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30 15:35

고질라 - 싱귤러 포인트_SE01 연속극


열도에서 만들어진 시리즈는 말할 것도 없고, 이제 미 대륙에서 만든 '고질라' 관련 컨텐츠만 해도 벌써 수십 편이다. 그중에는 몬스터버스의 작품들도 있었고, 물론 그전에 존재했던 롤랜드 에머리히의 괴이한 리메이크판도 있었지. 그리고 또 그 롤랜드 에머리히의 비전을 그대로 이어받았던 애니메이션 시리즈도 있었고... 어쨌거나 저쨌거나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거다. 지금까지의 고질라 관련 컨텐츠들은 대개가 괴수들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그게 맞지. 관객들은 고질라라는 괴수를 보러 극장을 찾은 것일 텐데. 그 괴수들을 대자연의 경고로 표현해 코즈믹 호러의 효시로 만들든, 아니면 그 괴수들을 데리고 레슬링 토너먼트를 벌이든 하여튼 간에 언제나 메인은 괴수들이었다. 때때로 불필요해 보이는 인간측 주인공들이 잔뜩 나와 시야를 흐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몇몇 작품들조차 끝에 가서는 고질라의 존재감으로 결말을 매듭 지었다고. 

그러다보니 의문이 든다. 최근 일본에서 만들어지는 고질라 관련 애니메이션들은 왜 다 하나같이 고질라에 관심이 없는 것일까? <고질라 - 싱귤러 포인트> 이전에 만들어진 넷플릭스의 <고질라> 트릴로지도 그랬다. 괴수와의 전투를 다루지만 결국 더 하고 싶었던 것은 SF 드라마고 또 메카닉 액션물이었으며, 심지어는 미연시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3부작은 정말이지 최악이었거든. 그러나 이번 <고질라 - 싱귤러 포인트>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고질라는 그저 양념일 뿐, 하고 싶었던 것은 하드 SF 장르였던 것이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하면... 고질라 면상 보러온 시청자들에게 뜬금없이 <테넷> 틀어줬다고 보면 된다. 총 13부작인 이번 첫번째 시즌에서, 우리가 아는 형태의 고질라가 직접 등장해 활약을 시작하는 건 10화 부터다. 물론 등장 자체는 더 이르지. 8화쯤이었나? 근데 이번 고질라 역시 <신 고질라>의 그놈과 같아서, 단계적으로 진화를 하는 형태거든. 그러다보니 우리가 익숙하게 느낄 만한 형태의 고질라가 처음으로 모습을 비추는 건 10화가 맞음. 등장 자체도 뒤늦지만 활약은 커녕 그를 담는 물리적 분량 자체가 너무 적다. 한 에피소드당 약 20분 정도의 런닝타임을 갖고 있는데, 13부작짜리 전체 시즌을 통틀어 계산해봐도 그 고질라가 직접 화면에 비춰지는 시간은 아마 15분이 채 안 될 거다. 

그리고 시리즈는 그 나머지를 쓸데없이 많은 인간 캐릭터들과 그들의 구구절절한 하드 SF적 설명으로 다 채워넣었다. 쓸모없어 보이는 인물들은 너무 많고, 또 아니메 특유의 중2스러운 허세가 잔뜩 끼얹어있어서 나처럼 거기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은 아마 보기 힘들 것. <에반게리온> 느낌을 많이 낸 측면도 있는데, 제레를 대신하는 것처럼 보이는 기관 시바는 그 구성 자체가 너무 허술하고 또 허세스럽다. 그리고 거기서 일하는 BB라는 과학자... 이 새끼는 뭔 재미도 없고 멋지지도 않은 대사를 주구장창 해대네... 사실 BB 뿐만이 아니다. 주인공인 윤도 유치한 천재 프로그래머 컨셉이고, <에반게리온>의 이카리 겐도 느낌나는 흑막 과학자도 마냥 가벼워만 보임. 아니, 그리고 진짜로 분량 잡아먹기만 하는 인물들이 너무 많다니까? 제트 재규어 만든 그 영감탱이도 그렇고, 메이를 보좌하는 운전 기사 캐릭터도... 사토도... 사토의 상관인 그 대머리 관장도... 아, 진짜 겁나 어지럽네.

고질라가 조금 나온다는 것이지, 물론 다른 괴수들은 꽤 많이 오랫동안 나오는 편. 작아진 형태로 어레인지된 라돈이나 도탄 능력이 추가된 안기라스 등의 활약이 아주 없지는 않다. 그러나 세상에 제목에 '고질라'가 들어가는데 안기라스가 눈에 들어오겠냐고. 게다가 라돈 무리는 그냥 잡몹 취급인데... 다루고 있는 SF적 요소들이 아주 흥미로운 것 역시 아니다. 그게 이해가 가고 안 가고를 떠나서 그냥 별다르게 흥미가 안 간다.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차원 이상의 고차원으로부터 시뮬라크르 마냥 왜곡되고 변형된 형태로 고질라가 도래했다는 건데... 그리고 그 고질라로 말미암아 인간 세계의 파국이 시작된다는 건데... 이게 재미가 진짜 하나도 없음... 그래서 보는내내 이거 언제 끝나나 싶었다. 

하드 SF를 하고 싶었다면 그냥 그것만 하면 된다. 거기에 괴수라는 요소를 추가하는 정도도 OK. 그러나 제목에 '고질라'를 끼워넣은 순간, 그 제목에 동해 클릭 했을 시청자들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지. 고질라 관련 컨텐츠로써 사람들이 으레 기대할 법한 것들은 다 해줬어야지. 이건 그냥 사기고 기만이다. 고질라를 필두로 한 괴수 장르도 이 정도의 새로운 실험 해볼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물론 가능하지. 그러나 언제나 말했듯, 해당 장르로써 기본 요건을 먼저 하고 실험을 더해야지. 제목에 '쥬라기 공원'이라고 박혀 있어서 봤는데 상영 시간 내내 티라노는 1분 나오고 나머지는 존나 어려운 고생물학 강의만 주구장창 나와. 그럼 그걸 과연 즐길 수 있을까? 제목이 '스타워즈'라길래 봤는데 광선검이랑 외계인은 5분 나오고 나머지 시간동안 존나 복잡한 우주물리학 강의만 나오면 그걸 팬들이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는 <고질라 - 싱귤러 포인트>가 정말로 기만적인 시리즈라 생각한다. 시즌 2 나와도 안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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