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10 13:46

경찰서를 털어라, 1999 대여점 (구작)


21세기가 도래하기 직전에 찾아온 1990년대 할리우드 액션 코미디의 집약체. '집약체'라는 표현을 썼다고 해서 1990년대 할리우드에서 나온 액션 코미디들 중 가장 최고의 작품이란 소리는 아니다. 그저, 1990년대의 할리우드 액션 코미디들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장르적 특성과 특징들을 다 한데 갖다 박아 놓은 작품이란 점에서 '집약체'란 표현을 썼을 뿐. 근데 또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재미없다는 건 아니고. 짜증나는 이중부정

도둑질 중 발생한 한 팀원의 배신 때문에, 우리의 주인공 마일즈는 애써 훔치는데에 성공한 다이아몬드를 웬 공사중인 건물 환풍기에 숨겨놓는다. 그리고 2년 후, 그 당시 곧바로 체포되어 수감 생활을 했던 마일즈는 결국 출소. 2년동안 고생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에게는 머릿속 보물지도가 있지않은가. 그렇게 룰루랄라의 심정으로 찾은 그당시 공사장. 그런데 신이 이렇게 가혹할 수 있는 것인가. 그 공사장은 경찰서가 되어 있었고, 마일즈가 다이아몬드를 숨겨두었던 환풍기는 다른 곳도 아닌 강력반의 환풍기가 되어 있었다. 

경찰서에서 다이아몬드를 훔쳐내야 한다는 참신한 설정을 깔아두고도, 이후는 전형적인 모양새로 흘러가는 것만 같아 아쉽긴 하다. 제아무리 코미디 영화라지만, 전직 도둑이 경찰 행세를 하며 심지어는 영웅으로 추앙받는단 전개가 어디 가당키나 한가? 이전에 도둑질 좀 해봤다고 형사가 되어 다른 도둑들의 수법을 모조리 밝혀낸다? 영화적으로 아주 말이 안 되는 건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현실적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건 또 아니잖아.

그러나 어쩌면 영화의 이러한 뻔뻔함 때문에 우리가 1990년대의 정서를 그대로 돌려받고 있단 느낌이 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정말로 전형적인 90년대 할리우드 액션 코미디다. 액션과 코미디의 20 : 80 정도 비율도 그렇고, 마틴 로렌스의 옛스런 얼굴과 개그 스타일도 그러하며, 우당탕탕 진행되다 우정과 의리로 종결되는 영화적 결말도 바로 딱 그 90년대 스타일. 심지어 영화를 끝내는 마지막 쇼트 구성도 90년대의 정수를 보여준다. 결국 다이아몬드를 얻어내고 신이나서 펄쩍펄쩍 뛰는 주인공의 뒷모습으로 정지되며 끝나는 영화. 때문에 어떻게 보면 굉장히 촌스럽고 구질구질하게 느껴지는데, 또 달리 보면 바로 그런 느낌들 때문에 우리들의 그 90년대가 다시 돌아온 것처럼 느껴져 기분이 좋기도.

마틴 로렌스 입장에서는 참 재밌었을 것 같다. <나쁜 녀석들>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것이 1995년의 일이었는데, 이 영화가 1999년 영화니까. <나쁜 녀석들>에서는 마약 단속반 형사 역할 하다가 이 영화에서는 형사 사칭하는 범죄자로 역지사지. 사실 셈해보면 마틴 로렌스 필모그래피가 그렇게 두꺼운 편인 건 아닌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를 1990년대를 대표하는 코미디 배우로 기억하고 있었다. 아직도 어릴 때 극장에서 <내쇼날 시큐리티> 봤던 거 기억나네. 그 영화도 그 당시엔 재밌었는데 지금 보면 추억 보정 다 와장창 깨지겠지?

뱀발 - 수입되면서 바뀐 외화들의 국내 개봉명이 맘에 드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경찰서를 털어라>는 참 잘 지은 제목 같음. 

덧글

  • 젠카 2021/07/10 16:39 # 답글

    이 영화 참 재미있게 봤었죠. 고딩 때 반에서 친구들과 다같이 비디오로 보고, 그 후에도 명절날 친척들 모인데서 비디온지 TV방영인지 모르겠지만 어르신들과 봤던 기억이 납니다. 다들 많이 웃으면서 봤었죠. 영화관에서 각잡고 보기보단 이렇게 여럿이서 편하게 보기에 더 좋은 작품인 것 같아요. 딱 명절용 코미디나 시트콤 같은 영화지요. 말이 안되는 걸 알지만 그 뻔뻔함이 매력처럼 느껴집니디. 그리고 결말이 어떻게 보면 비윤리(?)적인데, 묘하게 범죄자인 주인공한테 감정이입하게 만들어서 관객들이 그가 잘되길 바라게 되는 독특한 영화라 비윤리적인 결말임에도 별로 찜찜함이 남지 않는 것도 특이하죠.
  • SAGA 2021/07/11 11:06 # 답글

    예전에 재미있게 봤다가 요새 영화 팸플릿 리뷰하면서 다시 봤는데 여전히 재밌더군요. 전형적인 90년대 코미디물이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근데 요즘엔 이 영화같은 느낌의 코미디물이 없어서 이런 영화가 더 땡기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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