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04 12:01

미이라, 1999 대여점 (구작)


20세기의 마지막 해에 모래 폭풍처럼 등장한 할리우드발 이집트행 어드벤쳐 영화.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고딕 호러 몬스터 캐릭터들 중 하나인 미이라를 현대적이면서도 좀 더 액션 모험 장르적으로 변화시킨 작품. 물론 그 안에 분명 호러 요소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래봐야 어차피 양념 정도라... 하여튼 그 시도는 꽤나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마 나를 포함한 내 세대는 어린 시절 학교에서 이모텝이랑 아낙수나문 이름을 질리도록 외쳐보았을 테니 말이다.

사실상 <미이라>는 B급 비디오 영화의 분위기로 전락할 여지가 충분했다. 이미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가 한 시대를 휩쓸고 간 이후였으니, 뭘해도 다 그 아류처럼 보이는 것. 현재 버전의 영화가 실제로 그렇다. 보는내내 인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어디 인디 뿐이랴. 오리엔탈리즘 적당히 가미된 모험 영화들 중 대부분이 다 <미이라>에 영향을 줬겠지. 그러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다 어디서 봤음직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특기할 만한 점. 그럼에도 모험 장르 영화로써 기본기를 충실히 다졌다는 것. 다 어디서 본 것 같은 기시감이 쩔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그걸 끗발나게 잘해버리면 상관없다는 장르 영화의 공식을 다시금 선명하게 만들었다는 거지. 미이라가 희생자를 하나둘씩 사냥할 때는 호러 느낌 담백하게 내고, 나머지는 열혈 총잡이 남자 주인공과 엉뚱한 여자 주인공 + 개그 캐릭터의 황금 공식으로 오락 영화로써의 소임을 다한다. 

단점이 없는 영화는 아니지. 앞서 말했듯 그 자체로 새롭고 신선한 시도가 존재하지는 않았다는 점, 그리고 역시나 오리엔탈리즘에 잔뜩 절여져 있다는 점 등이 대표적인 단점. 그런데 솔직히 요즈음의 할리우드도 아니고 1999년 당시의 할리우드를 논하면서 오리엔탈리즘만을 걸고 넘어질 생각은 없다. 그렇게 따지기 시작하면 비유럽권을 배경으로한 모험 영화들 중 그 촘촘한 그물에 안 걸릴 영화들이 없을 테니까. 고로 고대 이집트에 대한 과도한 신비주의적 해석을 따지진 않을 거란 소리다. 분명 존재하기는 하지만.

근데 이게 존나 양가적인 게, 제작진이 그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삼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 또한 잘 알겠다는 것이다. 미이라라는 소재가 애초부터 이집트 출신 소재이니 그런 점도 있었겠지만, 과도한 신비주의다 뭐다 하며 비판해도 어쨌거나 고대 이집트가 존나 신비롭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잖나. 이 영화가 갖고 있는 대부분의 끈적한 매력들은 다 거기서 나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형벌이 없었다한들, 산 사람의 혀를 자르고 관속에 산채로 묻어버리는 모습이 여간 충격적인 게 아니잖아? 살아움직이는 뼈다귀가 산자의 눈깔을 파 빼앗는 전개 역시 존나 말도 안 되지만 존나 무섭지. 여기에 피부 아래로 뚫고 들어오는 딱정벌레떼의 비주얼 쇼크. 솔직히 어릴 땐 이모텝보다 이 딱정벌레들이 더 무서웠다. 어린 시절에 이 영화를 봤을 대부분의 영화 친구들 모두 그것만은 인정할 걸?

주인공 파티원들은 다 모험 영화의 정석을 따르고 있어 안정적이되 크게 재밌어질 여지는 없었는데, 악당 역할인 이모텝 캐릭터가 존나 불멸이다. 죽음에서 돌아와 T-1000 마냥 총알 다 씹고 뚜벅뚜벅 걸어오는 이미지도 강한데, 여기에 아낙수나문과의 기묘하게 절절한 사랑과 그 최후가 인상적. 만약 부활하고 오로지 세계 정복 만을 꿈꾸는 악당이었다면 이 정도로 인상적이지는 못했을 것.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희미해 죽은 자들이 마구 돌아오는 오컬트 세계관인데 정작 최후 목적은 옛 연인과의 재결합이었다는 충공깽한 설정. 오랜만에 다시 봤어도 그게 존나 마음에 들더라. 여기에 세상에서 제일 잘한 캐스팅 중 하나일 아놀드 보슬루의 이미지가 화룡점정을 더해주고... 그나저나 이모텝의 연비는 영 꽝인 것 같다. 그래도 한 명 분의 인간인데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려면 다른 인간 3인분은 있어야 한다. 눈깔 빼앗은 남자한테 눈깔 말고 다른 것도 다 빼앗으면 안 됐던 건가? 그야말로 기적의 연비.

아까 오리엔탈리즘 이야기 했었는데, 그것과 별개로 영화 배경 당시의 제국주의에 대한 언급도 종종 나오는 편. 시대적 배경이 1차 세계 대전 직후인 것으로 되어 있기도 하고, 어쨌거나 남의 나라인데 미국인이나 영국인들이 거기까지 기어들어가 굳이 파지 말라는 거 파고 읽지 말라는 거 읽어서 다 이 사단이 나게 되는 것이니... 그런데 난 지금까지 이 영화 주인공들 다 미국인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다시 보니 영국인들이더라고? 이집트 배경에 영국인 주인공이라... 이걸 존나 반성 없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그냥 장르 영화적으로 넘어가야할지 아리까리하다.

브렌든 프레이저 존나 멋지고 잘생겼다. 요즘은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마지막으로 본 것도 거의 10여년이 다 되어가는 것 같은데... 허나 그럼 뭐해, 레이첼 와이즈가 존나 사기인데. 아, 이 때의 레이첼 와이즈에게는 정말로 빛이 났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지만, 어린 시절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저런 사람이 천사일까?'라는 순수하고 유치한 생각까지 했었으니 뭐 별다른 설명이 더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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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rumic71 2021/06/04 13:23 # 답글

    일단은 리메이크니까요... 자기들이 장르를 만들어놓고 인디 같은 한참 후배들이 휩쓰는 모습을 보고 있던 유니버설도 속 터졌겠죠.
    https://youtu.be/YyxYWb2yLZQ
  • CINEKOON 2021/06/22 14:52 #

    아, 유니버설의 고딕 호러 몬스터 시리즈는 저도 좋아합니다. 기존의 <미이라>와 <심해에서 온 괴물>이 가장 좋았던 기억...
  • nenga 2021/06/04 23:45 # 답글

    브렌든 프레이저는 요새 DC원작 드라마에 나오더군요

    나중에 다시 보니 호러적 요소가 제법 많더군요
    왜 처음 볼 때는 못느꼈는지...
    레이첼 와이즈 때문인가
  • CINEKOON 2021/06/22 14:53 #

    그거 아마 '둠 패트롤'이었죠? '타이탄즈'에 잠깐 나왔던 걸 본 기억이 나는데 드라마 자체가 제 취향이 아니었기 때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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