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29 15:50

킬러의 보디가드 2 극장전 (신작)


전작을 그리 재미있게 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보디가드가 필요없는 직업군에게 보디가드를 붙여주었다-라는 재미진 컨셉이 있었음에도 그걸 잘 활용하진 못했다고 보거든. 어쨌든 킬러는 사람을 죽이면서 돈을 버는 직업군이고, 그와 반대로 보디가드는 사람을 지키면서 돈을 버는 직업군이잖나. 거기서 오는 아이러니컬한 재미가 있을 줄 알았는데, 1편은 그냥 라이언 레이놀즈의 개드립과 사무엘 L 잭슨의 MOTHERFUCKER 메들리로 겨우 버티는 영화였거든. 거기에 나름의 액션 한 스푼 정도가 둘러있었던 형국이었고.

2편은 1편이 가지고 있던 그나마의 장점들조차 싸그리 다 날려버렸다. 일단 보디가드라는 직업군 자체가 전혀 필요없는 내용이었다. 누군가를 지켜야한다는 보디가드의 직업적 속성이 떨어져나가고, 그 자리에 예의없고 여러모로 비호감인 미친 정신 상태의 부부가 버티고 섰으니 결국 영화는 킬러 트리오의 이야기 만으로 전개된다. 아니, 진짜로 누군가를 지켜야하는 전개가 아예 없다니까? 라이언 레이놀즈, 사무엘 L 잭슨, 셀마 헤이엑 셋 다 그냥 미친 킬러들일 뿐이다. 그 중 하나가 그나마 이해 가능한 범주에 놓여있다는 걸 차라리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불편한 개그가 속출한다. 다른 사람 앞에서 미친듯이 섹스하는 미친 부부? 이 정도로 불편하진 않지. 내가 이야기하는 건 영화의 윤리 의식 결여다. 클라이막스 액션에서, 마이클과 다리우스 콤비는 악당의 배로 숨어들기 위해 미끼 작전을 펼친다. 인터폴 요원 둘을 골라 자신들과 똑같이 입히고서는 적진을 향해 무조건 돌격을 시키는. 그동안 자기들은 조용히 접근 하겠다는 작전. 넋이 나가는 포인트는 바로 그 이후다. 미끼로 차출된 인터폴 요원 둘은 아주 잔인하게 사망한다. 총도 맞고, 폭발에도 휩싸인다. 아니, 명색이 한 영화의 주인공이면 그 꼴을 보고 최소한 '어우... 안타깝다...' 내지는 '미안하네...' 정도의 뉘앙스는 풍겨야 하는 게 맞는 거잖아. 그러나 마이클은 그 모습을 보고도 다리우스에게 "거봐, 미끼 작전은 언제나 먹힌다니까!" 정도로 응수하고 만다. 개죽음 당한 그 둘은 죽어도 싼 범죄자들이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의의 편에 섰던 인터폴 요원들이었다고! 그런데도 이런 식으로 퉁치고 넘어간다고? 액션 영화에서 윤리 의식을 외치는 게 웃길 수도 있겠다. 나도 이런 종류의 영화들에서 여러 사람들이 잔인하게 죽는 거 쾌감으로 퉁치고 넘어갈 수 있다고. 그치만 이렇게 비범죄자 캐릭터들을 마구 죽여놓고 거기다 주인공이 농담까면 그건 좀 이상하잖아...

그걸 빼고 보더라도 다른 개그들 역시 큰 재미가 없다. 사무엘 L 잭슨과 셀마 헤이엑은 어떠한 특정 모습으로써만 웃음을 강요하고, 라이언 레이놀즈의 개드립은 <데드풀>의 그것과 여전히 똑같다. 이제 이건 배우 개인의 문제가 될 지경. <데드풀2>에서도 너무 동어반복 아닌가- 싶었거든. 근데 여기서까지 똑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이것 참 대략 난감이다. 배우로서 변속이 필요한 시점 아닐까 싶기도. 오랜만에 악역으로 돌아온 안토니오 반데라스는 멋지지만 캐릭터는 참 병신 같다. 요약하면 미친 애국자 캐릭터. 문명의 발상지인 자신의 고국 그리스가 망해가는 꼴을 가만 두고 볼 수는 없었던 인물. 보통의 정상적인 사고 방식이라면 개혁과 노력을 통해 그리스의 국력을 끌어올리자-가 맞는 것이겠지만, 이 미친놈은 조국 그리스가 망하고 있으니 다른 나라들도 다 망하게 만들어 전체적으로 하향 평준화를 시키면 되지 않을까-라는 참으로 미친 사고 방식으로 움직이는 인간이다. 근데 딱 그렇게만 묘사 되어 있고 그 이외의 플러스 알파가 없어 너무 전형적인 악당으로만 느껴짐. 여기에 블랙 지져스 모건 프리먼도 갑툭튀하지만 별로 재미있진 않다. 라이언 레이놀즈와의 관계도 너무 뻔한 드립으로 점철되어 있고.

액션도 최악이다. 그나마 1편엔 암스테르담 액션 시퀀스 같은 굵직 굵직한 스펙터클이 존재했다. 허나 2편은? 모든 게 다 희희낙락 두루뭉술이다. 마이클과 다리우스가 악당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본거지에서 탈출하는 장면만 봐도 어이가 털린다. 어느 것 하나 어려운 게 없다. 별다른 제지도 받지 않고 둘이 그냥 유유히 탈출. 코미디도 망했는데 액션까지 이러면 어떡하냐고. 가뜩이나 지금 캐릭터까지 다 무너진 마당인데...

오랜만에 진짜로 더럽게 재미없던 영화. 이 영화 보는내내 웃은 순간이 딱 한 번 있었는데, 과거 회상에서 마이클의 어머니가 사고사 당하던 장면이었다. '놀이동산에서 사람이 죽는다'라는 전개가 있으면 보통 어떻게 묘사하기 마련인가? 웬만해선 롤러코스터 타다가 안전바가 풀려 사고사로 죽었다거나, 대관람차 따위가 쓰러져 압사 당했다거나 정도일 것이다. 근데 이 영화는 굉장히 창의적인 방식으로 사람을 죽인다. 과체중으로 놀이기구 타고 있던 사람이 튕겨진 뒤 바람개비처럼 날아와 다른 사람과 몸통 박치기 한다는 충격적 전개. 그 꼴이 그냥 너무 웃겨서 웃었다. 그거 외에는 딱히 웃은 기억이 없네. 라이언 레이놀즈, 사무엘 L 잭슨, 셀마 헤이엑, 안토니오 반데라스, 모건 프리먼, 프랭크 그릴로까지 끌어 모아 놓고 겨우 이 꼴이라니. 올 스타 팀으로 똥볼 차는 게 바로 이런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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