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11 16:37

아야와 마녀 극장전 (신작)


새로운 시도는 언제나 옳다. 그리고 그 과도기의 불안감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지브리 스튜디오라는 이름이 너무 컸기에. 그들의 첫 3D 애니메이션인 <아야와 마녀>에는 기대보다 걱정이 더 큰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 우려를 기분 좋게 뒷통수 때려줬더라면 좋았으련만. 불행히도 지브리의 기념비적 첫 시도는 명백한 실패처럼 보인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고 격리 되어진 한 소녀를 이야기의 구심점으로 삼아 마법이 가득한 세계를 달려 나간다는 이야기는 이견의 여지 없이 지브리스러워 좋다. 그러나 지금의 각본은 시동만 걸려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TV 시리즈의 첫번째 에피소드처럼 말이다. 기승전결에서 기랑 승까지만 있는 느낌. 고아로 보육원에서 길러진 주인공 아야가 마녀의 집으로 넘어온다는 전개까지는 괜찮다 이거다. 그럼 그 뒤부터 합당하게 나와야하는 요소들이 뭔데? 마녀의 집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고생과 모험들, 마녀와의 신경전을 통해 끝내 사사받게 된 마법, 말하는 고양이와의 우정, 악마로 상정되어 있는 맨드레이크의 정체와 그에 얽힌 미스테리, 그리고 마지막 쯤 되서는 과거 어린 아야를 보육원에 맡기고 떠날 수 밖에 없었던 마녀 엄마의 정체와 그녀의 구체적인 이야기가 차례대로 나와야 한 편의 제대로된 영화로써 할 일을 다 했다고 볼 수 있는 거 아니겠나. 

그러나 <아야와 마녀>는 그렇게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설정들을 동물원의 하마가 자기 변 뿌리듯 여기저기 그저 흩뿌려만 놓았다. 굉장히 무책임한 태도다. 마녀 엄마는 아야를 왜 버렸는데? 그럼 아야가 마녀 엄마와 맨드레이크 사이에서 나온 아이인 건 맞는 거야? 마녀 엄마는 밴드 멤버들과 왜 틀어졌고? 마녀 엄마가 밴드를 떠날 때, 분명히 다른 기성 마녀들에 대해 언급 했었거든? 그럼 그들은 누구인데? 밴드 생활 할 땐 사이가 좋아보였던 벨라와 맨드레이크, 이 둘은 왜 이렇게 파괴적인 관계가 되었고? 고아인 아야는 왜 데려왔어? 맨드레이크의 정체는 뭐길래 소악마들을 부릴 수 있는 거야? 말하는 고양이 토마스는 또 어떤 사연을 갖고 있고? 아니, 씨발 하나라도 설명 제대로 안 할 거였으면 대체 이따위 설정들을 애초에 왜 넣은 거야.

마녀로서 성장하는 주인공 아야의 모습과 그 역할 역시 문제가 많다. 사고뭉치 소녀 캐릭터는 재미있지만, 마녀로서 성장할 구석이 전혀 없다. 아야는 이른바 완성형 캐릭터거든. 눈치, 체력, 지략 등등 어느 하나 모자란 부분이 없다. 그나마 비어있던 게 마녀로서의 마법 능력인데, 이것도 별다른 가르침 없이 벨라의 마법 노트 대충 훔쳐보는 것으로 다 완성. 이럴 거면 벨라의 가르침이 왜 필요한 건데... 그냥 그 노트 훔쳐다가 이것 저것 다 할 수 있는 거 아님? 호그와트 입학했으면 헤르미온느랑 전교 1등 겨뤘을 아이다, 아야는. 

작화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데, 지니고 있던 경이로운 온기를 지브리가 스스로 지워버린 느낌. 3D 애니메이션이 2D 애니메이션 보다 따뜻하지 못한 것이 당연하다고? 그건 핑계다. 이미 픽사의 선례가 있지 않나. 그걸 잃어버린 데에는 기술력의 차이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잘못된 방향을 앞세웠던 게 더 클 것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마냥 초반 이야기는 차갑다. 마녀와 악마의 집으로 팔려와 노예 생활을 해야하는 소녀의 이야기. 그럼에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세계는 따뜻했다. 차갑고 비정해보이는 초반 이야기를, 특유의 따스한 작화로 중화시켜냈던 거지. <아야와 마녀>는 그 지점에서 실패한다. 종종 아야의 표정은 귀엽고 재밌지만, 그 이외의 이미지 요소들에서는 미적인 감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몇몇 이미지들은 너무 구태의연하기 까지. 말하는 고양이 외형은 좀만 더 수정해도 좋았을 것. 지금은 그냥 <마녀 배달부 키키> 속 그것과 똑같던데.

첫 시도임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실망스러운 지브리의 신작. 과연 미야자키 고로는 아버지의 거대한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아니, 애초에 아들이랍시고 거기 앉아있는 것부터가 마음에 안 든다. 무슨 전제 군주정도 아니고... 걸출한 실력이 있으면 전혀 상관없겠지만 지금은 그냥 감독으로서의 개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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