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루는 미스테리 추적극이 된 입장으로, 나름 있어보이는 요소들은 다 채워넣은 듯한 인상이다. 그러나 겉멋에만 치중하면 쉽게 바스라지는 것. 정작 그 기본이 될 탄탄한 기승전결이나 빛나는 장르적 아이디어 따위는 이미 저 세상. 이렇게 하면 좋겠다-스러운 요소가 아니라, 이렇게 하면 멋지겠다-스러운 요소들로만 싸그리 갖다 박느라 꼭 했어야만 했던 것들은 안중에도 없었던 듯.
스포일러 라이브즈!
이 영화가 치중한 부분들과 그 파훼법들을 순서대로 한 번 살펴보겠다.
일단 1번. 퀘벡이라는, 미국 아닌 캐나다 땅, 그것도 프랑스 문화의 색채가 강한 나름대로 특이한 지역색을 가진 곳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 이야기. 뉴욕이나 LA처럼 장르적으로 익숙한 땅이 아니라 우리가 쉬이 보기 어려운 지역을 골랐다는 것은 특기할 만하다. 그러나 여기서 부터 사소한 불만이 생긴다. 특유의 지역색이 강한 퀘벡이라는 곳을 배경으로 했으면, 그걸 잘 살렸어야 했던 것 아닌가? 경찰들은 불어를 쓰고, 이로인해 FBI에서 파견된 주인공과 살짝의 갈등을 빚는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다. 뭔가 퀘벡을 가지고 더 해보려는 노력이 없었다. 물론 이건 어느정도 변명이 가능한 부분이다. 그렇게 따지면 뉴욕이나 LA 아니고서야, 세상 모든 타 지역 배경 영화들이 다 지역색에 집착하고 있어야 하겠지. 그러니까 이건 그냥 개인적이고 또 사소한 불만임. 근데 그래도 미국 영화 주제에 캐나다 퀘벡을 배경으로 삼았으면 최소한의 이유는 있어야 했던 거 아니냐고.
2번. 남들이 보기에 괴짜처럼 보이는 행동으로 일관하는, 그러나 그 실력만은 출중한 능력자 주인공. 범인을 찾기 위해서라면 피해자의 시체가 발견된 무덤에도 누워있을 수 있는 담력을 가진. 그리고 묵고 있는 호텔 방 내부 곳곳에도 끔찍한 범죄 현장의 사진을 붙여놓은. 이 역시도 대략 뭘 하고 싶었는지 알겠거든? 근데 딱 거기까지 뿐이다. 이 인물이 그런 괴짜스러운 방법들을 통해 대체 어떤 진실들을 추론해냈는지 별다른 활약이 안 나온다. 그냥 제작진이 있어 보이려고 설정한 것 같다. 셜록 홈즈 마냥 매력있는 또라이 캐릭터 만들려고 그냥 막 다 갖다 붙인 느낌.
3번. 피해자들의 삶을 통째로 훔치는 연쇄 살인범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그게 재밌게 잘 묘사된 것 같진 않다. 젊은 시절 이미 죽은 것으로 되어 있어서, 자신이 죽인 피해자들의 신분과 재산 등을 가져다가 스스로의 것으로 만드는 악당. 근데 딱 설정만 있는 듯한 느낌이다. 상대의 삶을 빼앗는 과정이나 그 이후의 삶 등이 너무 뭉뚱 그려져 있다. 전형적으로 기획서 보면 재밌는데 결과물에서는 디테일 떨어져 망가진 경우.
4번. 주인공이 사랑에 빠진 남자가 알고보니 연쇄 살인범이었다! 사실 이 부분으로 초점을 더 옮겼더라면 영화가 더 재밌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사랑에 빠졌는데 그 남자가 연쇄 살인범이야. 그냥 체포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체포하지 않자니 직업 윤리가 망가져. 이런 식의 딜레마로 풀어갔으면 더 좋았을 텐데, 영화는 아주 단순한 방식을 택한다. 둘이 왜 사랑에 빠진 건지도 잘 모르겠거니와, 상대가 연쇄 살인범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직후 주인공은 곧바로 후회에 빠짐. 아니... 물론 후회스럽긴 하겠지... 다른 것도 아니고 사람을 죽인 놈이라는데... 근데 이건 영화잖아... 섹스 한 번 하고 다음날 바로 진실 알게된 뒤 그 남자 쫓을 플롯이었으면 대체 이런 설정 왜 함...?
5번. 사실 이게 제일 치명적인 거다. 반전이 실패했다는 것. 이 당시에도 에단 호크는 이미 스타 반열에 오른 배우였다. <비포 선라이즈>와 <가타카>, 심지어는 <트레이닝 데이> 마저도 <테이킹 라이브즈>가 개봉되기 2년 전 영화니까. 근데 살인범 역할에 에단 호크를 세워? 첫 등장할 때는 살인범 아니라는 순수한 눈망울로 우리를 현혹 시키긴 해. 근데 그게 통했냐? 절대 안 통하지. 최소한 의심을 거둘 순 없게 된다고. 차라리 배우의 이름값을 노린 페이크였다면 또 모르겠다. 처음 등장한 순간부터 의심을 거둘 수 없게 만드는 요소인데 그걸 그냥 다 무시하고 캐스팅을 이렇게 해버리면...
6번. 결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살인범 하나 잡기 위해 몇 달 동안 연극하고 있었다고? 그래, 그건 그렇다쳐... 근데 마지막을 이렇게 맥없이 연출하면 어떻게 하냐... 이건 진짜 길게 이야기하기도 싫으네.
D.J. 카루소의 이후 작품들은 꽤 좋아하는 편이다. <디스터비아>나 <이글 아이> 같은. 그러나 <테이킹 라이브즈>는 해도 너무 했다. 초기작 임을 감안해도 너무 실수투성이. 그나마 젊은 날의 안젤리나 졸리가 매력 넘쳐서 다행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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