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02 16:26

정글 크루즈 극장전 (신작)


<캐리비안의 해적 - 블랙 펄의 저주>가 만들어졌을 때, 나는 생각했다. 세상에, 이제 갖다 만들 것이 없어서 놀이동산 어트랙션을 갖다 영화로 만드는 세상이라니. 정말 말세라고 생각했었지, 영화를 보기 전까진. 그랬던 내 걱정에 비해 <블랙 펄의 저주>는 한참 뛰어난 영화였고, 결국 난 잘 만들기만 한다면 세상만사 그 어떤 걸 따와 영화의 소재로 삼아도 상관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근데 어째 할리우드 영화계와 나의 이해 포인트는 좀 달랐던 것 같다. 할리우드는 그걸 "돈만 된다면" 세상만사 그 어떤 걸 따와 영화의 소재로 삼아도 상관없다는 걸로 이해한 것 같거든. 그렇게, 디즈니랜드의 또다른 어트랙션을 원작으로 삼은 <정글 크루즈>가 우리에게 당도했다. 


스포 크루즈!


생각보다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에 진 빚이 이만저만 아닌 영화다. 배를 타고 떠난 모험이란 점에서도 그렇지만, 주요 악당 캐릭터들의 설정이 너무 <캐리비안의 해적>스럽거든. 그 기원은 바르보사 일당과 비슷하고, 능력과 외양은 데비 존스 일당과 유사. 일종의 뱀 똬리 뭉치로 묘사되는 아기레와, 살아움직이는 꿀벌떼 + 나무 줄기 등으로 표현되는 그 일당들 모습이 누가봐도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느낌. 여기까지는 그저 디즈니랜드 어트랙션을 원작으로 삼고 있는 영화들끼리의 동류 의식 정도로만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정글 크루즈>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까지 <캐리비안의 해적>을 따라간다. 그건 바로 메인 주인공들끼리의 유사성. 세상에, 드웨인 존슨이 연기하는 캐릭터에서 조니 뎁의 잭 스패로우를 느낄 거라고 감히 누가 예상 했겠나. 누가 봐도 외모부터 그 연기 스타일까지 정반대인 배우 둘이잖아. 그런데 디즈니는 기어코 그걸 지르고야 만다. 

드웨인 존슨에게 매일 보던 모습 아니냐-라고 비판 받을 여지는 있었겠지만, 어쨌거나 그에게는 유머러스 하면서도 정의로운 캐릭터가 잘 어울린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에게 잭 스패로우 같은 속성을 부여한답시고 사기꾼으로서의 요소를 더해낸다. 아닌 게 아니라 드웨인 존슨의 프랭크는 계속 사기를 친다. 또다른 메인 주인공인 에밀리 블런트의 릴리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시작해, 영화의 중반 가장 중요한 순간까지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기 행각. 근데 이게 재밌지도 않고 드웨인 존슨에게 어울리지도 않는다. 뭐, 돈이 궁한 상황이었으니 릴리와의 첫 만남에서 친 사기는 그렇다쳐. 허나 중반부 원주민 마을에서 친 사기는? 1절, 2절을 한참 지나친 뇌절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앞뒤 역시 안 맞는다. 그 사기의 요지는 원주민들이 죄다 프랭크와 동업자 관계였다는 거잖아. 그럼 그냥 릴리와 그 동생인 맥그리거한테만 마취총 쏘면 되는 거 아녔음? 프랭크한테는 왜 쏘는데? 아~ 한 번 속일 때 릴리와 맥그리거를 제대로 속여야하니까? 그러나 그런 것 치고는 왜 프랭크를 가장 마지막에 쏘는 건데...

성급한 결론이지만, 드웨인 존슨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고 생각된다. 능글맞은 비열함이 귀엽게 느껴지는 배우가 아니건만 굳이 프랭크를 제 2의 잭 스패로우로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캐릭터가 중요한 영화에서 캐릭터를 실패하고나니 그 이후부터는 한 판 지고 들어가는 거지. 그나마 에밀리 블런트의 릴리 캐릭터가 나쁘지 않긴 하지만 좋게 말해 나쁘지 않은 거고 그냥 말하면 지나치게 무난하다는 느낌. 여성 인권이 한없이 낮았던 시대에 치마 대신 바지를 입은 주체적 여성 캐릭터라는 점 역시 이젠 너무 뻔하게 느껴지고. 그래도 최근 <콰이어트 플레이스> 연작 때문인지, 에밀리 블런트가 이토록 밝게 연기하는 캐릭터가 오랜만인 것 같아 그 점은 화사해 좋았다. 

그럼 뭘해, 그래도 프랭크와 릴리의 조합이 영 좋지 않은 걸. 굳이 따지면 이 배에 승선한 건 맥그리거까지 총 셋. 그럼 셋이서 역할 나눠먹기를 잘 했어야지. 프랭크가 액션을 담당하고, 릴리는 특유의 지적 면모로 탐험을 이끌고, 여기에 맥그리거는 개그 캐릭터로 감초 역할 톡톡. 아, 표범 프록시마도 있구나. 하여튼 이 넷이서 뭔가 지지고 볶고 했어야 했다. 그런데 정말 대단하게 웃긴 반전 이후, 그 모든 역할들은 오로지 프랭크에게만 독점된다. 액션? 당연히 프랭크가 다 함. 보물을 찾기 위한 지식? 알고보니 이것도 프랭크가 더 뛰어남. 개그? 처음부터 끝까지 아재 개그 프랭크가 다 치는데? 여기에 가족 영화 특유의 감동까지 결국엔 다 프랭크의 몫이다. 이럴 거면 왜 배에 세 명이나 태운 거냐고.

모험의 목적이 불분명하다는 것도 의외였고 또 별로였다. 릴리는 왜 아마존 어딘가에 존재할 만병통치약을 찾아 헤매는가. 병을 고쳐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그것도 아니다. 그냥 아버지의 모험심을 물려받아서 그렇다는 정도로 언급되고 끝. 동생인 맥그리거는 더더욱 그 동기가 약하고. 이 역시도 모두 프랭크에게 쏠려있다. 그가 이 모험의 알파이자 오메가요, 빛과 소금인 것이다. 여기에 릴리와 맥그리거, 프록시마는 그저 들러리일 뿐. 하다못해 비열하고 야비했던 바로 그 잭 스패로우도 윌 터너와 엘리자베스에게 그 역할을 나눴었는데 여기 프랭크는 그냥 깡패네, 깡패.

여기에 영화가 지나치게 길다는 점 역시 난색을 표하게 만든다. 스릴 넘치는 롤러코스터도 3분 안에 끝나기 때문에 재밌는 것이다. 만약 두 시간 내내 그 롤러코스터를 연속해서 타게 된다면 어떨까? 아마 30분째부터는 질려서 얼른 내리고 싶어질 거다. 그 점에서 역시 <정글 크루즈>는 놀이동산의 어트랙션이 짧은 이유를 증명하는 영화다. 모험이랍시고 시동을 걸긴 걸었는데 계속 배만 타고, 뻔한 대화 나누고, 진짜 위기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죄다 그냥 사기였고. 보는동안 관객으로서는 힘이 쭉쭉 빠지게 된다. 아니, 프랭크와 릴리가 처음 만나 배에 시동 걸고 출발할 때까지는 심장이 막 두근 댔다니까? 내가 좋아하는 모험 영화가 오랜만에 돌아왔구나!-하고. 그런데 그걸 그 이후 한 시간 반 넘게 하고 있으니...

아직 한참 부족하지만 과거 백인들이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대했던 역사 속 방식에 대해 비판적인 코멘트를 살짝 심어두었다는 것,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앞세우고 또 그 뒤엔 게이 캐릭터를 배치해뒀다는 점 등은 물론 의미있다. 그러나 언제나, 정말 언제나 말하는 것이지만... 메시지만 좋으면 뭘 하겠나. 영화는 무조건 장르적인 최소한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모험 영화잖아... 그럼 신나는 모험을 보여줬어야지... 신나고 스릴 넘치는 모험이 되었어야지, 왜 구경꾼들을 지루하게 만들고 있는 거냐고... 주연배우들 벌써 속편 계약까지 했다고 하던데 어떻게든 뜯어 말리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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