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19 15:27

랑종 극장전 (신작)


몇 주 전, 한국에서의 언론 시사회 이후 영화잡지 씨네21은 구체적인 감상기에 앞서 <랑종>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씨네21 기자들은 시사가 끝난 후, 서로의 안부를 확인해야만 했습니다. 영화가 드디어 끝났다는 것에 안도했을 정도였답니다" 정도의 워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씨팔, 대한민국의 원 앤 온리 영화잡지 기자들이 서로의 안부부터 물어야할 정도였다니. 영화 기자, 영화 평론가라면 일반 관객인 나보다도 훨씬 더 많은 영화들을 봐왔을 사람들 아닌가. 그런 사람들이 서로의 생사를 물어야했을 정도라니 이걸 듣고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렇게 엄청난 어둠의 기운을 풍기던 <랑종>을 관람한 이후에는, 가장 먼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중대장 톤으로) 나는 씨네21 기자들에게 실망했다.' 뭐야, 이거? 무섭다며. 오지고 지리고 렛잇고라며. 아니, 그렇다고 1도 안 무섭다는 것 정도는 아닌데 그렇다고 또 그렇게까지 호들갑 떨 정도는 아니었잖아. 


문이 열리네요, 스포 들어오죠~


명색이 공포 영화임에도 공포감이 덜했던 이유, 그리고 그 외 이 영화가 가진 단점들의 대부분은 모두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랑종>의 형식에서 기인한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공포 장르 말고도 그 밖의 장르 영화들이 이제는 많이 써먹었다고 봐도 무방한 형식이다. 같은 장르 안에는 <블레어 윗치>와 <REC>가 있고, 좀 더 범주를 넓히면 <클로버필드>와 <크로니클>, <디스트릭트9>, <트롤 헌터> 등이 존재한다. 일단,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장점이 뭔데? 대체 어떤 장점이 있길래 화면이 마구 흔들리고 화질이 좀 떨어지는데도 애용되는 건데? 무조건 현실감과 현장감이지. 관객으로서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그 현장 한 가운데로 내던져지는 경험. 시청자에서 주인공으로 전환되는 경험. 그게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특징이자 장점 아니냐고. 그럼 무조건 그걸 먼저 고려 했어야지.

바퀴벌레 닮은 외계인들이 요하네스버그 빈민촌을 쑥대밭으로 만들 때도, 중2병에 걸린 초능력자가 시애틀 시내를 박살내던 와중에도 <디스트릭트9>과 <크로니클>의 극중 VJ들은 결코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얼핏 보면 이해가 안 가는 행위지. 자기가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끝까지 카메라를 놓지 않는다? 그것 참 대단한 직업 열정일세. 관객들이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는 걸 두 영화 모두 알았기 때문에 그를 타파하고자 <디스트릭트9>은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 사이사이에 일반 극 영화 형식을 집어넣었고, <크로니클>은 주인공이 관심 받고 싶어하는 관심종자라는 설정에다 염동력까지 버무려 끝까지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의 현실성을 지켜냈다. 반면 <랑종>은? 여기 나오는 극중 다큐멘터리 촬영팀들은 다 미친놈들이다. 그렇게 밖에 설명이 안 된다. 골룸인지 좀비인지 구분이 안 가는 악령 들린 사제들이 자기 물어 뜯으러 달려오는 와중에도 <랑종>의 VJ들은 결코 카메라를 내던지지 않는다. 심지어 그 카메라를 기어코 빼앗아간 악령 보스는 자신이 직접 그 VJ를 촬영해주기까지 한다! 왜냐고? 안 그러면 그 VJ 내장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는 거 못 담잖아.

이런 현실성 없는 장면들이 수두룩 빽빽이다. 죽을 위기에도 카메라를 놓지 않을 뿐더러, 여기 VJ들은 구토하는 취재 대상 여성을 찍는답시고 여자 화장실에도 렌즈를 들이대는 미친놈들이다. 앞에서 사람들이 막 쓰러지고, 심각한 상황에 주변 사람들이 찍지 말라고 카메라를 밀어내는 상황에서도 그 미친놈들은 결코 카메라를 내려놓질 않는다. 직업 윤리, 취재 윤리가 빵점임. 찍지 않으면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없으니 끝까지 카메라를 내려놓지 않은 것인데,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형식 안에서는 오히려 이게 더 가짜처럼 보인다. 너무 노골적이다보니, 모두 다 영화적 장치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는 소격 효과로 이어진다. 영화와 나 사이가 갑자기 확 벌어져 버림. 근데 공포 영화에서는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섹스 묘사나 애완견을 잡아먹는 묘사 등이 너무 과하고 선을 넘은 거 아니냐는 의견들도 많이 보았다. 어느 정도 그렇게 느낄 수는 있겠으나, 개인적으로 나는 그냥 심드렁 하기만 했다. 그래, 애초 사람 몸을 쿠크다스 마냥 가볍게 생각하는 장르인데 개도 잡아먹을 수 있고 섹스도 문란하게 할 수 있겠지 싶었던 거. 근데 그것들이 모두 오로지 자극적인 효과만을 위해 사용되었다는 건 팩트인 듯. 명색이 페이크 다큐멘터리인데 여기서도 현실감이 떨어진다. 여직원이 밤새 사무실에서 여러 남자들과 격렬한 섹스를 벌였다는 것을 CCTV 통해 알게된 회사 간부. 근데 이걸 취재팀한테 그렇게 그냥 보여준다고? 세상에 어떤 사람이 그래... 그리고 그 섹스의 순간들을 모자이크 하나 없이, 그것도 짧게 짧게 핵심만 남긴 편집으로 간드러지게 정리한 극중 다큐멘터리 제작진... 그리고 애완견 잡아먹는 것도 씨바, CCTV 마냥 남의 집에 관찰 카메라들을 설치 해놨으면 매일 아침마다 확인해서 거주자들에게 귀뜸 해줬어야지. 그래야 진작에 밍을 묶어놓기라도 했을 거 아녀.

공포 영화면서 이상하게 웃긴 장면들도 많다. 일단 아까 그 애완견 잡아먹는 장면. 그 전에는 밍이 냉장고에서 생고기 같은 걸 꺼내 짐승 마냥 뜯어먹거든? 근데 다음날엔 애완견을 잡아 냄비에 산채로 삶더라고. ......너 날고기 좋아하는 거 아니었냐? 맛 없어서 이젠 삶아먹고 싶어졌어? 여기서 웃음 포인트 1 적립. 밍이 사라져 택시 타고 어딘가로 떠난 장면을 택시 안 블랙박스 카메라로 표현한 부분도 웃겼다. 얘 택시비는 냈다는 거지? 보통 택시비 안 냈으면 택시기사가 "돈 안 내고 어디가!" 정도로 응수 했을 텐데, 블랙박스 카메라 안의 택시기사는 "그래서 어디로 가시는 거예요?" 정도로만 묻고 있다. 뭐야, 그럼 돈도 냈다는 건가... 이러다보니 막판에 방직 공장 근처로 밍이 찾아왔을 때 또 그런 생각 밖에 안 들었음. '얘 또 택시 타고 온 건가?'

흥미로운 지점들이 아주 없는 영화인 것은 물론 아니다. 전반부 영화의 촬영 톤 앤 매너가 좋고, 배우들의 연기 역시 훌륭하다. 일평생을 믿음에 희생했던 자가 알고보니 신의 은총을 받지 못했다는 것, 믿음을 져버리고 책임을 기피 했던 자가 오히려 이 모든 일들을 결단낸다는 설정 등은 이 영화의 제작자인 나홍진의 <곡성>과 이어져 더욱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러나 언제나 말했듯, 장르 영화면 일단 해당 장르로써의 책임과 소임을 다하라고... 공포 영화면서 왜 안 무서운 건데...

이 영화 최고의 수훈갑은 아무래도 마케팅 담당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그 어시스트를 받아 화려한 쐐기골을 박아넣은 씨네21 트위터 담당자에 경의를.


아니, 지금 진심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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