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10 14:19

파고, 1996 대여점 (구작)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로, 운명의 결속력 보다는 우연의 즉흥성에 기인한 사건들의 집합체지만 결국엔 그를 하늘에서부터 내려다보는 카메라 앵글로 담아냄으로써 전지전능한 불멸자 신의 시점으로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필멸자 인간들의 애처로운 몸부림을 관조하게끔 만들어내는 영화. 딱 들어도 코엔 형제의 집약체 같은 영화다. 한마디로, 코엔이 코엔한 영화. 이게 1996년도 작품이었으니, 코엔 형제는 그 시작부터 완성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하겠다. 

극중 인물들 모두가 하나같이 다 이상하다. 하는 짓이 이상하거나, 사고방식이 이상하거나. 아니면 그 둘 모두 포함해 심신이 다 이상하거나. 자신이 만들어낸 투자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돈 많은 장인을 뜯어내고자 자기 아내의 납치 및 감금을 의뢰하는 제리, 딸이 납치 됐다는데도 한결같이 자기 사위를 믿지 않는 웨이드, 납치 의뢰를 받아 하기는 했는데 정작 중요한 순간엔 머뭇거리다가 결국 갈데까지 가버리는 칼, 한마디 말도 없다가 혼자 내적 폭발해 일을 크게 만들고야 마는 게이어 등. 어느 하나 정상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없다. 아, 물론 이 모든 사건들을 추적해나가는 우리들의 경찰서장 마지는 그에 비해 비교적 정상인처럼 보이지. 그런데 이 여자는 이 모든 비극들을 거의 바로 앞에서 지켜보고 있는데도 눈 하나 깜빡 하지 않는다. 죽은 시체를 보는 동안에도 그녀는 놀란 기색이 하나 없고, 정신없이 바쁠 와중에도 남편과의 평화로운 점심을 잊지 않는다. <세븐>의 브래드 피트처럼, 연쇄 살인 사건을 접하면 퇴근 후에 집에서라도 그 충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게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영화 속 형사 아니던가?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곳은 코엔 월드고, 이곳에서는 일이 그렇게 명명백백 깔끔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사람들은 고양이를 보며 말한다. 고양이란 참 이해하기 힘든 족속들이라고. 관심 받고 싶어하는 것 같아 쓰다듬어주면 할퀴며 도망가는데, 그래서 또 신경 안 쓰고 있으면 어느새 다가와 언제 그랬냐는 듯 몸을 부빈다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그래서 어쩌면 그들이 외계로부터 온 것은 아닐까 싶다고. 하지만 실제로 고양이가 이해받기 어려운 족속들이라 한들, 인간이 그런 이야기를 할 처지는 아닌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들을 통틀어 인간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통제불가능한, 예측이 빗나가는 족속들이 또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살인자를 증오하는 동시에 그럼에도 그가 잘생겼으니 용서해야한다 말하고, 아이들이 죽었으니 비보라 말하면서도 그 유족들에 대해선 시체팔이 그만하라 꾸짖으며, 지구 환경의 보호를 외치면서도 자신들의 편리함만을 위해선 자기합리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런 이상한 족속들이다. 어느 지역, 어느 종교의 신이든 간에 자신이 만든 인간이라는 피조물을 한 번에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파고>에는 바로 그런 신의 시점이 담겨있다. 제아무리 전능한 자라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인간이란 존재의 예측불가능성에 대하여.

이쪽에 부탁할 일을 저쪽 희생시켜가면서 하고, 굳이 하지 않았어도 됐던 거짓말을 줄줄이 늘어놓고, 죽이지 않고 넘어가도 될 사람을 별 것 아닌 그전 이유들의 중첩이라는 변명으로 죽이고, 다 끝나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지어질 수 있었던 일에 구태여 감정을 더함으로써 그 모든 걸 원점으로 되돌리고, 이러한 여러 비극들을 몸소 목도 하고도 부르르 떨기는 커녕 집으로 돌아와 남편과 함께 향후 태어날 아이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것. <세븐>의 마지막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은퇴를 앞둔 노년의 형사가 헤밍웨이를 인용하며, "세상은 아름답고 싸워볼 가치가 있다고. 그 말의 후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것이 세상은 더럽고 추악하지만 우리는 싸워야한다-라는 일종의 체념이었다면, <파고>의 그것은 '세상만사 인간사 원래 이랬던 거 몰랐어? 알고도 그냥 사는 거지, 뭐' 정도의 시니컬한 뉘앙스로 귀결된다. 현실과 이상 중 이상에 좀 더 방점을 찍은 <세븐>의 마지막 말과, 이와는 반대로 현실에 좀 더 집중한 <파고>의 결말. 그러나 저러나 어찌되었든 우리는 살아가야만 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그 둘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