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05 15:40

제 8일의 밤 극장전 (신작)


이게 대체 무슨 영화야?


스포일러의 밤!


성서가 아니라 금강경을 기본으로 한 불교 베이스 오컬트 영화라는 점에 있어서 <제 8일의 밤>은 큰 장점을 지닌다. 단정한 사제복의 신부가 십자가를 들고 악마를 퇴치하는, 그런 익숙해서 고전적인 모습이 아니라 파계승이 염주와 도끼로 요괴들을 찍어내리는 신선한 풍경이라니. 근데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것, 그거 하나만으로 전체 영화를 고평가 하기엔 우리네 인생이 그리 만만치는 않잖아? 철저히 비교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사바하>를 떠올려 보면 더 그렇다. <사바하> 역시 불교를 토대로한 오컬트 영화란 점에서 큰 강점이 있었는데, 그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영화가 최소한의 흡인력은 갖고 있었다고. 메시지도 명확하고 불교 특유의 모티프를 아주 적절하게 반영하고 또 변용시킨 작품이었다고. 그에 비하면 <제 8일의 밤>은 결국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아무 것도 맞히지 못한 헛방 투성이 괴작이다. 

신과 악마. 뭐, 이 영화는 그를 각각 부처와 요괴로 상정해두고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신적 존재들이 관여된 오컬트란 장르의 힘은 특유의 '운명론적 접근'에서 나온다. 결국 다 그리 될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인간 주인공들이 제아무리 발버둥치고 벗어나려 노력해도 결국은 그렇게 끝날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인간들의 사고방식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 그게 바로 오컬트라는 장르의 핵심이고 주요 메시지다. 때문에 영화의 주인공인 선화 스님과 청석의 관계가 알고보니 그랬다-는 식의 전개와 결국 그 둘의 처지가 뒤바뀌는 결말부 대립 상황은 장르 특성 내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내 가족을 모두 죽인 자동차 사고 가해자의 아들이 결국 나와 유사부자 관계를 형성하는 것. 그리고 끝내는 그 아이를 살리고 요괴를 죽이기 위해서 내가 대신 죽는 것. 그것들은 벗어날 수 없을 바에는 차라리 용서 하라는 부처님발 깨달음이 될 수도 있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또 그 피해자가 곧 가해자가 되는 불교 특유의 교리관으로 나아갈 수도 있는 지점들이다. 

게다가 손가락으로 염주 몇 번 돌리며 협박 아닌 협박으로 악마들을 퇴마 하는 우아한 방식이 아니라, 염주를 주무기 채찍으로 쓰고 도끼를 보조무기로 휘두르며 요괴들과 맞다이를 깐다는 영화의 거친 액션 설정은 <엑소시스트> 보다 <콘스탄틴>에 더 가까워보여 더욱 흥미롭기도 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뿐. 영화는 제대로 설명해야 할 부분에 있어서는 말을 아끼고, 이미 제대로 설명된 부분에 있어서는 말을 늘린다. 오프닝에서 이미 자막과 나레이션으로 요괴의 붉은 눈 & 검은 눈에 대해 설명 다 끝났잖아. 거기다가 나름 신경 쓴 애니메이션도 곁들여서. 근데 그걸 불과 몇 분 지나 극중인물의 입으로 또 설명한다? 대체 관객을 어떻게 보는 거야? 그리고 마지막 영화의 모든 미스테리가 풀리는 지점. 거기서는 웬걸, 설명을 아껴. 그래서 이거 다 그 고고학자가 빌드 업 해둔 함정이라는 건가? 그럼 그 새끼가 요괴 숭배자였다는 거야? 김유정이 연기한 그 처녀보살은? 아, 학대 받고 버려진 애를 그 고고학자가 딸 삼고 길렀다고?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데 마음으로는 전혀 동하지 않는 설정과 설명들의 속출.

그리고 이 영화의 가장 큰 실책. 신부나, 목사나, 스님이나, 무당이 아니라 형사 주인공을 설정해두고도 그걸 잘 못 써먹었다는 점. 세상에, 오컬트 영화에서 형사가 주인공이라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 설정인가. 종교적으로 믿음과 지식이 전무하고, 바로 그 때문에 철저히 인간의 이성적 시점으로만 사건을 바라보게 되는 인물의 등장. 그런데 영화는 이 캐릭터를 어떻게 쓴다? 이성민의 선화 스님과 몇 번 몸통 박치기 반복하는 것으로만 쓰고 끝낸다. 친한 동생이자 안쓰러운 후배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캐릭터인데 딱히 감정도 느껴지지 않거니와, 그 형사의 이야기 자체가 별로 재미 없게 느껴진다. 그냥 세워만 두고 전혀 써먹을 생각은 안 했던 그런 캐릭터. 그게 화룡점정으로 느껴지는 순간은 바로 그 형사 캐릭터가 퇴장했던 순간이다. 얘 결국 죽거든? 근데 그 죽는 방식이 단역 취급으로 끝난다. 캐스팅이 박해준 아니었다면 진짜로 그냥 단역인 줄 알았을 거임.

선화를 따라다니는 청석 역시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다. 산골에서 살아온 순수남으로 캐릭터를 설정한 듯 한데, 그 모습 자체가 너무 뻔해서 괴이하게 까지 느껴질 지경. 무슨 여덟살 짜리 애도 아니 건만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쪼르르 쫓아다니고... 내내 하는 거 없다가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관객들에게 고구마 먹이고... 아니, 처녀보살이랑 대체 뭔 썸씽이 있었다고 왜 걔를 데리고 도망치는 건데? 물론 선화가 너무 설명을 안 하긴 했지. 그래도... 그래도...! 처녀보살 얼굴이 김유정이라 그랬을 수도 있어, 물론. 그래도 어느정도 최소한의 공감대 형성은 해뒀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 나온 김에, 김유정의 처녀보살 캐릭터도 무척이나 아쉽다. 사실상 반전의 키를 쥔 인물이었던 건데 그 존재의 양감을 잘 살린 것도 아님. 김유정이 연기를 못하는 배우도 아닐텐데, 너무 특유의 이미지로써만 소비한 것 같단 아쉬움도 있고.

무엇보다 액션도 형편없다. 염주랑 도끼 휘두르는 예고편만 보고 진짜 <콘스탄틴> 같은 건 줄 알았지. 그것도 불교 버전으로! 허나 본편에서 액션이라고 해봤자 그냥 허공에 휘적휘적 휘두르기만 하는 것이 정말로 다다. 메시지 제대로 못 담을 거면 차라리 장르적으로 쾌감이라도 달라고... 골빈 영화여도 재미있으면 되는 거라고... 근데 왜 그것마저 못한 거냐고...

2021년 올해도 벌써 절반이 지났다. 지금까지 올해 공개된 신작들만 거의 70여편 본 것 같은데, 단연코 그 중 이 영화가 최악. 가장 밑바닥. 시작하면서도 말했지만 이게 대체 무슨 영화인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넷플릭스에서 공개 되자마자 밤늦게까지 봤는데 결국 이 영화가 내게 남긴 건 그 다음날의 늦잠 뿐이었다. 

덧글

  • 로그온티어 2021/08/19 09:23 # 삭제 답글

    8-90년대식 한국오컬트 및 장르영화의 쉰내나는 플롯에 요즘 장르영화들의 쓸데없는 발칙함의 조화가 깃든 작품이 아닐까 하면서 봤습니다.

    자살하는 놈들은 죽게 냅두는 게 나았다라는 신박한 결론도 골때리게 멋지고요. 골이 어찌나 아픈지 제 대갈통이 목탁인 줄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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