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31 17:43

보이저스 극장전 (신작)


한계점에 다다른 지구 온난화로 멸종의 위기에 놓인 인류. 여기에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 우선 좋은 소식은, 지구로부터 몇 광년 떨어진 곳에서 이주 가능한 행성을 발견했다는 것. 노아의 방주 마냥 짐 싸들고 이사하면 된단 소리다. 그러나 이어지는 나쁜 소식. 아직 인류에게는 온전한 생체 냉동 보존 기술이 없다는 것. 그러니까 그 노아의 방주 만들어봤자 우리들은 그 새 식민지 행성에 도착하기도 전에 늙어 죽을 거란 소리다. 이에 인류가 선택한 건 현재가 아닌 미래를 보자는 것. 지금 우리들이 갈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후손들은 그 곳에 보낼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이후의 신세대를 위한 유전자 조작 인간들이 잉태되고, 생존에 필요한 갖가지 조기 교육들까지 이수한 이 네오 휴먼들은 방주에 탑승하게 된다. 이제 그들은 한평생을 우주선에서 보내며, 이후 세대를 직접 길러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적어도 그들의 손주 세대는 새 집에 안착할 수 있게 되겠지.

감독인 닐 버거는 <리미트리스>를 통해 결국 파멸에 이르는 인간의 욕망을 보여주었고, 이후 <다이버전트>와 그 후속 시리즈들을 통해 젊은이들의 여러 고충을 탐구하는 영어덜트 영화적 속성들을 탐구해왔다. 그 점을 이해하고 본다면, <보이저스>는 꽤 그럴듯한 차기작이다. <보이저스>의 주인공들 역시 10대 후반 정도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청춘들로 묘사되어 있고, 이는 곧 기성 세대가 정립 해놓은 그들의 운명에 젊은 신세대가 반기를 드는 전개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보이저스>는 운명론에 대한 이야기다. 대의를 위한 자기 희생이 중요한가, 아니면 그게 실패하더라도 개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 더 중요한가. 우리 모두를 비롯한 현재 존재하는 인간들은, 자신이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게 아니다. 그리고 그걸 젊은이들은 더더욱 크게 느낀다. 여기서 <보이저스>의 구도는 더 명백해진다. 운명을 강요하는 어른들 VS 그를 불합리하게 여기는 아이들.

영화는 우주로 배경을 옮긴 '파리 대왕'이기도 하다. 지구에 남겨진 기성 세대가 은연 중 강요한 통제 약물 복용. 그 약물을 몸 속에 들이는 걸 아이들은 한 두명씩 거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로인해 촉발되는 무질서. 남녀칠세부동석 따위 아무 상관 없었던 청춘들은 점차 이성 관계에 눈을 뜬다. 소년은 소녀의 가슴을 만지고 소녀는 소년의 그런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렇게 시작되는 섹스와 폭력의 난장판. 보다보면 지구의 과학자들이 왜 그 통제 약물을 강요했는지 알 것도 같다. 이성적으로는 말이 된다는 거지, 우주선의 공간과 식량은 한정되어 있는데 한창 뜨거울 젊은이들끼리 멋대로 섹스하다 마구잡이로 임신해 인구가 늘어나면 통제불능 상황에 빠질 것 아닌가. 그러니까 말은 된다. 허나 기성 세대가 하지 말라 했다고 해서 그게 신세대들에게는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그게 실수든 무엇이든 누구나 직접 경험해보아야 깨닫는 부분도 있을 테니 말이다. 기성 세대에 의해 정해진 프로토콜 만으로는 인류의 역사가 지속될 수 없다. 그 세대에게는 그 세대 만의 경험이 필요하다. 때문에 <보이저스>가 인간의 성악설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꼴도 보기 싫은 파멸 가깝게 전개 되기는 하지만 그건 또 그거 나름대로 꼭 필요한 순간들이라고 보거든, 삶과 인류의 역사 안에서. 

'파리 대왕'이 그랬듯 파시즘에 대한 언급도 있는 편. 통제 약물을 가장 먼저 거부하기 시작한 잭은 '파리 대왕'의 등장인물들 중 하나와 이름이 같다. 그 소설 속의 잭도 괴물의 존재를 허구로 꾸며 그를 통해 권력을 잡은 인물이었지. <보이저스>의 잭 역시 마찬가지. 잭은 없는 외계인의 존재를 만들어 그를 통한 공포 정치를 시작한다. 너희를 보호해주겠으니 나를 따르라는 단순무식하면서도 그래서 더 효과적인 정책. 쓰고보니 더 '파리 대왕'과 비슷하네. 하여튼 '파리 대왕' 역시 세계 대전을 통해 드러난 인간의 추악함을 고발한 소설이었으니 역으로 따져 따라가면 결국 파시즘을 주워낼 수 있을 거다. 히틀러도 이런 식으로 집권하지 않았나.

이렇듯 전체적으로는 꽤 괜찮은 은유와 메시지로 잘 꾸며낸 영화. 다만 아쉬운 건, 무언가 한 방이 없다는 것. 일부러 반복적인 느낌을 과시하려 했다는 건 알겠는데, 오히려 그것 때문에 일종의 피로감이 생기는 프로덕션 디자인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진다. 여기에 결말까지도 뭔가 허무한 게 부정적인 쪽으로 화룡점정. 그냥 잭 하나 죽었으니 만사 오케이라는 뉘앙스로 영화를 끝내면 어떡하냐고, 마땅히 책임져야 할 부분들이 남아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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