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24 14:34

분노의 질주 - 더 얼티메이트 극장전 (신작)


스크린 속의 지들끼리만 친한 것 같다. 스크린 밖의 관객으로서는 왕따 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파티에 어쩌다 초대된 기분. 근데 나 빼고 지들끼리는 다 알아. 


분노의 스포일러!


이렇게 선을 세게 넘어버릴 줄은 몰랐다. 이제 우주를 가? 그래, 차라리 우주선을 타고 가는 거면 내가 또 모르겠어. 근데 또 꼴에 <분노의 질주>랍시고 로켓 엔진과 추진체를 달아놓은 자동차를 타고 우주에 간다? 일단 난 시리즈의 팬이 아니다. 그래도 스핀오프작인 <홉스 & 쇼>까지 앞선 아홉 편의 영화를 모두 다 봤던 사람이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기론 이 정도의 막 나가는 설정은 전작들에 없었다. 물론 전작들에서도 말 안 되는 장면 엄청 많았지. 허나 적어도 전작의 그런 부분들은 영화적인 허용으로써 최소한의 납득이 다 가능한 부분들이었다. 근데 여기서는 다른 곳도 아니고 우주로 가질 않나. 이건 영화의 장르가 아예 바뀐 거지. <다이 하드>에서 갑자기 <스타워즈> 되는 거랑 뭐가 다르냐고.

물론 영화는 이 모든 것들을 일종의 개그로 치환할 기회가 있었다. 영화외적으로 밈이 되어 놀림 당하고 있는 이런 부분들을 그냥 우스개로 끌어안을 수 있었다고. 로만이 계속 말하지 않나, 그토록 많은 사건들을 겪어오면서 난 단 한 번도 총에 맞지 않았다고. 그러니까 우리는 어쩌면 무적일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영화내내 로만과 그 친구들은 전혀 다치질 않는다. 이걸 개그로 끌고 갔으면 인정. 확실히 개그감 더 묻혀서 본격적인 유머로 연출 했었다면, 이미 존재하는 그 수많은 밈들처럼 그냥 나도 받아들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영화는 시종일관 진지한 자세를 취한다. 말도 안 되는 쌉소리를 시전하고 있으면서 표정은 내내 엄근진. 그럼 이건 뭐 웃으라고 넣은 거 아니란 소리지? 지들 딴엔 존나 진지한 거라 이거지, 지금?

비슷한 이야기로, 자동차를 탄채 타잔이나 스파이더맨처럼 줄타기 곡예하는 장면? 그것도 쿨하게 넘겨줄 수 있다. 그게 영화내적으로도 기적에 가까운 무언가였다면. 그러니까, "결국 우린 다 죽겠구나..."라는 대사를 주인공들이 치며 자동차가 절벽 아래로 떨어졌는데, 정말 기적적인 확률로 그 줄타기 곡예를 하게 되어 결국 살아남은 것이라면 이해해줄 수 있다는 거다. 근데 지금은 주인공인 돔이 의도적으로 자신감을 갖고 그 지랄을 떤 거잖나. 거기서 돔의 표정이 너무 재수없었다. 말도 안 되고 가능성이 정말로 희박한 일이지만, 나라면 할 수 있다-라는 재수없는 자신감이 드러나는 것 같아 싫었다. '너네는 못 하겠지만 나라면 할 수 있어'라는 뉘앙스가 솟구쳐 나오는 것 같아 꼴보기 싫었음. 

이외에도 말 안 되는 게 한두가지랴. 자동차 훔치는 걸로 뒷골목에서 먹고살던 놈들이 이젠 지구 방위에 책임감을 느낀다. 지들이 뭔데? CIA 요원이 킹갓제네럴충무공급 세계파괴 무기와 함께 사라졌다. 근데 왜 지들이 출동해. 심지어 은퇴한 뒤 아들 낳고 잘 살고 있던 동료까지 강제로 리크루트함. 돔이 아들 때문에 임무에 참가하길 주저하니까 다들 단체로 눈치 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시발 니들이 대체 뭔데? 

여기에 총 맞을지도 모르는 위험 천만한 임무에 투입되는데 방탄조끼는 커녕 무적의 런닝셔츠로 일관하는 태도도 존나 웃기고, 바로 전편의 악당이었던 사이퍼를 붙잡아둔 유리 감방도 다른 의미로 재미있다. <엑스맨2>에서 매그니토가 갇혀있던 감방이랑 비슷한 디자인인데, 그 안에 암만 봐도 화장실이 없더라고. 화장실은 커녕 그냥 좌변기도 없어. 그럼 얘 볼 일은 어디서 봐? 화장실 가고 싶을 때마다 거수하는 건가? 영화가 재미없으니 이딴 딴 생각 밖에 안 들더라.

인물들을 갈라치기 해서 전개되는 교차편집 <제국의 역습> 플롯으로 전개되는데, 이게 몰입감을 확 해친다. 안 그래도 두 시간 반 정도로 런닝타임이 긴 편인데 일본에 있는 두 명 보여줬다가 영국에 있는 주인공 보여주고, 그러다 또 다른 데 파견나간 인물들까지 다 보여줘야함. 왔다 갔다 정신없고 산만하게 굴어대니 도무지 집중도 안 되고... 아, 일본 이야기 나온 김에. 내가 그래도 왕년에 도쿄 깨나 여행 가봤던 사람인데, 대체 도쿄에 그런 후줄근한 동네가 얼마나 있나? 본격 SF 영화도 아니면서 아직도 <블레이드 러너> 묘사에서 단 1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도쿄 정도면 이제 전세계구급 대도시인데 아직도 이렇게 묘사하는 거야...? 간판이 휘황찬란하고, 노상에서 국수 먹는 걸로 그냥 오리엔탈리즘에 듬뿍 절여서 표현하겠다는 거지? 참으로 구태의연한 양키 센스다.

시리즈가 장기화된 만큼 그동안 등장했던 인물들도 많을 터. 제작진이 <어벤져스 - 엔드 게임>이라도 보고 온 것인지 시리즈 내 인연 총출동이다. 근데 그게 안 반갑다. 팬들을 위해서 그 모든 인물들을 모은 것이었다면, 각 인물들에게 제대로된 무언가를 하나씩 쥐어주었어야. 지금은 딱 한 탕 씩만 하고 퇴장한다. 헬렌 미렌은 왜 나왔는지도 모르겠고, 3편의 주인공은 뜬금없이 등장해 한과 뒤늦은 해후를. 아, 한. 살아돌아온 한. 이럴 거면 왜 살렸어? 죽음에서 돌아왔으면 뭔가 그만큼의 활약이 있었어야지. 아니면 최소한 <캐릭비안의 해적 - 망자의 함> 말미에 등장한 바르보사처럼 충격이라도 주든가. 살아돌아왔지만 한은 여전히 있으나 마나 한 캐릭터다. 심지어 이번엔 웬 닌자 소녀까지 데리고 옴. 토레도 가족은 아메바처럼 빠르게 늘어난다. 

보다보니 액션 영화가 아니라 토크 드라마 아닌가 싶은 장면들도 꽤 많았는데, 죽음에서 돌아온 한의 사연을 듣는 장면이 그 중 최고. 보통은 한이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있었는지를 관객들에게만 묘사해주겠지. 그리고 동료들이 "야, 너 대체 어떻게 살아돌아온 거야?"라고 물으면 한이 "이야기가 길어" 정도로 퉁치고 넘어가는 게 일반적. 근데 이 영화는 한이 직접 나서서 친구들에게 자신의 무용담을 다 이야기해주고 앉아있다. 무슨 유치원 애들처럼 주인공들이 좌르르 앉아 한의 이야기를 듣고 있음. 이게 대체 뭐야... 그렇다고 한의 거짓 죽음에 얽힌 스토리가 재밌었던 것도 아니고... 그 밖에도 변명과 핑계 뿌려대는 영화의 꼴이 참으로 가관인데, 돔의 과거 회상도 진짜 개웃기다. DC 유니버스의 클락 켄트가 그랬듯, 돔도 과거 회상 속으로 기어 들어가 여러가지 유용한 정보들을 빼내온다. 얘도 샤머니즘 무당이냐? 

이런 영화에서 누가 이야기를 기대햐나-라고 한다면, 좋다. 그럼 액션은 어떤데? 난 이 영화의 액션도 정말 최악이라고 본다. 개인적으로 5편의 금고털이 카체이스 장면을 정말 좋아하는데, 이번 9편의 자석 설정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아 예고편 볼 때부터 기대했었다. 그러나 그 효용도는 제로에 수렴. 재밌거나 멋지지도 않고, 계속 주구장창 반복해서만 씀. 회식 자리에서 재미없는 부장님의 유머를 반복해서 듣는 것만 같은 기분. 더 열 받는 건, 부장님은 그게 재밌는 줄 알아. 

어차피 개과천선해서 가족으로 돌아오겠지- 싶었는데 결국 존 시나의 제이콥 캐릭터는 예상을 빗겨가지 않는 인물이었다. 이러니 악역에 대한 긴장감도 떨어지지... 그렇다고 그 옆에 있었던 독재자의 아들 캐릭터도 재미없는 인물이고... 근데 담당 배우가 어째 가이 피어스 닮았더라. 그래서 그나마 더 악역 같았음.

연기력에 대해서도 할 말이 정말 많은데, 빈 디젤은 연기를 정말 못한다. 딱 두 가지 정도의 표정으로 두 시간 반을 이끌어가는 사람이다. 근데 존나 무서운 건, 테즈 역할을 맡은 루다 크리스 앞에서는 빈 디젤이 선녀라는 것. 루다 크리스는 왜 모든 표정이 다 하나임? 심각할 때도, 웃긴 이야기 들을 때도 표정 존똑. 당신, 영화계의 홍명보야? 아니,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화의 개그가 너무 거지 같다. 로만과 테즈 콤비의 유머는 진짜 재미가 0.1만큼도 없다. 근데 이거 보여주겠다고 영화는 계속 시간을 할애해. 근데 그걸 떠나서도 테즈 진짜 씨발 새끼임. 친구라는 놈이 여자랑 다른 사람들 앞에서 로만 존나 놀린다. 이런 새끼를 두고 친구라고 할 수 있는 거냐?

놀랍게도 난 기존 이 시리즈에 대해서 호감이었다. 전작인 8편이 조금 재미없었을 뿐, 나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했고 심지어 1편에서 7편까지는 대체로 다 재미있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스틴 린이 돌아와 메가폰을 잡은 9편이 이 모양 이 꼴이라니. 2021년 올해가 아직 5개월 정도 지났을 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올해 WORST 목록에 감히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영화라고 본다. 7편에서 시리즈를 끝냈으면 어땠을까... 아니, 차라리 8편에서 끝냈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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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서 그런 점만 그냥 보면 가성비가 좀 떨어진 거 아니냐-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래도 이게 어디냐... 전편에 비해 한없이 추락하는 속편들이 할리우드 영화 역사에 얼마나 많았던가. 썩어도 준치라고, 이 정도면 꽤 잘 선방한 편이긴 한 거지. 미이라라는 소재 때문에 공간적 배경을 이집트 외의 다른 곳으로 옮기긴 어려웠을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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