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편은 뻔한 아이디어를 쥐고도 연출의 고군분투로 그 묘미를 살려낸 명작이었다. 나 그거 정말 재미있게 봤었거든, 극장에서. 이번에 나온 속편 역시 감독과 배우 모두 동일. 여기에 킬리언 머피까지 추가 되었으니 어찌 기대를 안 할 쏘냐. 그 한없이 높아진 기대감에 버무려진 상태로 보게 된 영화는...... 딱 전편까지만 기억하고 싶게 만드는 속편이었다. 말그대로 있으나 마나 한 속편이라고 생각함.
스포일러 플레이스!
이번 2편까지 본 뒤 다시 돌이켜보면, 1편이 정말로 자기완결적 스토리를 지닌 영화였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일단 이 아이디어는 1회성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소리내면 죽는다? 1편 보고 나서도 했던 소리지만 이런 규칙 갖고 있었던 영화가 어디 한 둘인가? 이미 <맨 인 더 다크>도 있었고 <디센트>도 2편까지 있었다고. 물론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그걸 뛰어난 연출력으로 뚫어낸 영화였지. 근데 이번 2편은 1편의 그 쫄깃한 연출이 거의 전무한 지경이다. 1편은 계단 층계에 박혀있던 못 하나로도 관객들을 20여분간 긴장케 했었다. 그러나 2편은 호러 영화 특유의 갑툭튀 점프 스케어 향연이다. 심지어는 그 대부분이 다 예상까지 된다. 대표적인 게 영화 중반부의 버려진 기차 칸 씬이다. 거기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대개가 다 충분히 예상된다. 좁은 문 틈 사이로 벽에 걸린 응급키트를 꺼내려는 어린 소녀의 몸부림. 그쯤 부터 이미 우리는 알고 있다. 괴물이든 이미 죽은 시체든 하여튼 무언가가 저 좁은 문 틈 사이 어린 소녀의 팔로 큰 소리를 내며 떨어지겠구나. 그 이후부터는 더 노골적이다. 그렇게 놀라 뒤로 자빠진 어린 소녀의 90도 측면을 담은 클로즈업 쇼트. 거기서 또 이미 우리는 느낀다. 아, 프레임 중앙에 놓인 이 어린 소녀의 머리 뒤로 괴물이 등장 하겠는 걸? 정답. 아, 그럼 그 괴물이 점점 다가와 소녀를 죽이려든다면 어떻게 될까? 킬리언 머피의 에밋이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 구해주겠지 뭐. 이 역시 정답. <콰이어트 플레이스 2>의 모든 점프 스케어들은 하나같이 다 예측 가능하다. 그래서 하나도 안 무섭다.
무리하게 확장된 속편에 의해 전편의 메시지까지 타격을 입는다. 전편은 그 자체로 뛰어난 호러 영화였던 동시에, 부모의 조건을 묻는 일종의 우화로써도 기능했다. 그걸 제대로 보여주는 게 주인공 부부의 임신 설정이었지. 소리를 내면 죽게 되는 세계관에서 울게 뻔한 아기를 출산한다? 일반 사람들 입장에서야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 비실용적 선택이었겠지만, 내가 봤을 땐 '생존'이 아니라 '삶'을 추구 했던 주인공 부부의 모습과 이후 세대를 통해 이룩해야할 '희망'의 존재를 적절하게 보여주는 설정이었거든. 그래서 그 설정이 좋았던 거다. 그리고 1편 후반부에서 아기는 결국 출산되지 않나. 여기에 괴물들을 죽일 수 있는 방법까지 도출 되면서, '생존'과 '삶' 그 둘 모두에게 희망을 던지면서 영화가 끝나지 않았나. 그야말로 완벽한 기승전결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리하게 확장된 2편은, 여기에 찬물을 끼얹는다. 출산과 아기가 1편의 핵심 메시지와 직결되는 요소이긴 했지만, 그걸 2편에서는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전혀 고민을 안 한 거다. 그 아기가 2편에서 뭔가 해내는 게 없다. 아니, 신생아인데 걔가 뭔가 활약 하기를 바란다는 게 아니라... 그 아기라는 요소가 다른 주인공들과 전혀 상호작용 하질 못하고 있다는 거다. 부족한 산소통으로 영화에 서스펜스를 부여한다고? 그거 잘 되지도 못했을 뿐더러 진짜 그 목적이었다면 어린 아들 캐릭터로만 했어도 충분했던 부분이다. 정말로 아기가 강조된 지점이 하나도 없다니까? 그 아기로 서스펜스 만든 것도 없고, 그 아기로 메시지를 이어간 것도 없음. 그냥 1편에서 낳았으니까 존재하는 느낌.
세계관을 흥미롭게 확장시킨 영화란 평도 있던데, 그 부분에 있어서도 동의를 못하겠다. 킬리언 머피의 에밋 캐릭터는 스스로의 캐릭터성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다. 써먹을 구석은 많았을 거다. 예전에 친한 사이였다 해도 지금은 믿지 못할 수도 있었던 사람 아닌가. 게다가 이미 아들과 아내를 잃었대. 그 부분 만으로도 감정적으로 인상적인 순간들을 만들 수 있었을 거라고. 굳이 써먹겠다면 써먹을 부분이 많았을 인물인데 지금은 그냥 1편에서 존 크래신스키가 연기했던 인물의 뉴 스킨 버전 느낌. 똑같이 아버지 캐릭터로서만 기능할 뿐 스스로 온전하게 서 있단 느낌이 없다. 그리고 약탈자가 된 생존자들...... 이게 새로웠다고 하면 너무 난감한데. 그게 좀비 바이러스 때문이든, 핵 전쟁 때문이든, 새롭게 찾아온 빙하기 때문이든 간에 언제나 제일 무서운 건 결국 인간이라는 묘사. 이거 이쪽 장르에서 이미 너무 많이 봤던 거 아냐? 좀비나 외계 괴물 보다도 생존한 다른 인간 세력을 더 공포스럽게 다루었던 영화나 드라마나 게임이 어디 한 두 개인가? 강철중 말마따나 앉아번호로 연병장 두 바퀴도 굴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걸 가지고 신선했다-라고 말하면......
결론적으로는 굉장히 실망스러웠던 속편이라 할 수 있겠다. 오프닝이 좀 길었다는 느낌도 있고... 길게 했는데 그게 또 재밌었냐-라고 묻는다면 글쎄. 개인적으로는 딱 1편까지만 기억하고 싶다. 1편은 진짜 진짜 재밌었는데... 대체 2편은 왜 이렇게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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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 2021/07/01 02:57 # 삭제 답글
CINEKOON 2021/07/01 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