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19 14:54

다크 앤드 위키드 극장전 (신작)


공포 영화 잘 안 보는 걸 넘어 싫어하는 수준인데 요즘 왜 이렇게 많이 보게 되는 걸까? 태어나서 공포 영화를 가장 많이 본 한 해로 기록될 것 같다, 2021년.


스포 앤드 위키드!


미국의 한 외딴 시골 목장에 살고 있는 늙은 부모를 보러 남매가 방문한다. 병에 걸려 몸져 누운 아버지와 왠지 모르게 횡설수설하는 어머니. 앞마당의 외양간에서는 양과 염소들이 불안하게 울어대고. 그 집에서 며칠을 보내게된 남매는 하루 이틀이 지날수록 점점 헛것을 보게 되고. 이쯤 되면 공포 영화로써 미니멀한 셋팅은 다 된 셈이렷다. 

그 미니멀한 셋팅 속 의도들을 구태여 읽자면, 영화는 당연하게도 종교 이야기로 귀결된다. 서양 오컬트물이니 진짜 당연한 거. <다크 앤드 위키드>는 자막을 통해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등등을 순차적으로 읊어가며 진행되는 영화다. 그렇게 악마 들린 집에서 남매가 보낸 일주일. 태초 신도 이 세상과 그 위의 만물을 만드는 데에 일주일을 쓰셨다고 하질 않나. 물론 그중 하루는 쉬시면서 노곤함을 푸셨다 했지.

<다크 앤드 위키드> 속 악마는 일주일간의 천지창조 설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패러디 한다. 신을 믿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 외엔 또 딱히 죄가 없었던, 그런 평범한 자들을 찾아 벌이는 악마의 지독한 장난. 악마는 신의 사자라 할 수 있을 거룩한 신부의 모습을 비틀어 주인공 남매를 압박하고, 또 자꾸 헛것을 보이게해 미치게 만든다. 또 외양간에 있던 양들도 죄다 죽이지. 교회나 성당 스테인드글라스에 모셔져 있는 예수님은 항상 양들과 교감 하시지 않나. 목자와 그 어린 양. 그런 의미에서 악마는 양들의 존재가 썩 달갑지 않았나 보다. 대신 양들 다 죽이고 어쨌거나 악마 자기 자신을 상징하는 동물인 염소는 남겨놨음. 

앞서 신을 믿지 않은 것 외엔 딱히 죄가 없는 자들이라고, 주인공들에 대해 설명했다. 악마가 판결한 그들의 죄는, 하여튼 간에 '끝까지 믿지 않았다'는 것. 남매 중 오빠인 마이클의 최후가 그걸 단적으로 잘 보여준다. 사실 그의 아내가 딸들을 모두 죽이고 자신까지 자살할만한 이유나 징후가 없었잖아. 근데 마이클은 부모님 댁에서 느꼈던 불길한 기운에 스스로가 시나브로 미쳐갔으므로, 끝까지 아내와 딸들의 죽음을 의심하지 못하다가 끝내 목을 긋는다. 그 충격과 효과에서는 밀리지만, 여러모로 <미스트>의 결말이 떠올랐던 최후. 

이렇게 기본적으로 읽어볼만한 셋팅들이 아주 없는 영화인 것은 아닌데, 그럼에도 <다크 앤드 위키드>는 그닥 흥미를 끌지 못한다. 일단 공포 영화로써 관객들에게 공포감을 주는 방식이 굉장히 단순한데, 그마저도 두 개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첫번째는, 카메라 앵글과 그 움직임을 통해 만들어내는 주인공 후방의 악령 등장. 이 단순한 패턴이 너무 끝까지 반복된다. 처음 한 두 번은 즐겁게 속아줄 수 있지만, 그 이후부터는 그냥 게으른 거. 하다못해 비디오 게임 보스들도 몇 번 맞으면 페이즈 바꿔가며 패턴에 변화를 주기 마련인데, 악마라는 작자가 그것도 못하고 있으면...

두번째는 너무 자극적 묘사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것. 공포를 주는 방식에도 여러가지가 있을진대, 영화는 그냥 잔인한 묘사를 대놓고 보여주기만 하며 공포를 강요한다. 주인공 남매의 어머니가 자기 손가락을 뭉텅뭉텅 썰어대는 장면이 초반부에 나오는데, 어쩌면 그게 이 영화의 선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이런 것만 주구장창 하겠다는 선언. 원래 그런 거 잘 안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것마저 적재적소에 효과적으로 잘 썼다면 냉큼 인정하고 박수 쳤을 터인데, <다크 앤드 위키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그것만 함. 이 첫번째와 두번째 방식에 너무 얽매여 있는 영화 아닌가 싶었다. 

뭘로 촬영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몰라도, 아마 애너모픽 렌즈를 이용한 것 같던데. 공포 영화에서는 잘 활용되지 않는 렌즈 효과를 통해 차분하고 어두운 공포 영화 특유의 톤 앤 매너를 만들어냈던 건 좋았음. 다만 공포 영화면서 별로 무섭지도 않고, 그마저도 처음부터 끝까지 안일한 방식으로 마음 놓고 있단 점에서 영화가 너무 재미없다. 엄청 무서운 영화라고 소문난 것 같길래 잔뜩 걱정하고 봤던 건데 뭐야, 이거?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