 영화여도 그 첫 씬의 첫 쇼트부터 좀비가 주인공으로 먼저 등장하는 경우는 별로 없지 않은가. 근데 <랜드 오브 데드>는 죽은 자들의 땅을 제목으로 삼은 만큼 그냥 냅다 좀비떼 행색으로 시작된다. 달리 말하면, 인간들보다 좀비들에게 좀 더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영화란 소리이기도.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인간 측이 아니라 좀비 측에게 쥐어준 거지.

좀비들이 주인인 땅에서는 산 자들이 악역 도적떼처럼 묘사된다. 좀비 리더가 그 좀비 주민들을 살리기 위해 직접 몸을 날리고 또 그들의 죽음과 고통을 보며 괴로워하는 판국이다 보니, 이들에게 총을 난사하는 인간들이 더 악역처럼 보이는 게 존나 넌센스. 여기선 좀비들이 <7인의 사무라이> 속 마을 주민들이고, <벅스 라이프> 속 개미들이다. 

이렇게 당하기만 했던 좀비들이 인간들 최후의 유토피아를 향해 돌격하는 모습으로 영화는 진행된다. 가장 아래 계층의 분노한 자들이 가장 높은 곳에 사는 부르주아들을 향해 돌진하는 전개. 부르주아들에게 소위 아랫것들은 언제나 교체 가능한 소모품일 뿐이다. 그게 딱 좀비지, 뭐. 때문에 영화는 결국 혁명 서사의 이미지를 가져간다. 심지어 그 좀비들의 행색도 경비원, 도축업자, 학생, 아웃사이더, 부랑자 등의 모습들. 

자본주의는 결코 죽지 않는 것이다. 좀비들로 세상이 깨판난 상황이지만 그 안에서도 부유층을 위한 시스템은 굴러 간다. 보통의 좀비 아포칼립스 영화들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깔끔하고 우아한, 그래서 더 분통 터지고 한심해 보이는 돈냄새 쩐 이미지들의 향연. 좀비 영화적인 재미는 사실 크지 않은 작품인데, 그럼에도 영화가 묘하게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는 건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보다보면 인간들, 특히 부르주아 캐릭터들에 대해 별다르게 응원할 맘이 안 생기거든. 그냥 좀비들한테 다 물어뜯겨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만 했다. 

아주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다. B급을 넘어 아예 A+급으로 도약해 고예산의 제작비까지 책정받게 된 요즘의 좀비 장르 영화들에 벌써 익숙해진 당신이라면 <랜드 오브 데드>는 너무 옛스러워 촌스럽게만 느껴질런지도 모른다. 근데 어쨌거나 조지 로메로 옹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여전하니, 원조집의 그 맛이 아직 죽진 않았다고 볼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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