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05 15:11

넥스트, 2007 대여점 (구작)


미래를 볼 수 있는 힘, 이른바 예지력. 다른 초능력들 다 제쳐두고 예지력만 있어도 먹고 살만 할 것이다. 로또 복권 당첨 번호를 미리 알아내 지갑도 두껍게 만들 수 있을 것이고, 향후 인류 역사에 중요한 분기점들을 미리 예언하는 형태를 취함으로써 로버트 하인라인의 소설 '낯선 땅 이방인'의 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일종의 신흥 종교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근데 그것도 예지력 나름이지, <넥스트>의 주인공 크리스는 자신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 향후 2분 안쪽의 미래만을 엿볼 수 있다. 이건 뭐 예지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주인공에게 특별한 능력을 부여 하면서도 거기에 적절히 제동을 거는 설정. 이런 설정은 언제나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엄청난 힘이 있지만 동시에 한계 마저도 명확하니, 주인공으로선 여러 전략적 선택지들 사이에서 최선을 고민해야 하는 거지. <넥스트>의 재미 역시 바로 거기에서 온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는데 아주 멀리는 못 봄. 나와 관계 없는 일이면 또 못 봄. 내가 곧 똥 마렵겠구나는 알아도 내일 모레 지구가 멸망하는 건 알 수 없단 소리다. 그리고 <넥스트>는 스스로 부여한 그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맨 프럼 어스>의 주인공처럼 능력자로서의 정체를 세상에 숨기고 떠돌이처럼 정처없이 돌아다니는 도망자 아닌 도망자의 모습을 잘 그려낸 것. 이야기 하다보니 <점퍼>의 그것과도 유사하네. 하지만 이쪽이 더 끔찍하다. <점퍼>의 점퍼들은 붙잡히는 순간 그냥 곱게 사망이겠지만, 크리스의 능력은 너무나 유용해보이거든. FBI를 비롯한 정부 기관들이 그를 잡는다? 말로는 안 그러겠다 해도 그들은 그를 결코 내보내주지 않을 것이다. 

도망자로서 주인공을 셋팅한 점이 좋고, 또 그가 자신의 능력을 적절히 활용해 위험한 상황으로부터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재미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 지금은 B급 영화의 제왕이 되었지만 불과 이때까지만 해도 웬만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 주인공 자리를 모조리 꿰차고 다녔던 왕년의 니콜라스 케이지를 보는 맛도 있고. 특유의 그 애매하게 긴 장발 머리가 느끼해서 더 좋음. 아, 정말 니콜라스 케이지는 왕년에 스타였고 또 참배우였다. 연기도 잘하고 이렇게 스타성도 있던 배우가 생각보다 많지 않았었는데, 젠장.

그럼에도 영화에 분명한 아쉬움은 있다. 향후 2분에 대해서만 예지가 가능한 주인공의 초능력. 이를 분명히 시각적으로 더 창의적이고 재미있게 그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영화가 거기에 관해서는 별다른 고민을 안 한 느낌. 물론 그 부분에 있어서 영화가 최악의 길들만 골라 묘사했다는 건 또 아님. 반복적인 몽타주 편집으로 미래의 여러 가능성들을 제시하는 방식이나, 실제로 벌어진 일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이 모든 것 역시 결국 주인공의 예지력 안에서만 존재했던 일이었다는 것 등. 그런 묘사들이 아주 재미없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분명 뭔가 더 할 수 있었을 것만 같단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기가 막히게 창의적인 초능력을 부여 해놓고 정작 그걸 시각적으로 그려내는 데에는 지극히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만 타협했음. 그럼에도 후반부 아메바 분열 묘사는 재미있었지만 말이다. 

2007년에 나온 할리우드 액션 영화 임에도 굉장히 전위적인 결말을 선택했다는 것 역시 특기할 만하다. 세상에 마상에, 중반부 이후부터의 모든 전개를 싸그리 리부트 시켜버리는 과감함이라니. 원작 소설의 결말도 똑같은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이걸 각색 과정에서 건드리지 않은 데에 정말 많은 참을성이 필요했겠구나 싶다. 결말이 좀 의뭉스럽고 뭔가 하다 만 느낌이긴 해도 개인적으로는 좋음. 

주인공과 상대 여성 사이의 로맨스가 조금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점, 줄리안 무어의 캐릭터가 생각보다 별 볼 일 없었다는 점, 주인공의 능력 탓에 클라이막스 액션 시퀀스의 긴장감이 확 떨어진다는 점 등 단점들이 산재해있는 영화이긴 하다. 그럼에도 세간의 평가보다는 재미있게 봤던 영화. 기대를 아예 안 하고 봐서 그랬던 것이었을까... 그나저나 이 영화 다 보고 가장 먼저 한 것은 과연 로또 복권 추첨 몇 분 직전까지 복권을 구매할 수 있는지 검색하는 것이었다. 곧죽어도 등 따시고 배 부르게 살고프다는 망상 On. 시팔... 백 날 망상 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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