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15 16:52

킬 유어 달링, 2013 대여점 (구작)


<토탈 이클립스>와 마찬가지로 문학적 에센스 보다는 멜로 드라마적 요소에 좀 더 집중한 영화. 그런데 차라리 이쪽이 훨씬 더 잘했음. 근데 그 파괴력으로도 <토탈 이클립스> 보다 훨씬 더 세더라. 베를렌느와 랭보는 그냥 '미친 사랑' 정도로 단순하게 묶을 수 있었던 반면 <킬 유어 달링> 속 앨런과 루시엔, 데이비드의 관계는 밀당과 스노비즘, 가스라이팅 등의 세부 요소들로 점철되어 있는 훨씬 더 복잡하고 구체적인 미친 사랑인 것이 포인트. 


스포일 유어 달링


앨런 긴즈버그를 주인공으로 모셔놓은 것 치고는 문학에 별달리 관심이 없어 보인다.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데에 작가들이 얼마나 고통받고 인고의 시간을 보내는지 그런 묘사가 별로 없다는 것. 애초 인물들이 완성해낸 작품 묘사가 거의 없기도 하고. 그런 의미에서 힙스터 병에 걸린 영화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창작의 구체적 과정과 그 완성품에 대해서는 별 관심 없고 그냥 작가들의 생활 속 추상적 멋과 그들이 만들어낸 사조 그 자체에 더 집중 하거든. 그러니까, 작가들이 어떤 방식으로 영감을 받아 어떤 방식으로 글을 쓰는지에 대해 그리기 보다는 그들이 타자기 앞에 앉아 대마초를 피우거나 장난스러운 자살 시도를 하는 등 뭔가 있어보이는 짓거리들을 담는 데에 더 진심인 영화란 소리. 막말로 앨런 긴즈버그나 루시엔 카가 썼다는 작품들 중 극중에서 제대로 소개되는 글들이 얼마나 있는데? 그 별개 작품들의 귀중함 보다는 젊은이들의 혁명을 대변한다는 그냥 있어보이는 말로 포장된 이른바 '뉴 비전' 운동에 더 관심이 많은 거잖아. 근데 존나 웃긴 건 정작 그 '뉴 비전' 사조가 구체적으로 뭔지 역시 그냥 뭉뚱그리고 있다는 점. '뉴 비전'이라는 이름과 주인공들 하는 짓거리만 봐도 대충 고전주의 타파 운동 같아 보이기는 하지만.

때문에 결국 앨런과 루시엔의 멜로 드라마적 관계에 좀 더 눈길이 갈 수 밖에 없다. 사실 데이비드까지 추가된 이 셋의 관계는 공중파 주말 드라마 속 삼각관계처럼 뻔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옛 연인과 새 연인, 질투와 분노와 스토킹의 상투적 스토리. 그러나 이 뻔하디 뻔한 관계에 아주 조금의 구체성을 부여함으로써, <킬 유어 달링>의 멜로 드라마는 현실감을 얻는다. 루시엔 카 이 새끼, 가벼운 밀당부터 시작해 스노비즘과 가스라이팅을 좌우로 엮어 앨런 & 데이비드를 조종하는 솜씨가 정말로 보통내기가 아니거든. <토탈 이클립스> 이야기를 하면서 베를렌느와 랭보의 사랑이 첫 시작되는 지점 묘사가 너무 허술 하다고 했었는데, 어쩌면 <킬 유어 달링> 역시 그건 마찬가지다. 베를렌느와 랭보가 편지 주고 받다 그냥 만났던 것처럼, 앨런과 루시엔 역시 대학 기술사에서 그냥 우연히 만나거든. 그러나 상세 묘사는 <킬 유어 달링> 쪽이 좀 더 풍부하다. 루시엔이 앨런의 재능을 알아봐주는 것처럼 행동하는 묘사에, 대학 생활의 설레임이 엮여들어가 자연스레 사랑으로 이어지거든. <토탈 이클립스>의 그것에 비해 <킬 유어 달링>은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근데 루시엔 이 새끼 진짜 개새끼더라고. 운명적 사랑인 것처럼 앨런에게 꼬리치고 자기 자신을 포장할 땐 언제고, 결국 그 모든 건 앨런을 자신의 글쟁이로 타락시키기 위한 더러운 술수였다. 여기에 현재의 데이비드가 앨런의 미래 모습이 되는 거고... 루시엔 이 새끼 되먹지 못한 놈이라 더욱 느꼈던 건, 복면 쓰고 밤에 대학 도서관 침입한 장면에서 였다. 경비에게 잡히려면 지 혼자 잡힐 것이지, 거기서 도와달라고 앨런의 실명을 존나 큰 소리로 불러댄다. 그럴 거면 복면은 왜 썼냐? 이 새끼 진짜 또라이 새끼 아니야, 이거?

미장센은 멋지고, 배우들의 연기는 뛰어나다. 특히 다니엘 래드클리프는 그 연기 짬밥 어디 안 갔구나 싶어질 정도로 한 표정 한 표정 잘 짓는 배우였음. 그러나 볼거리만 풍부하면 무얼 하겠나. 실존했던 문학가들을 주인공으로 삼았음에도 정작 문학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스타일만 부르짖고 앉아있는데. 그나마 루시엔이 벌이는 여러 거지 같은 짓거리들이 참 현실감 있어 다행이었지만, 달리 말하면 보는내내 그것 때문에 또 빡쳤으니 영화 재밌게 봤단 소리는 못할 듯.

뱀발 - 벤 포스터 나오는지도 몰랐고, 다 보고 나서 역시 나왔는지도 몰랐음. 살 빼고 옷 쫙 빼입으니까 완전 다른 사람이네, 이 사람.

덧글

  • 로그온티어 2021/08/19 09:17 # 삭제 답글

    이 영화보면서 느낀 건.. 실존인물 데리고 쓴 성인동인지 느낌난다는 거였습니다. 표출되는 기이한 에너지가 상당히 묻어있지만 간혹 고고하게 펼쳤을 뿐인 발정인 것도 같은 느낌이 비슷하게 느껴졌어요. 주인공들은 뜻과 사상에 심취한 게 아니라 성격적결함이나 불우한환경에 의해 어리숙하고 성격이 덜 성숙하기에 중2병이 늦게 온 것 같기도 하고.

    여튼 이 작품은 도취적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주제는 명료해서 좋았던 것 같아요. 킬유어달링, 손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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