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 나가는 펀드 매니저이자 센터장인 성규. 일에 치여 가족 행사에도 결석한 것이 벌써 여러해. 그런데 웬 바람이 불어 갑자기 좋은 아빠라도 되고 싶었던 것인지, 평소에는 하지도 않았던 아이들 등교 셔틀을 자처한다. 애지중지하는 삐까뻔쩍 멋진 차에 딸과 아들을 겨우 태워넣는 그.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아니,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고. 오랜만에 애들을 태운 자동차가 폭탄도 싣고 있을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스포 발신!
주인공을 한정된 공간에 몰아넣고 오직 전화 통화만으로 이야기를 전개 시켰던 영화들도 이제는 따로 장르 구분이 필요할 만큼 많아졌다.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폰부스>, <베리드>, <더 월>, <더 테러 라이브> 정도가 있고 가장 최근에는 거기다 SF를 넣고 버무렸던 <O2>도 있었지. 그러니까, 이쯤 되면 대부분의 관객들도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서 기대하고 또 예상하는 바가 어느 정도 있다는 것. <발신제한>은 관객들의 그러한 기본적 기대에 어느정도는 부응한다, 어느정도는. 그러나 결국 그 고속주행의 발목을 잡는 건 개연성과 메시지. 숨막히는 긴박감 만으로 내달려야 하는 영화를, 개연성과 메시지가 과속 방지턱 마냥 끊임없이 붙잡는 모양새다.
그냥 퉁치고 넘어가려고 해도 자꾸 마음에 남게 되는 설정과 전개들이 마구 난무한다. 처음부터 순서대로 해볼까? 일단 이 영화의 악당은 그냥 일반인이다. 경찰도 아니고 전직 군인 따위는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반인이 대체 무슨 수로 사제 폭탄을 만든 거지? 게다가 종류별로 트리거도 다양하게 준비해놨다. 압력이 변하면 터지기도 하고, 사용자가 원거리에서 버튼을 누르면 터지기도 하고, 또 특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폭파하는 시간 폭탄도 있음. 이 정도면 그냥 폭탄 전문가 아닌가? 단순 유튜브에서 보고 배운 거라 하기엔 너무 전문적이지 않은가?
사실 사제 폭탄 제작 가능 여부를 따지는 건 괜한 트집잡기일런지도 모른다.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그런 것까지 다 따질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이다. 폭탄은 만들 수 있다 치자고. 센터장과 부지점장 주소와 그들 차까지 알아냈다. 그리고 그 차들에 아무런 의심도 남기지 않고 폭탄 설치를 완료해냈다. 폭탄에 문외한인 내가 보더라도 그런 복잡한 폭탄들 한 차에 설치하려면 꽤나 시간과 노력이 들었을 텐데... 집 앞에 주차되어 있는 차의 인기척을 센터장과 부지점장네 가족은 그 누구도 느끼지 못했단 말인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경찰들은 성규의 자동차를 몰아세워놓고 저격수들을 배치한다. 저격수 배치는 전략상 그럴 수 있다. 최후의 방법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근데 그걸 어린 중학생 딸이 눈치챈다고? 아빠 죽을까봐 차에 끝까지 남겠다고 고집 부리는 전개는 그럴 수 있다. 진짜 아빠가 죽을 수도 있단 걸 알면 그렇게 행동할 수 있지. 그리고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그 정도의 가족 신파는 눈 감아줄 요량도 있고. 그런데 대체 그 어린애가 경찰들 속셈을 어떻게 눈치 챈 거냐고... 저격수들이 그냥 총 겨누고 있는 것 뿐일지도 모르잖아...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경찰들의 무능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거든. 통상적으로 주요 용의자가 인질을 붙잡고 있는 상황에서 그 용의자의 부모나 형제 등 가족들을 경찰들이 협상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 자체는 이해가 간다. 근데 왜 검증 안 함? 누군가가 용의자 친동생 이올시다-하고 찾아왔으면 그냥 '아, 예! 오셨어요?'하고 들여보내주는 게 맞는 것인가? 최소한 주민등록증 검색은 해봐야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전문 협상가를 붙이지도 않고 그냥 그 친동생이라 주장하는 작자만 인질 사건의 정중앙으로 내몬다고? 당시 경찰들은 성규를 자기 자식들마저 폭탄의 인질로 잡아둔 미친놈으로 보고 있었다. 근데 그 미친놈한테 친동생이란 작자를 더해줘? 진짜 친동생이었고 또 성규가 진짜 미친놈이었으면 그건 그냥 용의자에게 인질 한 명 괜히 더해주는 것 밖에 안 되잖아? 그리고 여기서 또 한 번의 화룡점정. 어찌저찌 해서 중학생 딸이 그 삼촌이라 주장하는 자의 손에 의해 구출된다. 아니, 그럼 최소한 그 여자애 조사 한 번 하고 의사한테 인계해야하는 거 아니냐고... 심리 상담가가 급파 되서 안정도 좀 시켜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다른 건 몰라도 경찰들이 데리고 있어야지... 그냥 그 삼촌이란 사람에게 데려가라고 홀랑 던져준다고?
분명 나쁜 영화인 것은 아닌데, 이런 사소한 개연성의 빈 고리들이 자꾸 내 정신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덕분에 몰입이 깨지고 극에 흥이 안 난다. 내가 엄청난 개연성을 바랐던 것은 아니다. 최소한 말이 되게끔만, 영화를 보는내내 딴 생각 안 하게끔만 해줬더라면 이런 아쉬운 소리까진 안 했을 것이다. 허나 <발신제한>은 시종일관 개연성의 충돌을 스스로 빚어낸다. 그러다보니 보는동안 이게 다 말이 되는 것인지만을 관객으로서 따지고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무너진 개연성에, 메시지의 애매함까지 더해진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범인의 정체와 그 동기겠지. 사실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부분이기는 했다. 주인공인 성규가 사회적, 경제적으로 성공한 인물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범인이 10억이면 10억, 100억이면 100억을 깔끔하게 요구한 것이 아니었잖아. 굉장히 구체적인 액수였다. 34억하고도 몇 천 만원이 더 붙어있었다고. 이쯤 되면 예상되는 포인트. 이것은 모두 계급적 분노에서 기인한 사건이란 것. 그리고 그 계급적 분노를 테러리즘으로 잘 풀어냈던 영화를 이미 우린 알고 있다. 앞서 말했던 <더 테러 라이브>가 바로 그렇잖아.
<더 테러 라이브>의 계급적 분노는 결국 여의도, 그것도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하정우가 연기한 주인공은 악인이 아니었지만 속물 그 자체였지. 자신의 입지와 시청률에만 열을 올리던 방송인. 그랬던 남자가, 한 통의 전화로 말미암아 테러범의 심정에 공감하게 되고, 결국 그 테러범의 복수를 완성해주며 <더 테러 라이브>는 강렬하게 끝이 났다. 그럼 <발신제한>은? 가장 큰 문제가 있다. <더 테러 라이브>의 주인공은 속물이었지만 흑막이 아니었지. 그러나 <발신제한>의 주인공인 성규는 그 스스로가 범인의 핵심 동기였다. 범인이 과거에 당한 일종의 금융 사기, 그 금융 사기를 주도한 게 바로 성규였다고.
피해자가 가해자를 직접 찾아가 폭탄으로 단속하며 반성을 강요한다. 너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아느냐고 윽박지르고, 또 그의 자식들을 볼모 삼아 반성하라 협박한다. 그리고 성규는 결국 반성의 태도를 보이지. 근데 이게 암만 봐도 억지로 한 반성처럼 느껴진다는 거다. 허나 그걸 또 성규 탓만 하기는 뭐하다. 세상에 그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들 폭탄으로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반성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겠는가. 다만 그게 진심인지 뭔지는 모르겠다는 거지. 그리고 또 과거 피해자였던 범인 입장에서 봐도 메시지가 영 이상해지는 건 마찬가지다. 사기를 당한 사람들은 제도권 내에서 구제받지 못하면 그냥 가해자를 찾아가 사적 복수를 하란 것처럼 들리잖아. 범죄엔 범죄로 갚아주란 소리 같잖아. 이거 어째 자경단을 옹호하는 모양새 같기도 하고...
엄청 털어대기는 했는데, 생각보다 그리 나쁜 영화인 것만은 아니다. 단독 주연으로 발돋움한 조우진의 연기가 좋고, 킬링 타임 오락 영화로써 기본 요건은 충족시켜 준다. 그러나 스스로가 벌여놓은 판에 대해 큰 책임을 지지 못했다는 게 흠일 뿐. 그리고 그 흠이 겁나 컸을 뿐. 새삼스럽지만 이 영화를 통해 <더 테러 라이브>가 얼마나 잘 만든 영화였는지만 다시금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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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찬 2021/07/01 18:23 #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