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도 기획이지만, 감독의 이름을 듣고 나서부터 이 영화에 기대감을 갖기란 굉장히 어려운 것이었다. 그가 <7광구>를 연출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 <7광구>를 만들어놓고 언론 인터뷰에서 평소 괴수 장르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말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고리타분하다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장르를 사랑하는 사람이 장르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좋아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그를 숨기기는 커녕 언론을 상대로한 인터뷰 자리에서 당당하게 커밍아웃을 하는 감독이라니. 내가 어찌 좋아할 수 있었겠어.
이 영화까지 보고나니 더 명확해진다. 김지훈이 감독으로서 추구하는 것은 결국 인간 드라마다. 고층 빌딩에 불이 나고, 땅이 꺼져 빌딩이 추락해도 김지훈 세계에서 더 중요한 건 그런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란 소리. 어찌보면 <화려한 휴가>도 그랬지. 그것은 인재였지만. 어쨌거나 "아니, 재난 장르 영화가 다 그런 거 아냐?"라고 따져 물을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 모든 재난 영화는 그 안의 사람을 담는다. 그치만 모름지기 재난 영화라면 그 재난의 종류가 어떤 것이든 간에 스펙터클한 장면도 넣어주는 게 맞는 거잖아. 장르 영화의 바로 그 점을, 김지훈은 집중공략하지 않는단 소리다.
제작예산 대비 스펙터클이 너무 적다는 게 문제다. 재난 영화 팬들에게 1차 목표는 그 재난의 규모와 액션이다, 인물들의 리액션이 아니라. 땅꺼짐 현상을 소재로 삼은 재난 영화면 땅이 꺼지는 그 순간의 스펙터클과 거기서 부터 연이어 발생하는 여러 액션들이 관객들 눈을 잡아 끌어야 한단 소리. <싱크홀>은 그런 부분들이 다소 약하게 느껴진다. <해운대>가 그랬듯, <싱크홀>은 본격적인 싱크홀 현상이 발생하기 이전 일단 한 빌라에 살고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모두 다뤄낸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어쨌거나 앞의 30분 정도를 거기에 쓴다는 소리지. 그리고 싱크홀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 부분의 스펙터클이 10분 정도만에 종료됨. 이어지는 건 결국 주인공들의 세트 플레이다. 스튜디오 안에 지어진 것이 분명하게 티가 나는 실내 세트장 이리저리를 떠돌아다니며 벌어지는 인간 드라마.
기대했던 게 아니기는 하다. 그러나 원했던 걸 주지 않았다고 해서 그 영화를 무조건적으로 폄하할 필요는 또 없지. 몇몇 배우들의 호연과 간신히 챙긴 시의성으로 영화는 무난한 전개를 보여준다. 문제는 무난하기만 하다는 데에 있다. 몇 백억원을 들여 만든 영화치고는 너무 평범하고 무난하기만 해. 신파인 줄 알았던 전개를 꺾어낸 결말이야 다행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뚜껑 닫는 장면에서 하긴 한 거잖아. 차라리 신파 가족 드라마를 할 거면 제대로 하든가, 가족 구성원들 사이 별다른 유대도 잘 안 느껴지는 구만...
사실 가장 아쉬운 건 에필로그였다. 본편의 결말에서 에필로그로 넘어가는 편집이 조금 급하게 느껴지는 것도 아쉬웠지만, 시의성 있게 가져간 본편의 메시지가 에필로그 들어 변색되는 것 같아 또 이상 했음. 10년 넘게 일해 겨우 얻어낸 서울 언저리의 내 집이 이사오고 2주 만에 무너졌다는 게 이 영화의 포인트인 거잖아. 거기서 오는 허무함과 현실 부동산 경제에 대한 냉소. 원룸에 살며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하는 젊은 세대들의 비명. 이런 것들이 중요한 거 아녔어? 근데 에필로그에서는 집이고 나발이고 그냥 캠핑카 사서 살라는 교훈으로 종료. 뭐, 나름대로 변명이랍시고 알 수 없는 미래보다는 현재에 집중하며 살자-라는 워딩의 대사로 퉁치고 있긴 한데 결국엔 이게 "너네 돈 없고 비싸서 집 못 사지? 그럼 그냥 캠핑카 사서 돌아다니며 살아~"라고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캠핑카 사서 노년에는 어떡함? 이제 막 결혼 했는데 자녀 낳으면 육아는 어떡하고 학군은 어디로 배속됨? 주차는 장기 주차임? 기타등등. 대중 오락 영화에서 너무 많은 걸 생각할 필요는 없긴 한데, 그래도 에필로그가 너무 날림 공사 느낌이라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덧글
로그온티어 2021/08/19 08:34 # 삭제 답글
CINEKOON 2021/10/06 16: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