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11 16:12

새콤달콤 극장전 (신작)


새콤달콤한 스포일러!


원작 안 봤고, 심지어는 있는 줄도 몰랐다. 그래서 반전 있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걸 전혀 몰랐지, 난.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이 영화가 훅하고 내 맘에 더 들어올 수 있었다. 아마 원작 영화를 미리 보고 이 영화를 봤더라면 내가 느꼈을 재미는 아마 지금의 반에 반도 안 되겠지. 그만큼 반전이 크게 작용하는 영화라는 말. 덕분에 그런 생각도 새삼스레 다시 해보게 되었다. 감상 전의 정보가 최소화 되었을 때 영화의 재미는 비로소 극대화 된다는 그 당연한 명제. 

영화 시작하고 곧바로 소제목이 뜨길래, 난 또 옴니버스 영화인가 싶었지. 근데 그건 아니더라고. 하여튼 영화는 제목에 걸맞게 귀여운 톤으로 진행된다. 일명 혁이 오빠가 다은과 펼치는 초반 로맨스는 시종일관 발랄한 톤을 유지하는 데다, 프로덕션 디자인도 높은 채도의 색감들로 점철되어 있어 그 귀여움에 풍미를 더한다. 그리고 그걸 확인사살 해주는 두 배우의 흡사 경공술 같은 연기. 두 배우의 연기 덕분에 영화의 초반이 학생 졸업 영화처럼 보이는 경향도 있었다. 언뜻 들으면 나쁜 뜻 같지만 그건 아니고, 오히려 좋은 뜻으로. 학생 영화 특유의 가볍고 자신감 넘치는 기조가 깃들어 있었다는 말. 하여튼 혁이 오빠랑 다은이 커플 졸귀 말고 쫄귀.

연애 초반의 당연한 귀여움을 거치고 나면, 영화가 담아내는 것은 결국 또 '사랑의 과정'이다. 사랑을 다루는 멜로, 로맨스, 로맨틱 코미디 장르들은 그들 대개가 모두 이 '사랑의 과정'을 담느라 바쁘다. 설레고 떨리는 연애의 시작과 그 초반, 이어 풋풋하고 단내 나는 중반을 지나고나면 찾아오는 싫증과 권태의 후반까지. 대부분의 사랑 영화들이 다 이 과정을 따르지. <새콤달콤>도 마찬가지다. 허나, 반전의 존재가 이를 기묘하게 뒤튼다. 사실 정말 사소한 부분일 뿐인데, 출발 지점에서는 1°만 달랐던 평행선이 결국 가면 갈수록 크게 벌어지는 것과 같은 차이. 한 사람이 연애의 과정을 거치며 이렇게 변했다-의 이야기인 줄 알았던 영화는, 결말부 들어서야 이것이 새로운 사람과의 다른 다음 연애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 의미가 미묘하게 달라진다. 

좀 더 쉽게 말하면 감상의 감정이 아주 조금 달라진다는 것이다. 반전 이전까지의 이야기 전개였다면, 나는 씁쓸함을 더 짙게 느꼈을 것이다. '사랑이 뭐 다 그렇지' 정도의 언사로 넘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새콤달콤>은 반전 이후부터 그러한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그게 다 순리라는 씁쓸함 보다도 아쉬움과 반성이 짙게 깔린 후회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내가 당연하게 여기고 대했던 상대가 다른 시작점의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달콤한 존재일 것이라는 상황과 그에 대한 반성적 태도. 그 한 끗 차이의 반전 덕분에 <새콤달콤>은 내게 전혀 새콤달콤 하지 않은 감정을 선사함으로써 특별함을 내주었다. 

근데 반전이 워낙 컸고 또 영화 자체가 귀여웠다 뿐이지, 조목조목 따지고 들면 아쉬운 부분들도 없지 않다. 장혁과 보영이 새로운 관계로 얽혀들어가는 부분의 감정적 변화는 그 과정이 너무 서툴고 급하며, 특히 한 명의 캐릭터로서 보영의 변화는 이해가 쉽게 가지 않을 지경이다. 여기에 돌이켜보면 장혁과 다은 사이의 더 깊은 묘사 역시 부재하고. 그러니까 아주 잘 만든 영화인 것은 아닌데, 특유의 몇 가지 장점들로 그냥 다 뚫어버렸다는 이야기. 

인터넷 좀 뒤져보니 재미없게 본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던 모양인데, 나는 생각보다 재미있게 보았다. 무엇보다 이계벽 감독의 신작이라길래 전혀 기대 안 했던 게 컸던 것 같기도 하고. <힘을 내요, 미스터 리> 정말 최악이었거든... 이게 바로 그 무섭다는 '다시 보니 선녀' 전략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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