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13 19:58

프리 가이 극장전 (신작)


<프리 가이>는 좀 더 본격적인 비디오 게임 버전의 <레디 플레이어 원>이고, 또 <매트릭스>나 <레고 무비>처럼 모든 게 가짜인 세상에서 진짜를 찾아 나서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대중 상업 영화로써 이미 볼 장은 다 본 소재와 주제의식이란 이야기. 게다가 주인공의 성격과 행동, 유머는 기존 라이언 레이놀즈의 이미지와 크게 다를 것이 없고 여기 가미되는 로맨스마저 무척이나 전형적이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내가 이 영화 엄청 재미없게 봤구나 싶겠지. 하지만 내 감상은 오히려 그 반대였다. 초중반부의 전형성을 후반부들어 만회한 작품. 그리고, 내가 만족한 부분은 영화 속 비디오 게임의 묘사가 아니라 그 바깥에 존재하는 현실의 묘사였다. 


스포 가이!


생각해보면 <레디 플레이어 원>도 작가주의적 예술에 대한 사려깊은 코멘트였지. 아이언 자이언트와 메카 고지라, 처키와 마스터 치프가 팬심으로 날뛰는 영화였지만 그와 동시에 예술 작품의 해석에 있어 해당 작가가 겪어온 삶의 굴곡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역설하는 영화였다- 이 말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 속 가상 세계인 오아시스에서, 그 안에 숨겨진 이스터 에그를 찾으려면 그 제작자인 홀리데이의 삶을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다. 홀리데이가 어떤 취향을 가졌었는지, 그의 일생일대 사랑은 과연 누구였는지 등을 알고 있어야 오아시스라는 가상 현실이자 비디오 게임이자 예술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물론 <프리 가이>가 그 경지에까지 도달 하지는 못한다. 가족영화 전문 감독인 숀 레비 역시 그런 메시지 보다는 좀 더 가족적이고 낭만적인 주제에 천착하고 있기도 하고. 

그렇게 약소하고, 이야기의 전체 줄기와는 다소 거리를 두고 있지만 그럼에도 <프리 가이> 속 현실의 두 프로그래머 주인공 이야기가 나에겐 비디오 게임 속 가이의 이야기보다 더 깊게 와닿았다. 항상 곁에 있었지만 쉽게 꺼내지는 못하고 있던 연정, 흘깃흘깃 곁눈질해 알아낸 그녀의 모습들로 가득 채워낸 러브레터, 그리고 그 러브레터를 자신의 작품에 녹여낸 작가의 이야기. 극중 언론을 상대로 한 인터뷰에서 키스가 말하지 않나, 자신은 스스로를 프로그래머보다 작가에 가깝다 생각한다고. 프로그래머로서가 아니라 작가로서 끄적여낸 사랑 고백. 스스로를 찾아나선 가이의 이야기도 멋졌지만, 아무래도 나는 항상 그 자리에 서서 상대를 기다리고 있던 키스의 이야기에 더 빠져들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에필로그 말고 본편의 결말이 너무 좋았다. 바주카포로 경찰차들을 날려버리고, 공룡과 이족보행 전투 로봇이 판을 치는 액션 블록버스터에서 이토록 아기자기한 결말이라니. 대사 말고 표정만으로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알아챈 두 남녀가 도로 한 가운데에서 나누는 키스로 마무리 되는 블록버스터라니. 거대한 이야기의 소박한 마무리. 적어도 끝까지 으스대지는 않는 블록버스터인 것 같아 <프리 가이>의 앞선 전형성은 다 용서 되었다. 

다만, 디즈니가 폭스를 인수한 이후 재촬영 된 게 분명해보이는 후반부의 여러 팬서비스는 좀 아쉽다. 물론 캡틴 아메리카 방패가 나오며 <어벤져스>의 메인 테마가 은은하게 울려퍼질 때 갑자기 훅 들어오는 크리스 에반스의 카메오? 놀랍고 좋지. 여기에 깨알같은 <스타워즈> 언급? 너무 사랑스럽지. 근데 뭐랄까, 너무 <레디 플레이어 원>을 의식했다는게 노골적으로 드러나 그 순간부터 더 비교된다고 할까? 그래서 말인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디즈니에 인수되기 이전 버전에서는 이 부분이 대체 어떤 전개로 구성되어 있었을까? 그냥 또 라이언 레이놀즈 말빨로 조지는 전개였을까?

뱀발1 - 어쨌거나 MCU와 <스타워즈> 프랜차이즈의 존재가 확인된 세계관인데, 아직 그 안에 제대로 편입 되지는 않은 데드풀 정도야 제외하더라도 타이카 와이티티의 얼굴 정도는 사람들이 알아보게 되지 않을까? 배우 개그 쳤으면 그건 그거대로 웃겼을 듯. 

뱀발2 - 가이와 밀리의 로맨스를 다루는 메인 테마곡은 디즈니 단편 애니메이션이었던 <페이퍼맨>의 그것이다. 유난히 좋아하는 단편 애니메이션이라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것 역시 디즈니의 폭스 인수 영향인가, 이게 여기에서 튀어나올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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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타누키 2021/08/13 21:08 # 답글

    헐 페이퍼맨 OST인지는 몰랐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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